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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


추방당한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네.
다시는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한 곳에 발붙이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며 그린 그림들  
                          -기영주의 <쓸쓸한 바람이 부는 그림 속의 작은 집> 중에서

추방당한 화가가 쓸쓸한 바람이 부는 그림 속의 작은 집을 그린다면 추방당한 시인은 쓸쓸한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서 모국어로 시를 쓸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모국어(주1)-어머니 나라의 언어로 쓰는 시는 추방당한 시인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지 않을까?  

서정시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본국 시단과는 달리 미주 시문학은 서정시의 보고이다. 떠나 온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서정시를, 많지 않은 미주 문예지의 어느 면을 펼쳐도 쉽게 발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부 너무 지나치게 많은 고향 타령과 상투적인 서정성에 식상하기도 하지만 미주 시인들에 있어서 고향과 서정시는 거의 분리될 수 없는 한 몸과 같은 것이다. 서정의 본질이 그리움에 있다면 미주 시인들에게 있어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 자체가 시를 쓰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몸이야 어디 있든
서쪽으로 떠나온 내 영혼
꿈속에서도 몽유병자로 몸을 기어 나와
고국 있는 서쪽으로 찾아간다.

                           -박영호의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 중에서

문제는 이러한 서정이 너무 낡아 보인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미주 서정시의 고답적인 모습은 항상 대상을 향한 정서를 새롭게 발견해야 하는 시인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한 탓으로만 돌려 버릴 수는 없다. 오히려 그리움의 대상이 너무 빠르게 변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고목은 베어졌고
까치 날지 않는
산비탈에는 잔풀들이 말라 가고
밭과 밭 사이 오솔길에는
코스모스가 넘어진 채 피어 있었습니다

조그만 방죽 뚝에는
오리 몇 마리 떨고 있었고
닫혀져 있는 사립문을
바람이 와서 흔들고 있었습니다

삼거리 주막집 토담 무너졌고
마당을 쓸던 노파가 허리를 쉬고 있었습니다
인사를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작년부터 문 다다쓰라우"하며 돌아섰습니다
                                         -기영주의 <가을에 다녀온 고향> 중에서

그래도 이 시인은 행복한 편이다. 밭과 밭 사이의 오솔길과 오리가 노는 조그만 방죽과 삼거리 주막집 토담 등 고향의 옛 자취라도 남아 있으니…….변해버린 것은 사내들 농을 받아주던 제법 반반했던 주막집 과부가 귀머거리 노파로 늙어버린 무심한 세월뿐이다. 그러나 몇십년 만에 가 본 고향이 도저히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한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이 사라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로 급격한 농업경제사회의 해체를 든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근대문학이란 주로 소설을 지칭하지만 서정시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1960년대를 기점으로 박정희 정권에 의해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고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는 시인에게 있어 서정의 생태계를 파괴해버린 것이 아닐까?

1960년대를 기점으로 해서 그 이전에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를 보낸 이민 일 세대 시인들이, 사라져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넘치는 서정시를 분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2)  그들은 고향으로부터 공간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과, 시간적으로 너무 오래되어 사라져버릴지도 모르는 불안감이라는 이중의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시를 쓰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시를 통해 그들이 잃어버린 서정의 집, 존재의 집을 되살리려는 안쓰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복구를 향한 투쟁의 와중에서 이들 중에는 그리움의 대상을 나의 고향이라는 개인적 체험의 공간을 넘어서 모성이라는 인간 전체의 고향으로 전선을 확대하기도 한다.

