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 시인이 되다 /최석봉, 김선자 시인

2006.02.25 06:22

미문이 조회 수:617 추천:16



(미주 한국일보에서 퍼옴) 입력일자:2006-02-24 뉴스홈 > 문인광장     노부부 시인이 되다 예순이 넘은 남편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지켜만 보던 부인도 남편 몰래 열애에 빠졌다 23년간 하루 16시간씩 리커에서만 살았던 최석봉-김선자 부부가 시인이 된 수줍은 사연 정말 일만 하고 살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들 셋 챙겨 학교로 보내고, 그 길로 가게에 나가면 밤 12시에야 돌아왔다. 베니스비치의 리커스토어 한 곳에서만 꼬박 23년을 갇혀 지냈다. 남편은 아이들 픽업 등으로 더러 바깥 나들이를 했지만 아내는 주로 가게 카운터 뒤에서 살았다. 그새 권총 강도만 50번쯤 당했다. “처음에는 무서웠지만 나도 아들만 있는데 돈 몇 푼 땜에 그 짓을 하니 오히려 불쌍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잔돈 몇 달러만 놔두고 가져가라’고 강도에게 말할 정도”로 여유가 생기고 이력도 붙었다. 아들들이 다 자리를 잡은 지난 99년 부부는 가게를 정리했다. 예순을 넘긴 남편은 그 때부터 먹고사는 일에 쏟았던 열정을 문학으로 옮겨 시 쓰기에 몰두했다. 얼마나 열심히 시에 매달렸든지 지난 7년 새 시 300편을 짓고, 시집도 3권을 냈다. 부인은 항상 남편의 첫 독자였다. 읽은 후에는 늘 작품을 꼬집었다. 남편은 “솔직히 기분이야 안 좋았지”라고 하지만 부인은 부인대로 “솔직히 그것밖에 못쓰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도 일만 하며 산 리커 23년을 이야기하면 눈가에 물기가 어리는 부인은 놀면서 아무 것도 안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래서 화나고 쓸쓸할 때는 남편 몰래 시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알게 모르게 남편에게 물이 든 것이다. 신문에서 문예지 신인상 모집기사를 읽은 그녀는 그동안 써뒀던 시를 보내 봤다. 마당발인 남편 땜에 혹시 그녀를 알아볼까 봐 성도 처녀 때 성으로 바꿔 응모했다. 그러다가 지난달 해외문학사(대표 조윤호)로부터 신인상에 당선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노처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남편은 이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다. 바로 최석봉(69·시문학회 회장)·김선자(66)씨 부부의 이야기다. ‘가을을 업고/내게 온 사랑의 편지 한 장/일렁이는 외로움/살며시 가라앉히며…’로 시작하는 ‘가을편지’등 2편의 시가 처음 활자화된 김선자씨는 당선소감에서 ‘순수하고 소박한 소녀의 감성으로 돌아가 배우는 겸손한 자세로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녀는“생각은 좋게 하는데 막상 써 보면 안 되더라, 그냥 시답게 한 번 써보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아내를 지켜보던 남편은 “이 사람이 책은 참 좋아해요” 라고 한 마디 거든다. “이 양반은 성질이 불같은 사람인데 글을 쓰면서 많이 잔잔해 진 것 같다. 문학이 좋은 일을 한 것 같다”고 아내는 말한다. 손을 잡고 다정하게 포즈를 한 번 취해달라는 사진기자의 부탁에 이들은 다가서서 손을 맞잡았지만 상당히 어색해 했다. ‘부부 시인’은 다정하게 손잡을 일이 최근에 그닥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안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