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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끄노에게

2005.06.22 22:42

윤석훈 조회 수:189 추천:6

나의 청춘도 끝났다
나의 청춘도 사라졌다
나도 50대의 나이로
머리가 빠져 버렸다
나의 머리도 반백이 되고
나도 기침이 그칠 새 없다
이제는 이제는 이제는
아아 젊었을 때는
얼마나 나도 행복했었던지!
아니야 나는 젊었을 때
당신처럼 행복하지 못했지
바람을 먹고 있는 하마처럼
나의 발가락이 물가에서
회색이 되는 걸 쳐다보며
나의 말이
머리를 숙이는 걸 바라봤다
세월 가는 걸 셀 줄도 모르고
나날은 힘들었다
밤도 모두 불행했다
하늘은 흐리고
진눈깨비 세상이었다
흰 눈까지도 나를 증오했다
나는 넥타이 하나 없었다
그때 벌써 등은 휘었고
발도 눈도 병색이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러나 지금은
더 병색이고 늙어 버렸다
이젠 진퇴유곡이 되어
나도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노여운 날 그날
나도 하늘까지 갈 것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지는
저 어릿광대가
여러 층계에서
그가 떨어니는 걸 보고 있는
관객들을 향하고 있는 것처럼
<자아 보십시오 아직까지는
그렇게 서투르진 않지요
그러나 이제부터도
보시는 바와 같이 이런 재주가
잘 되거들랑 박수를 쳐 주세요>
이렇게 먹어 가는 나이에도
감기에도 담배에도
빠진 머리에도 신경통에도
기침에도 약간의 노스텔지어가 있다
정신도 죽고
철학가인 체하면서
여생을 즐기고자 노력하면서
나도 나이 먹어 간다
마당도 없고 성냥도 없고
돼지 고기도 없고 돈까스도 없고
창문도 없고 광기도 없고
문제시도 없고 명시도 없고
우산도 없고 권력도 없고
한때는 시전문지 주간이었던
나도 없고 존경할 선생도 없고
들판도 없고 정력도 없고
주머리도 없고 향기도 없고
잠도 없고 침대도 없고
꿀도 없고 한 연인이 선물한
꿀도 없고 육체도 없고
나도 스무 살 때
정성스레 썼던 시에
비교될 만한
몇 개의 시를 쓴다
나도 스무 살 때
이승훈이라고
서명했었지만



*이 시는 프랑스 시인 끄노의 <늙는다>(신동문 역)를 패러디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