마두금이란 악기 이름을 난생처음 들었다.
몽골 사람들이 낙타나 말의 뼈로
피리를 만들어 분 것이리
사막에서만은 모질고 무정한 짐승
생전 잘 울지도 않는 낙타도
이 마두금 소리 들리기만 하면
걸음 멈추고 눈물을 흘린단다.
생지옥 같은 사막에서 배가 고프면
뜨거운 모래도 씹고
제 살도 씹는다는 그런 짐승이
목 놓아 운다고 한다.
금의 소리가 어드메 어린 낙타가
제 어미 찾는 울음소리와 똑같기 때문이란다.
내 언제 그 마두금 소리 한 번 들어 보았으면
그 애절한 음색이
내 생의 목 울대 깊이 쌓인 슬픔 퍼내어
사막의 마른 알갱이 단 몇이라도 적시어
춤추게 하였으면
시를 쓰는 한 인간의 눈물을 엿보려고
전인미답의 모래 위에 발자국 찍으며
낯선 낙타들도 여럿 달려오리
그 마두금 뼈 울음 속에 말 못하는
짐승의 숨넘어가듯
내 울음도 그렇게 끊어질듯 끊어질듯 숨 한 번 넘어갔으면.
                                                      -배정웅의 <마두금 소고>전문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모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사는 사막과 같은 세상에서 시인이 부르는 노래는 마두금이란 악기가 내는 소리와 같은 것이리라. 그 소리를 듣고 제 살도 씹는다는 그런 짐승도 어머니의 목소리로 착각하고 전인미답의 모래 위에 발자국 찍으며 달려와 눈물 흘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인이 평생 단 한수라도 남기기를 바라는 절창이란 바로 그런 시를 말할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 속에서 사춘기를 보내고 전원공동체적 삶이라는 고향의 기억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차세대 미주시인들의 시에서도 고향은 중요한 시적 감수성이 발아하는 원천이다. 그러나 이들의 시에서 나타나는 고향은 원로시인들의 서정시에서 나타나는, 오로지 꿈에 그리던 변치 않는 고향과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오늘은 독립기념일
전자렌지에 속성으로 계란찜을 했다
대낮부터 독립기념 불꽃놀이 팡팡 터지는 이 땅에서
고봉밥처럼 솟은 계란 위의 파들이
엄마 무덤 위의 푸새처럼 부풀어 올라 있다
비행기 타고 간 어린 딸년은 팔랑팔랑 쫓아다니는데
심은 풀 다 자라고서야 발 디뎌 보았던 그 부푼 땅
미국 가모 총 싸움질 많다더라, 야야
내가 맞이했던 첫 독립기념일은 빵빵거리는 총소리에
웬 싸움질 밤새도록 할까 싶어, 이불 쓰고 지새웠는데
드새는 불꽃난리 말해 주는 사람 없었는데
할로윈날 밤, 달리는 앞 차 트렁크에 삐죽 나온 가짜
팔뚝 보고 식겁하며 저렇게들 살고 싶을까, 했었는데
독립기념 바비큐 파티에 트릭 오 트릿 퍼레이드를 하며
나의 아이들은 부풀어 오른 땅, 기억도 없이 자랐는데
밥 위에서 찐 계란을 상 위에 올리시며
없이 살아도 맛있게 살아야 한데이
하시던 목소리, 아직도 따끈따끈 목구멍에 걸려 있어
오래 오래도록 부풀어 있을 엄마의 작은 땅은
아직도 내게서 독립하지 못한, 한 줌의 땅
                                       -이월란의 <독립기념일> 전문

이들 시인에게 고향이란 어머니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것이거나 내가 이 땅에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차마 떨쳐버리지 못하고 목구멍에 자꾸 걸리는, 내게서 독립하지 못한, 한 줌의 땅일 뿐이다. 서서히 내가 젊은 날 살아왔던 땅보다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다. 이처럼 타향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이민자로서의 운명에 대한 첫 자각은 울컥 솟구치는 서러움 같은 것이다.

원죄까지 캐낼 수도 있다는
무언의 압력
깊고 차가운 시선의 지문 인식기
그 앞에 서다
지긋이 눌러둔 작은 잘못은
어정쩡한 웃음으로 가리고
가장 순한 표정으로
두 손 가지런히 내 놓는다
-나도 이민자입니다-
증명이 필요 없는 히스패닉 여성의
거친 손길
흑인지 백인지 명명백백 밝히겠다며
마구 나를 찍어낸다
저 소용돌이치는 밭고랑이 나를 증명해 줄까
억울하게 추방당한 이민지들의 사연이 떠올라
손이 움찔한다
적절한 포즈를 취하지 못한다고 툴툴대는
그녀의 몸짓
손에 힘주지 말라는 음성에
힘이 들어있다
이 땅에 살게 해 달라고
마음으로 모으는 손
울컥,
서럽다
                                   오연희의 <지문을 찍으며> 전문

