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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 되어  (6)


높은 신열로 떨고 있던 그녀를 아버지는 병원으로 데려가 주사를 맞히고 밥을 먹였다.
얼마간 기운을 차린 그녀를 아버지는 자신이 살고 있는 바닷가 마을로 데려가셨다.
조용히 쉬다가 건강이 회복되면 돌아가라고 하셨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아버지의 의사 대로 따랐다.
그녀는 쇠약해 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말을 잃은 듯 어쩐 연유인지를 묻는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더는 캐듯이 묻지 않으셨다.    

여름이 끝나가는 바다는 한적했다.  
바닷가 한켠에는 손질한 그물들이 헝클어진 머리마냥 널려 있었고 방파제를 따라 낚시꾼들을 위한 작은 고기배들이 흔들리며 메달려 있었다
몇개의 회집과 바닷가를 싸고 돌아드는 마을 어귀마다에 있는 민박집들도 썰물이 빠져나간듯 북적였던 흔적만 더러 남기고 있을 뿐이었다.

수경은 늘 같은 자리에만 나가 앉았다.  
그곳에 앉아 바라보는 바다에는 무리져 놓여 있는 바위들이 있었다.  
바위들 사이사이를 돌며 부서지는 파도가 쉬질 않았고 갈매기의 날개짓도 그 울음 소리따라 읽혀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 뒤로 먼 수평선 위에는 나무잎같은 배가 희뿌옇게 시야를 흐리며 미끄러져 가기도 했다.      

그녀는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딸의 눈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을 버리고 딸을 버린 잊을 수 없는 아내의 눈빛과 너무도 닮아 있는 눈빛을...
인적이 거의 끊어진 한적한 바닷가에서 종일토록 바라보던 바다가 어두워질 때 까지 그렇게 꿈쩍도 않았다.  
가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곤 했다.  바닷가에서 눈물을 흘렸던 날은 그녀의 말문이 열리고 아버지와 예전처럼 다정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오랜만에 그녀는 아버지가 지어주는 밥을 먹고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지내면서 서서히 몸은 회복되었다.  어느 때는 아버지의 낚시점을 거들기도 했다.  바다에 나가 하염없이 시간을 지워버리는 일도 더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 이상 아버지는 딸의 눈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런 날들이 익숙해지자 아버지는 모든 것이 제 자리에 돌아왔다고 느꼈고, 그 즈음 그녀는 그녀가 살던 도시로 돌아가야 했다.  
아버지는 그녀가 떠나지 않기를 바랬지만 마지막 남은 학기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며 그녀는 떠나기를 원했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돌아온 그녀는 모든 것을 회복한 듯 보였다.
전 보다 더 부지런히 밀쳐두었던 일들을 하나 하나 다시 끌어내어 치뤄내기 시작했다.
학교 일도, 돈 벌이를 위해 벌여놓은 일도...
단지 병원 일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채 내버려두었다.
교수님으로 부터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교수님은 그의 죽음을 알려왔다.

“그가 너를 많이 찾았다고 하더라.  너에게 할 말을 갖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의 집에서는 형편상 퇴원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병원비도 밀리고 있었단다.  
  일단 약을 먹으면 일상적인 생활은 할 것이라는 담당의사의 소견도 있었고
  당시 워낙 사람이 조용하고 고분고분한 상태였으니까
  가족과의 생활에는 별 문제가 없을 줄로 생각했던거지. “의사나 가족이나...”

그녀는 무슨 말을 듣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귀에 윙...울리는 바람소리같은 것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차츰 커지더니 머리가 터져버릴듯이 요란하게 울려왔다.
눈을 감았다.  아무 소리도 듣지 않겠다는듯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아무 말도 입 밖으로는 내 보내지 못한 채로...

“오랜만에 집에 오니 좋았던가 보더라.  잘 지냈다고, 며칠은.  
  그러더니 너를 찾더란다.  병원으로 연락이 왔었다지 아마.  
  연락이 안 된다고 했고 다음 진료일에 어떤 소식이던 줄 수 있을테니 기다리고...
  그들은 기다리는 걸 못하는 사람들이라...
  아마 너를, 네 소식을 기다리지 못하고 찾아나선 모양이더라.  
  집을 나서기 전 줄곧 너를 만나야 된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고 가족들이 그러더라고..
  일주일만에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그는 시신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고...
  부산에 있는 산성터... 그 깊은 산 계곡에서 등산객들에 의해 발견되었단다.
  발을 헛디뎌 높이에서 떨어졌을거라는데  어찌 알겠니?  그 먼 곳까지...”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은 터질듯 죄어오는데 목구멍으로는 꾸역꾸역 무언가 끊임없이 넘어들어가는 듯 숨이 막혀들고 있었다.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던 그가 눈에 어렸다.  
그가 기다리는 영원히 오지 않을, 이 세상에는 없는 사람, 그의 외로움이 만들어낸 사람.  
그게 나였다면.. 그녀는 절망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 뒤로 자그마하게 교수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내일 그의 장례식이 있다.  너도 가보련?”


     *     *     *     *     *     *     *     *     *     *

이야기를 길게 이어갈 자신이 없다.
만만히 보고 성큼 내디딘 발,  부끄럽다.
다음 편으로 마무리를 짓고 앞으로는 어떻게,어떤 것을...
뒷짐지고, 내 것이 아닌양, 생각 좀 더 하고 대들어야지 싶다.
체력이 달리면 의욕도 달리는가보다.
그 놈의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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