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에 길을 묻다 / 성백군
집, 안과 밖
세상 이쪽과 저쪽 사이, 회색 벽돌담 위를
봄 여름 지나 가을까지 줄곧
초록으로 단풍으로 기어 오르던 담쟁이가
지난밤 된서리 맞고 비밀을 드러냈습니다
낙엽 한 잎 두 잎 땅 위에 쌓일 때는
억척스럽다는 담쟁이도 별수 없다 여겼더니
지금은 겨울 한 철 일손을 놓고 잠시 쉴 때라며
그동안 일군 성과를 담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아무도 넘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담장 위에 길이 났습니다
담을 타고 다니며 사방으로 얽힌 까만 줄기는
소통을 원하는 억눌린 사람들의 호소처럼 힘이 있습니다
삶을 찾아 이동하는 개미들의 행렬입니다
선구자처럼
한 생애 목숨 다해
회색 공터 위에 길을 터 놓았으니
이제는 가서 깃발만 꽂으면 된다고
발밑 수북한 낙엽들이
내 발길을 툭툭 치며 힘을 보탭니다
643 - 12052014
시
2014.12.30 08:56
담쟁이에 길을 묻다
조회 수 276 추천 수 0 댓글 0
번호 | 분류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878 | 시 | 구로동 재래시장 매미들 2 | 하늘호수 | 2016.10.20 | 281 |
877 | 시 | 길 위의 샤워트리 낙화 | 하늘호수 | 2015.08.30 | 281 |
876 | 시 | 독감정국 | 하늘호수 | 2017.01.16 | 281 |
875 | 시 | 별천지 | 하늘호수 | 2017.12.12 | 281 |
874 | 시 | 엉덩이 뾰두라지 난다는데 1 | 유진왕 | 2021.07.18 | 281 |
873 | 시 | 7월의 향기 | 강민경 | 2014.07.15 | 280 |
872 | 시 | 너를 보면 | 강민경 | 2014.07.28 | 280 |
871 | 시 | 구름의 속성 | 강민경 | 2017.04.13 | 280 |
870 | 시 | 유월의 향기 | 강민경 | 2015.06.20 | 279 |
869 | 시 | 딸아! -교복을 다리며 / 천숙녀 | 독도시인 | 2021.05.26 | 279 |
868 | 시 | 2014년 갑오년(甲午年) 새해 아침에 | 이일영 | 2013.12.26 | 278 |
867 | 시 | 요단 강을 건너는 개미 | 성백군 | 2014.04.12 | 278 |
866 | 시 | 언덕 위에 두 나무 | 강민경 | 2015.01.25 | 278 |
865 | 시 | 이국의 추석 달 | 하늘호수 | 2017.10.07 | 278 |
» | 시 | 담쟁이에 길을 묻다 | 성백군 | 2014.12.30 | 276 |
863 | 시 | 그 살과 피 | 채영선 | 2017.10.10 | 275 |
862 | 시 | 가을의 승화(昇華) | 강민경 | 2013.11.02 | 274 |
861 | 시 | 이러다간 재만 남겠다 / 성백군 2 | 하늘호수 | 2018.02.04 | 274 |
860 | 시 | 몸과 마음의 반려(伴呂) | 강민경 | 2015.06.08 | 272 |
859 | 시 | 가을비 | 하늘호수 | 2017.10.22 | 2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