서러움이란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하는 회의감 사이의 자기분열적 감정에 대한 모멸감이다. 나는 이 오연희의 <지문을 찍으며>란 시에서의 서러움이란 정서에 매우 주목한다. 비로소 미주 서정시에 있어서 이민자로서의 주체가 자기분열을 하는 것이다. 즉 기존의 미주 서정시에서의 고향=조국, 타향=미국이라는 확고한 등식이 깨질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종래의 미주 서정시가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내가 사는 큰 나라, 미국 땅에 대해서는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한 점의 의심도 없었지만 오연희에 와서는 내가 발을 붙이고 살아보려는 순간 어느새 손에 힘주지 말라는, 음성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거만한 미국의 모습을 발견한다. 고향을 떠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가운데 늘 마음의 끝이 고향으로만 향하는 데에서, 이민자로서 내가 사는 이 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리움의 대상이 고향에서 주체(나 혹은 이민자)로, 주체에서 타자로 그 지평을 서서히 넓혀가는 것이다.(주3)

그 어느 날 비가 내리고
알 수 없는 고통으로 당신이 힘들어지거든 우리동네로 오셔요.
우유와 빵이 떨어졌다고 어서 가서 사와야 한다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쪽지를 남겨놓고 오셔요
커넌街와 아틀란틱街가 만나는 곳, 푸른 페인트를 칠한 슈퍼로 오셔요
비오는 날, 혹시 밀가루가 필요하거나 소금이 몹시 필요하거든

우리동네 수퍼엔 소년이 산답니다.
짐도 싸주고 우산을 받쳐주기고 하고 잠시 당신의 장바구니를 봐주기도 할
소년, 눈이 찌그러진 소년, 입이 찌그러진 소년, 다리도 절룩거리는
나이야 어찌되었건 언제나 소년 같은 한 사람이,

안녕, 잘 있었니? 웅얼거리는 그의 입은 잘 열리지 않지만
그러나 당신이라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소금과 밀가루가 죽도로 필요했던 그 사람이 진정 당신이라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장바구니에 톡톡 떨어지는 싱싱한 빗물소리를
막 떨어진 올린더 꽃잎같이 따스한 물소리를,
어깨를 지나
무릎을 지나
주룩 주룩 흘러내리는 빵, 우유, 소금, 밀가루, 그리고 사과,
상추, 아 달콤한 망고의 목소리들을

작고 동그란 입 속에 갇혀
우물거리는 그 목소리가 어찌 그리 쩌렁쩌렁 가슴을 울리는지
아니 울릴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캐지 마셔요.
어느 의사가 받았을까
어느 어른이 걸음마를 가르쳤을까
어느 바람이 재생의 길을 가르쳤을까
혹시 어느 종교를 믿는가, 묻지 마셔요

아무도 모르게 당신도 빗물이 되고 눈물이 되고
마침내 도랑이 되어 하얗게 흐르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집으로 돌아가실 때랍니다. 가서 즐겁게
빵이 되고  망고가 될 때랍니다

당신과 소년의 발을 적시며 흘러가던 슬픈 가을 빗줄기처럼
때때로 사고 파는 일도 간절한 사랑이거나 그리움이 되는 것을
그때가 바로 잊을 때랍니다. 잊을 수 없을 때까지
조용히, 조용히 잊을 때랍니다.
                            -임혜신의 <비 오는 날을 위한 광고> 전문


임혜신의 경우에는 그 대상을 이민자를 넘어서 부랑자, 노약자, 불법체류자 등 이 땅의 모든 소외받은 것들에게로 넓혀 간다. 이 오지랖 넓은 아줌마는 결국 시를 통해 약하고 불쌍한 것들을 모두 감싸 안으려는 <우주적 모성애>를 발휘하는 것이다. 임혜신의 시에서는 고향도 타향도 없다. 한국인도 미국인도 없다. 그녀에게는 모두가 어머니의 사랑에 목마른, 눈이 찌그러지고, 입이 찌그러지고, 다리가 절룩거리는, 나이야 어찌 되었건 언제나 소년일 뿐이다. 때문에 그녀는 잔칫날 내 자식 남의 자식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퍼서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던 어머니처럼 미처 오랜 타향살이에 따른 향수에 젖어 눈물 적실 여유가 없는 것이다. 비로소 미주 서정시가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보편성의 지평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주4)

