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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사랑은 죽지를 않고 ㅡ작품해설이 길어서 (1) 과 (2)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1) 를 읽으시고 (2)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누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유명품이
먹는 것인지
입는 것인지
밭에 심는 곡식의 씨앗인지를……
  
저는 해방둥이로 태어나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 전쟁을 겪었고
남의 나라에서 30년을 살다 보니
유명품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추측하건대
유명품은 씨앗인가 봅니다
땅에 심는 씨앗이 아니라
가슴에 심어지고
욕망으로 키워져서
입에서 터져 나와
바람 타고 천지사방 흩어지는
전염병 같은 씨앗인가 봅니다
  
누가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유명품이 무엇이며 어떻게 생겼는지를….
헐렁한 옷을 입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길을 가고 있는 저에게    -「유명품[名品 ]은 씨앗인가」전문
  
‘곡식 씨앗’과 ‘가슴에서 기생하는 씨앗’ 그리고 ‘배고픈 사람의 구제’와 ‘불순한 욕망의 확장으로 인하여 타락하는 현실’을 대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시인은 명품 브랜드에 대한 과도한 욕망을 풍자하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풍자(satire)는 현실 모순을 소극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야유하고 조소하는 비판 수단이다. 우회하여 비판하지만 현실 모순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그리고 풍자의 최종 목표는 징벌(懲罰)이 아니라 부정적 요인의 개선이다.

즉 부정적 요인이 제거되어 건강한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희망을 진작시켜준다. 따라서 모순을 지적하는 준열한 자세나 개선을 촉구하는 준엄한 가르침은 배제되어 있다. 다만 불순한 욕망이 과잉으로 분비되는 것에 대한 경고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같은 경고는 궁극적으로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인의 의지는 삶을 인식하는 겸허한 자세와 엄정한 자기 수련으로 내면화된다.
  
3-2. 자연의 섭리와 자기 수련

순자(『荀子』)는 천론(「天論」)편에서 “하늘의 움직임을 따라 다스리면 길하고, 마음대로 하면 흉하게 된다”고 진술하였다. 여기에는 자연계를 운행하는 규율은 인간 의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멋대로 행동하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가르침이 내재하고 있다. 박영숙 시인 역시 자연이 보여주는 변함없는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자기 수련을 거듭한다.
  
어제도 꽃이 피고, 꽃이 지고
오늘도 꽃이 피고, 꽃이 진다
  
아침에는 눈을 뜨고
저녁에는 죽는 연습
산다는 건
눈 감으면 종말인데
  
내 삶은
내 소유물이 아니라서
내가 노력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삶은 내 것이 아니기에
행여 세파에 때 묻을까
자연 속에
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         -「살아있어 행복한 날」부분
  
1-2행에서는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꽃의 일생을, 3-6행에는 태어나고 죽는 사람의 일생을 그리고 7-13행에는 시적 화자가 지향하는 삶의 자세가 드리워져 있다. 즉 ‘행여 세파에 때 묻을까 / 자연 속에 / 내 마음의 뿌리를 내리는 시간’에서 드러나듯 시인은 삶에서 지켜야 할 모범을 자연에서 찾고자 한다. 이렇듯 자연이 시인에게 모범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은 변함없는 규범 때문이다.
  
--- 전략 ---
봄 꽃은 여름 꽃을
여름 꽃은 가을꽃과
논쟁하지 아니하고 지고 피며
꽃들은 제각기
색깔과 향기를 가지고
따뜻한 햇살에 흔들리는 암 수술
씨방을 익힐 뿐이다
  
세찬 비바람 홍수에
땅덩이가 바다로 가지 않게
낮은 풀들이 흙을 끌어안고
육지를 공유하고 있는 옆에서
흙 속에
내 마음 묻어두고 올려다본 하늘
하얀 애기구름 배냇짓 미소
한가롭게 흘러서 간다            -「공유」부분  
  
꽃은 제철을 맞춰 피고 지며, 미세하지만 각 부분들은 저마다의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세상의 구성 원리 이와 다르지 않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일견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조화 때문에 이 세상은 유지되는 것이다. 그렇듯 우리 역시 시기와 질투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고 상생의 세계를 지향할 때 비로소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은 실현 된다.
그런 세상을 이룩하기 위하여 시적 화자는 ‘한 여름날의 투명한 고통도 / 가을의 쓸쓸함도’ 감당해야만 하는 삶의 실체를 인식하고, ‘자연의 순리에 머리 숙여 / 맨 손을 흔들며 자리를 내어줄 준비를 하는’(「봄에 지는 낙엽」) 것처럼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다.
  
