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4.05 14:26

등산의 풍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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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의 풍광

  근 일 년 만에 등산을 갔다 왔다. 그동안 세상 슬픔은 나 혼자 지닌 것처럼 살았다. 작년에 그가 살았을 적에 서너 번 가본 아에아 등산이다 .작년 여름은 크루즈 여행을 알라스카 다녀오느라 못가고. 그다음은 그가 세상을 훌훌히 떠나고 그 슬픔이 나 혼자만 인 것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주님을 십자가에 매일처럼 몇 번씩이나 박느라고 돌아 볼 여가가 없었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지난주에 이선생부부와 같이 아에아 산을 올라갔다. 이 선생부부는 내눈을 깁이 들여다보면서 우리 기 받으러 갑시다, 하여 처음엔 무슨 말씀인지 하고 침묵하다 아, 그 것, 하고 웃음이 나왔다. 내게 동의를 얻고 싶은 것이 아니라, 통고를 한 것이다, 다 털어 버리려 가는 것입니다 라고 눈으로 말을 한다.
  그가 갔다고 나도 따라 갈 수도 없고, 울고 산다고 돌아 올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원하는 바도 아닐 것, 마음을 정리를 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예쁘게 가꾸고, 살자 라는 결심과 함께, 아에아 산에 올랐다.
항상 그가 운전을 했으니, 길눈도 어둡지만 길을 몰라 이 선생부부 뒤를 따라 갔다. 한국은 눈이 내렸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cherry Guava 가 잘 익은 것이 눈에 띈다. 따서 입에 넣으니 새콤하다, 늙어지니 신 것이 싫다. 단것만 좋으니 그것도 늙음인가 싶기도 하다. 산에 오르면 머라가 지끈 거리던 두통도 가신다. 산에 오를 적마다 나는 말을 삼간다. 일행의 뒤나 앞서 간다.
  산이 말해 주는 이야기들을 듣기 위해서다, 산에서는 산이 말을 하고, 나무가 말을 하고, 새들도 말을 하고 풀들도 그들만의 언어가 있다. 다 알아 듣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들에게 대한 예의일 것 같다, 우리끼리만 떠들고 가면 산이나, 나무나, 새들이, 풀들이, 너희들 끼리 떠들고 갈 것이면 산에는 뭐하려 올라 왔니 할 것 같다,  
  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무가 말하는 말을, 새가 들려주는 노래 소리를 듣지 못하고 내려간다면, 무얼 하려고 산에 올라 왔니 할 것 같다. 나는 정중하게 그들이 들려오는 세미한 음성 까지도 들으려 한다. 가만히 들으면 소리가 참 많다, 싸각 싸각 소리, 나무와 나무 끼리 부딪히는 소리, 멀리서, 가까이서 들리는 새소리, 새소리와 같은 음성인가 곱기도 하고 가늘기도 하고, 청하 하기도 하고, 둔탁하기도 하지만, 듣기에 참 좋다. 나무 끼리 부딪히는 소리는 잘 들어야 들을 수 있다. 그리하여 나는 뒤떨어져 간다. 남편은 왜 빨리 안와 하고 소리치다가, 나중에는 돌아서 오다가 나를 만나면 다시 올라 가기도 한다. 그래도 모처럼 사람 소리 아닌, 자연의 소리를 들으려 와서 못 듣고 가면, 잃어버리고 가는 것 같다 .
  몇 년을 토요일 마다 등산을 했는데, 토요 한글학교를 맡고서 같이 등산을 못한 구 교장선생님은 나이가 많다, 팔십을 가까운데, 깡마른 체격에 키가 큰 분이 휘적휘적 잘도 산을 오른다. 그러면서 무얼 그렇게 열 번을 토하는지, 한국 정세가 어떻고 ,주로 월간 조선에 나오는 소식들로 연신 열 번을 토하면서 알려 준다, 그 분 덕에 정치란 어떤 것인지, 좀 주서 들어서 누가 말하면, 고개는 끄덕이는 수준까지 가게 되었다. 하도 많은 말을 하기에 시한수를 써서 그에게 주었다
구 선생님의 세상 이야기는
산이 홀로 듣네.
