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7.10 08:59

만남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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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미주문학>을 통해 매 계절 인사를 드리고 있는 이승하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름 문학캠프에 초대해주시어 설레는 마음으로 강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시를 잘 쓰기 위한 10가지 방법'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올해는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변화 양상'이란 주제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협회 카페에 들어와 인사를 드리는 김에 수필을 한 편 올려놓습니다.
  www.poet.or.kr/lsh에 근작들 올려놓을 터이니 간간이 방문해 주시기를.
  회원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미지의 그대에게

  안녕하십니까?

  저는 매일 아침 신문을 읽을 때, 빠뜨리지 않고 보는 난이 있습니다. 부고를 알리는 난입니다. 간혹 제가 존함을 아는 이가 그 난을 장식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전혀 모르는 이의 이름과 유가족 이름이 그 난에 나와 있습니다. 왜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에 그런 궂긴 소식을 꼭 보느냐구요? 그것은 제 이름도 언젠가 그 난에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하루입니다. 아침(혹은 새벽)에 시작되는 오늘 하루를 과연 나는 성실하게 살아갈 것이냐, 양심대로 살아갈 것이냐, 좋은 일을 하며 살아갈 것이냐를 저는 그 난을 보면서 잠시나마 생각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다 이분들처럼 죽어버릴 나 자신인데 불성실하게, 양심 불량으로, 남을 괴롭히며 산다면, 그 하루의 나는 죽은목숨이며 산 주검인 것이지요.

  저는 죽게 되면 화장을 해달라고 유언을 할 것입니다. 죽어서도 지상에 땅 몇 평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대단한 생을 살 자신이 없습니다. 무덤 앞에 시비를 세워 후학의 추앙을 받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제가 쓴 시가 시비에 새겨질 만큼 불후의 명작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해본 바 없습니다. 국토의 몇 퍼센트가 묘지이고 그 면적이 점점 더 늘어만 간다는데, 묘지 공화국을 만드는 데 저까지 참여하고 싶은 생각 또한 추호도 없습니다.

  병원 중환자실에 면회를 갔다가 숨을 막 거두고 있는 환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얼굴을 보니 넋은 이미 나가 있었고, 가쁘게 숨을 헐떡거리며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족의 오열 속에 막 숨을 거두는 그 환자의 모습은 언젠가 맞을 지상에서의 제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써보았습니다.


  내 죽는 날이 겨울날이라면
  그 해 들어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날
  허허벌판 아무데나 누워 눈 펑펑 맞으며
  마지막 숨 헐떡거리고 싶다

  내 죽는 날이 가을날이라면
  끝간 데 없이 별이 열린 날
  수확기의 들판 아무데나 누워 밤하늘 바라보며
  무한 천공의 별들에게 내 부고 전하고 싶다

  내 죽는 날이 여름날이라면
  긴 장마의 절정 장대비 퍼붓는 날
  흙탕물 아무데나 누워 매맞듯이 비 맞으며
  내 육신 대자연에 수장시키고 싶다

  내 죽는 날이 봄날이라면
  달도 별도 안 보이는 칠흑의 밤
  물오르는 대지 아무데나 누워 땅기운 느끼며
  붉은 흙 더 기름지게 썩어가고 싶다.
                        ―[임종 장소를 찾아서] 전문


  뒷동산 같은 데 올라가 보면 벌초를 잘 해둔 묘보다는 잡풀을 잔뜩 이고 있는 묘를 보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후손이 잘 돌본 묘는 눈에 잘 뜨이지만 무덤인 듯 아닌 듯한 봉분은 눈에 잘 안 뜨이지요. 산을 개간해 밭을 만드신 아버지께서는 산 곳곳에 버려진 무덤들을 그렇게 안타까워하십니다. 버려진 무덤은 점점 평평해져, 대지와 수평을 맞춰갑니다. 봉긋 솟은 봉분보다는 평평한 땅이 더욱 자연에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요?

  '가문'과 '조상'의 개념이 희박해진 오늘날이라 증조부, 고조부의 묘만 해도 안 돌보게 됩니다. 50년만 지나면 버려질 무덤을 왜 만들어 국토를 훼손시킵니까. 무덤 또한 집착일 것입니다. 사자가 이승에 집착을 하면 귀신이 되는 법입니다.

  무욕의 마음이 시심일 터인데, 욕심의 탑을 쌓고 있으니 큰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마다 신문지상의 부고 난을 보면서 자성하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내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 황천길이다. 오늘 하루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고, 내일 어떻게 죽느냐가 똑같이 중요하다.'

  저는 이 둘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성실하게, 양심대로, 선업을 쌓으며 산다면 죽음의 순간이 와도 담담하게 죽을 수 있겠지만 자신만을 위해 욕망하고 집착하며 살아왔다면 죽음을 억울해 하거나, 죽음을 화려하게 치장하려 들 것입니다. 훌훌 털고 가는 저승길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오늘 하루를 더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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