--- 전략 ---
어쩌면,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을지 몰라도
어쩌면, 내가 가을의 수확을 볼 수 없을지 몰라도
이 순간의 내 삶을 헛되지 않게
황금 같은 봄날의 아름다운 순간에
꿈을 심으며
살아있어 행복에 젖는다          -「이 순간의 내 삶을 위하여」 부분
  
--- 전략 ---
삶은 우리들의 것이 아니기에
  
노력 없이 공짜로 세상사는 사람 없어
작은 일에도 미칠 만큼 열정을 쏟아야만
후회 없는
삶의 성취감을 만날 수 있는
  
인생은 달리기와 같다        - 「인생은 달리기」 부분
  
--- 전략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길
버릴 건 모두 버려
  
가져갈 수 없어도
나누고 싶은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끝없이 밀려오는 수평선 저 넘어
붉은 해가 잠드는 곳에
  
내 하얀 날개를 접고 싶다      - 「내 이름 없이 죽어갈 시인의 마음」 부분
  
씨를 뿌리는 일은 내 몫이었지만 수확은 누구의 몫이 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행복한 것은 파종하는 봄날 그 보다 더 소중한 꿈을 심었기 때문이다. 이는 ‘가을에는 / 떨어진 낙엽 썩어서 거름되듯 / 이웃 위해 아픈 상처 배려하며 / 이웃 위해 쓸모 있는 / 참된 ‘나’가 되’(「낙엽이 거름되듯」)기를 갈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他人)과의 관계에서 나를 버릴 때 이타심(利他心)은 생성된다.

성취감은 성실한 삶에 대한 결과로 생성되는 것이다. 쉬지 않고 계속 뛰어야 하는 달리기와 같이 성실할 때 번뇌와 고통은 사라지고 생명의 소리와 마음의 풍요로움이 그 자리를 채워준다. 버릴 것은 미련 없이 버리고 가져가기보다는 차라리 나누고 싶다는 시적 화자의 진술과 ‘굽어진 허리를 곧추세워 / 고개 드니 / 노을이 / 내 앞에서 / 낮추고 비우라 하는 구나’(「가을인생」)라는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세속적 욕망이 제거된 겸허함이다.이처럼 자연의 섭리를 모범으로 이타심(利他心)과 성실함 그리고 겸허함을 지향하는 자기 수련의 과정이 동반될 때 우리의 현실은 상생과 조화의 공간으로 개선될 것이다. 구체적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전략 ---
이슬 맺힌 풀밭에 발을 적시며
생명이 움트는
텃밭과 꽃밭에 물을 줄 때면
그 속에 나를 세워놓고
함께하는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공기를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생각을 흙 속에 묻어두고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의 모습대로 서서
말을 할 듯
반기는 나무와 꽃들 --- 후략 ---      「내 삶의 향기」부분
  
생명이 움트는 순간 그 가운데 내가 서있으면 나와 자연은 일체가 된다. 즉 자연은 나에게 나는 자연에게 동화(同化)되어 서로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그 순간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일체의 것들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체험하게 된다.
나무와 꽃이 아름다운 것은 ‘따뜻한 햇살과 바람과 공기를 / 분수에 맞게 소유하고 / 생각을 흙 속에 묻어두고서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 자신의 모습대로 서’있기 때문이다. 즉 변하지 않는 항심(恒心)의 자세와 분수를 알고 만족하는 자족(自足)의 상태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너와 나가 일체가 되어 조화로운 상생이 실현되는 곳을 지향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에서 태어나 / 물을 밟고 가야 하는 길 위에서 / 젖을수록 무거운 솜 같은 날개를 어루만지며 / 발 밑에 실 매듭을 풀어가야 하는 하루하루’ 같은 삶의 고통을 견뎌야 한다. 그래야만 그 끝에서 ‘캄캄한 허공의 두려움을 안고서도 / 행여 그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 아, 푸른 꿈’(「삶의 무게를 덜어내려」)과 같은 희망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이다.  
4.
박영숙영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독자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일깨워 주고 있다. 첫 번째는 완전한 삶을 구축하고 영원한 행복을 구가하기 위해서는 진실한 사랑의 정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우리 현실이 상생과 조화를 지향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수련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박영숙영 시인의 이 같은 자세는 추상적 구호와 관념적 유혹이 아닌 실천 가능한 현실적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에는 다양한 소재를 시적 대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각 작품이 드러내는 주제와 의미 또한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에 시인의 의지가 큰 흐름을 유지하면서 일관하고 있다는 점 또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박영숙영 시인에게 있어 시 쓰기는 기쁨과 슬픔, 행복과 고통 등 삶의 모든 것들과 진지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특히 조국을 떠나 다른 문화를 배우면서 살아야 했던 시인에게 삶 그 자체가 늘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도전은 성취와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보다 큰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기쁨과 슬픔 그리고 성취와 좌절의 순간 시인이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시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시인은 완전한 삶과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인 자신의 소망과 보다 나은 사회를 지향하는 우리의 소망으로 확장시켰다. 이 같은 박영숙영 시인의 자세가 소중하게 인식되는 것은 시의 영역이 사적 공간으로 위축되고, 시의 의미가 관념으로 퇴행하는 오늘 우리 현실에서 회복하여야 할 시의 영역과 시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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