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8 14:52

페인트 칠하는 남자

조회 수 3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페인트 칠하는 남자


                                                            이 월란



축구공만한 페인트통에 바다를 퍼 왔다
삶의 햇살에 찌들어 갈라진 황토빛 지붕 위에 앉아
육신의 허리에 심어진 가훼들이 베어지고
청초했던 푸새들도 뽑히어져 황토가 뻘같이 드러나버린
그의 건토에 이제 도도히 바다를 심고 있다
기와지붕 텃밭에 이맛전의 주름살같은 고랑을 파고
한 이랑 한 이랑 뇌수의 꿈조각같은 씨앗을 뿌린다
노가리 한 감청색 홀씨는 바람을 먹고 자랄 것이다
파란 심줄이 돋아난 손목에 쥐어진 붓이 움직일 때마다
쏴아아 쏴아아 파도소리를 내고
사다리를 옮겨 놓을 때마다 철썩철썩 파도가 솟구친다
이마 위의 땀을 닦을 때마다 끼륵끼륵 바다갈매기가 날아가고
하얀 수말이 암벽에 부딪히듯 그의 60평생 뱃전을 두드린다
잠시 고개 든 시선은 정확한 나란히금으로 수평선을 그어
동색의 하늘을 정확히 갈라놓는다
옥개석 가에 둘러쳐진 비닐커버들은 흰포말되어 바람에 나부끼고
뱃전 너머에 총총히 심어진 바다는
가을 아침 햇살에 고기비늘처럼 반짝인다
저 작업이 끝나면
저 남자는 출렁이는 바다 위에 누워 타원형 널빤지를 타고
정년의 여생을 실어 파도타기를 할 것이다
새벽별들은 늙은 등대수가 된 그의 욱신대는 뼈마디마다 내려와
등대불되어 반짝여도 줄 것이다
아침이면 그는 수역으로 둘러싸인 백파의 바다에 뜬
별보다 먼 절해의 외딴섬이 되어 있을테니까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21 포이즌 아이비(poison ivy) 신 영 2008.07.22 338
2120 포스터 시(Foster City)에서 / 성백군 하늘호수 2018.07.30 92
2119 포수의 과녁에 들어온 사슴 한 마리 김사빈 2006.12.19 477
2118 평화의 섬 독도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2.21 150
2117 평 안 1 young kim 2021.03.30 157
2116 시조 펼쳐라, 꿈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3.17 134
2115 시조 편지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4.23 118
2114 편지 김사빈 2007.05.18 174
2113 펩씨와 도토리 김사빈 2005.10.18 276
» 페인트 칠하는 남자 이월란 2008.03.18 338
2111 시조 퍼즐 puzzle / 천숙녀 file 독도시인 2021.06.25 141
2110 패디큐어 (Pedicure) 이월란 2008.02.25 333
2109 팥죽 이월란 2008.02.28 193
2108 팥빙수 한 그릇 / 성백군 하늘호수 2018.10.30 79
2107 파일, 전송 중 이월란 2008.04.11 243
2106 파묻고 싶네요 / 泌縡 김 원 각 泌縡 2020.02.06 68
2105 파리의 스윙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6.22 94
2104 파도의 사랑 2 강민경 2017.01.30 102
2103 파도의 고충(苦衷) / 성백군 1 하늘호수 2021.01.27 59
2102 파도에게 당했다 / 성백군 하늘호수 2020.12.10 177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