고향의 상실에 따른 비통함에서 출발한 미주 서정시가 배정웅 시인이나 임혜신 시인처럼 세대 차에도 불구 결국 모성으로 귀착함은 우연이 아니다. 고향이란 결국 우리 인간이 돌아가야 할 존재의 집이며 어머니의 자궁이기 때문이다. 다만 배정웅 시인에 있어서 시란 모성이 상실된 사막과 같은 시대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는 울부짖음이라면 임혜신 시인의 시란 그러한 미아를 부둥켜안고 달래는 자장가와 같은 것이다. 우리 이민자들에게 이 땅은 아직도 쓸쓸한 바람이 부는 언덕이지만 우리가 지칠 때 찾아가는 작은 집에 포근한 어머니의 자장가가 들린다면 조금은 서럽지만 그래도 살아볼 만한 땅인 것이다. 서정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이 미주 땅에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씨앗을 품고 바람에 날려 지구촌 곳곳에 서정의 꽃을 활짝 피우기를 바라는 희망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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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왜 우리는 떠나온 고향을 고국, 조국이라고 부르면서 고향의 언어는 모국어라고 부르는 것일까? 오생근의 다음과 같은 문학에 대한 정의는 이 의문에 어느 정도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문학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언어를 추구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억압적이고 비인간적인 규율의 세계에서 자유롭고 진정한 것, 인간적인 것을 꿈꾸고 그리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학은 그리움으로 짓는 언어의 집이다.
                                       -오생근의 <그리움으로 짓는 문학의 집> 중에서

우리 마음속의 고향을 간직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머니의 언어를 추구하는 것이다. 어머니의 언어야말로 우리를 고향으로 데려다주는 네비게이터이다. 결국 미주문학은 고향문학이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고향을 다시 찾아가며 부르는 노래이다. 조국을 넘어(dia) 흩어진(spora) 사람들이 새로운 집을 찾아 나서며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기록한 여행일지이자, 이산(離散)에서 정주(定宙)를 향한 고통스러운 순례일지이다. 또한 그것은 고향, 어머니, 바다, 집 등의 동일한 기의를 가진 기표들의 끝없는 환유과정이며, 타향, 아버지, 사막, 바람 등의 기표들과의 끝없는 투쟁이다. 결국 문학이란 오생근의 말대로 아버지의 세계에서 어머니의 언어를 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주2) 어쩌면 이 세대가 진정한 의미의 서정시를 쓸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서정시의 근간을 이루는 전원 공동체의 삶에 대한 기억에서 나오는 감수성(백석이나 정지용, 김소월 등)을 그 이후의 세대에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한 감수성이 자랄 수 있는 체험적 공간으로서의 전원공동체적 삶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주3) 이민 초기 시절 우리가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라도 고향의 돌멩이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듯이 모든 것을 고향과 비교해보며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라캉이 말하는 상상계적 단계에 머물러 있음과 비유될 수 있지 않을까? 어머니와 나를 동일시하고 거울 속의 나를 구별하지 못했듯이 우리는 한동안 이 땅에서도 어머니의 잔상만 찾아 헤매었다. 개인의 성장 과정이 상상계, 상징계 그리고 실제계의 단계를 거치듯이 문학의 흐름 또한 이러한 흐름을 거쳐 가지 않을까?  

주4) 임혜신의 시에서처럼 그리움의 대상이 고향과 주체를 넘어서 타자에게까지 확산되는 것은 미주 서정시에 있어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미주 서정시가 고향을 향한 그리움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러한 임혜신의 경우에도 결국 모성애에 귀착하는 것은 이 땅에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그만큼 고향(어머니) 없는 서러움을 겪어본 탓이 아닐까? 결국 어머니가 부재한 세계의 삭막함을 인식한 자로서 어머니 찾기와 어머니 되기는 임혜신 시의 뿌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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