산은 묵묵히 듣고 있네.
그는 한 주간 세상 이야기를  
산이 말없이 홀로 듣네.
이렇게 시를 써 드렸더니, 내가 그렇게 말이 많은 가요 했다. 너무 많은 말을 하면 몸에 기가 빠진다고 한다. 말은 아끼라고 한다. 산에 오면서 개를 풀어 놓은 사람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훌훌 뛰어 다니는 개를 이리 피하고 저리피하며 올라 가면은 피곤해진다. 그냥 떠들고 소란스러운 사람들을 보면 떫은 감을 물은 것 같다, 산에 와서 떠들다 가려면, 산은 왜 오노, 싶어진다. 한 무더기 떠드는 부대가 지나고, 한 가족이 어린 아이들 셋과 개 한 마리와 아버지가 지나가고 나니, 산이 조용하네 하며 조근 조근 들려주는 다정한 소리들, 가끔 가다 청아한 새소리는 청량제 같다.
  앞서 가는 이 선생 부부는 천생 연분이다, 이선생인 단정하고 부인은 생글 생글 눈가에 웃음을 가득 채우고 말을 하면, 그의 눈 속에 푹 빠져 다 들으면서,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고 나면, 또 당했네. 싶어진다, 즐거운 비명이지만, 춘삼월 인데 여름이다,
  닐리꼬이 넝쿨이 쭉쭉 뻗어 올라가고 있다. 남편과 같이 살던 집에 앞 처마 밑으로 닐리꼬이를 두 그루 심었더니, 이사 나올 쯤 돼서는 닐리꼬이가 조롱조롱 많이 달려 있었다. 두고 이사 나오고 나니, 코스모스가, 닐리꼬이가, 자꾸만 보고 싶어져, 하루에도 몇 번씩 발걸음이 그 집을 향해 가는 것을, 한 번씩 지나가기도 하고, 들리기도 하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그 집에서 오지 말라고 하고, 그 닐리꼬이와, 코스모스를 다 뽑아 없애 버린 것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인정머리도 없는 놈, 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장가도 못가고, 혼자 살지, 집주인을 마구 비난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와이산은 가파르고 뾰족 뾰족하다 . 생성된 지 오래 되지 않은 것 같다. 한국 산은 여인의 허리처럼 동글동글 곡선이 아름답다. 나무들이 몇 백 년 된 것도 있는 것 같다.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울창하다. 반쯤 오르다, 이 선생은 커다란 나무가 중간 턱이 있는데, 그 나무에 올라가 납작 엎드려 매달려 가지고, "기를 내게 좀 주시오"  말하면서 나무에 납작 엎드린다. 나는 사진 한 장 박았다. 사진을 박으면서 작년에 남편과 같이 이곳을 등산 할 때 남편도 똑같이 납작 엎드려 "기 좀 주시오" 하는 모습을 겹쳐진다. 좀 더 살아도 되는데, 아픈데도 없었는데, 마음이 저려 온다,
  아에아 산의 나무들은 쭉쭉 뻗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이 솟았고, 곧다, 절개를 느낀다. 한국의 소나무는 구부러지고, 옆으로 번지어서 예술성이 나지만, 이곳 나무들은 곧게 뻗어있다, 내려오다, 바닥이 나무뿌리로 된 곳에 곧게 뻗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곳에, 제일 말쑥하고 잘생긴 나무 두 그루가 이 선생님 부부의 나무란다, 아, 내 나무야 잘 있었니 한다. 내 나무라고 한들 아무도 당신 나무 아니요 할 것인가, 이담에 죽으면 자기들은 화장을 해서 재를 이 나무 밑에 묻을 거라고 한다.
  나는 그거 그리 쉽지 않을 것, 속으로 생각했지만 말은 안했다. 그렇게 하든 안하던 나와는 관계없는 일, 그들이 죽어 봐야 알 일, 지금부터 왈가왈부 할 것 없지 않는가 싶어, 미리 맡아 나야 하나요. 허긴 별 자리도 산다면서요. 하고 호호 하하 웃으며 내려 왔다. 우리는 더불어 사는 것, 우리가 마지막 가는 곳, 이런 아름다운 산에서 살면 좋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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