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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쥐가 된 인간

2006.02.24 00:05

윤석훈 조회 수:188 추천:12

아예 잡지 못할 것 같았으면 몽둥이 휘두르지 말 것을
그만큼 정확한 나의 겨냥 피할 수 있었다니
달아난 새앙쥐는 틀림없이 왕이 될 재목이야
어느 날 금단추 자랑하는 근위병 거느리고
눈 밖에 난 반역자를 잡으러 올 테지

황급히 구원의 수화기를 들어보지만
문명은 통화중만 알릴 뿐
점점 나는 세계와 거리 멀어지고
이제 너는 갇혔다. 상상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그리고 이곳에서는 주사위마저 운명
가르쳐주길 망설인다. 뻔뻔스레 너는
왕에게 불경했고, 그때 이미 죽었으므로

땅 깊은 곳에서 너의 시집은 금지되고
그들의 왕이 자신에게 대적한 인간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벌주는가 찬양하며
저녁 쥐들이 춤을 춘다. 장작불 곁에서
처녀쥐의 경쾌한 박자에 밟히며
꿇어앉은 나의 그림자도 춤춘다.

그리고 나는 저 쥐를 안다.
그는 이 구멍 속에서 제일가는 노래꾼.
나는 형이상학적인 그의 고뇌도 안다.
가인의 입술은 하나, 그는 무슨 재주로
사형수의 죽음 위로하며 어떻게 형장의 칼
함께 찬양할 수 있는가?

노래가 끝나고 나팔수의 볼이 찢어질 때
누군가 소리쳤다. 잔뜩 공포와 전율에 부풀어져
왕이시여 긍휼히 여기시길! 그날 제가
당신의 척추 잘못 내리친 것처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왕들은 모두 용서할 줄 안다.
하여 나는 지금껏 흘려본 일 없는 진한 염분의 눈물로
죽음의 왕 발 씻어주고

쥐를 찍어내는 주형 속에 들어가, 오늘
만물영장이 무섭게 짓밟히실 때
불필요한 사색과 지혜는 마구 잘리며
기름진 털은 숭숭 돋아나 또다시 평민의 쥐
네 발로 다니며 하나의 창공, 여덟 개 부엌
그 높은 삶의 문턱을 넘나들겠네

영민하게 째진 눈과 슬픈 꼬리를 달고
어머니 제가 돌아왔답니다.
그러나 예전에 그를 기습한 굵은 몽둥이로
내려치지 마세요!
놀랍게도 이 왜소한 노래꾼에게도
아버지를 기다리는 자식이 생겼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