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05 14:54

병상언어

조회 수 12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병상언어


                                                                       이 월란
  



째깍째깍 경쾌하던 시간의 숨소리가, 지금쯤 날아다니고도 남았을
그 소리가 힘겨운 듯 내 옆에 누워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포박당하지 않을 완전한 자유주의자
생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척 누워 있는 귀여운 리얼리스트를 보면
한번쯤 속삭여 주고도 싶다 <우리 같이 죽어버릴까?>
후후, 웃기지 말라고 몸을 빼버리곤 주섬주섬 날개를 달고 있는
저 영원한 현실주의자
소몰이 당하듯 우우우 일어서는 나의 시간들
잠시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생의 화덕에 열이 고여 있다
묽은 죽같이 씹히지도 못하고 삼켜진 기억들이
지난 세월의 올가미 위로 대책없이 둥둥 떠오르는 병상
두통처럼 머물다 가버린 사랑의 열병이
의식 저편의 병동에서 아직도 잠행하고 있다
회진을 도는 운명의 발자국에 귀기울여 보면
고액권 지불 후에 그래도 쓸만한 거스름돈처럼
빳빳이 남아 있는 시간들
창모슬마다 싸늘히 식어버린 마른기침같은
건조한 슬픔들이 쌕쌕거리며 푸른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나의 수명보다 훨씬 긴 현실의 집이 시간의 날개 위에 지어져 있고
인생을 통째로 저당 잡히지 않으려면 길을 잃고 헤매던 악몽 쯤은
잊어버려야 한다, 병상 깊이 묻어두고 일어나야 한다
노승의 손목 위에 모가지를 늘어뜨린 수주알같은
시간의 밀어를 한번쯤 헤아려보며 뻣뻣한 권태의 맥을 푼다
환약같은 희망을 몇 알 삼켰다
치열하게 새겨 놓은 삶의 무늬는
그저 외로움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나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3 누전(漏電) 이월란 2008.03.23 151
482 저 환장할 것들의 하늘거림을 이월란 2008.03.22 194
481 원죄 이월란 2008.03.21 185
480 목소리 이월란 2008.03.20 171
479 망부석 이월란 2008.03.19 152
478 페인트 칠하는 남자 이월란 2008.03.18 339
477 봄의 가십(gossip) 이월란 2008.03.17 163
476 별리동네 이월란 2008.03.16 115
475 장대비 이월란 2008.03.15 293
474 바다를 보고 온 사람 이월란 2008.03.14 164
473 가시내 이월란 2008.03.13 215
472 여든 여섯 해 이월란 2008.03.12 244
471 노래 하는 달팽이 강민경 2008.03.11 306
470 꽃씨 이월란 2008.03.11 163
469 Daylight Saving Time (DST) 이월란 2008.03.10 156
468 울 안, 호박순이 성백군 2008.03.09 241
467 봄밤 이월란 2008.03.08 132
466 獨志家 유성룡 2008.03.08 129
465 흔들리는 집 이월란 2008.03.06 190
» 병상언어 이월란 2008.03.05 121
Board Pagination Prev 1 ... 85 86 87 88 89 90 91 92 93 94 ... 114 Next
/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