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기형도 따라하기/김진학

2007.03.07 09:52

미문이 조회 수:1110 추천:26


지난 이야기 지만
난 문학을 전공하기 않았기에 늦은 나이에 시평론, 시창작 과정을 대학에서
다시 공부하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학부의 학생들이 하나같이 들고 다니는
시집 ‘잎 속의 검은 잎’은
요절시인 기형도가 죽은 뒤에 나온 그의 시집이다.
아마 지금까지 이 시집만큼 꾸준히 팔리는 시집도 없을 것이다.
서점에 가면 언제나 신간코너의 구석에 얌전히 쌓여 있으니까...
기형도.... 그의 형상언어는 한국시단의 역사를 바꿀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아직도 많은 문학도들이 그를 추종한다.
그 전의 신춘문예는 말할 것 도 없고, 2007년 신춘문예 당선시 중에서 문화일보의 <구름에 대한 몇 가지 오해 / 김 륭>이 그 좋은 예이다.

위에 소개한 시를 작가의 이름을 떼고 기형도의 미 발표작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아마 열의 아홉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형상언어의 사용방식과 시의 전개방식, 발상 등이 기형도의 시와  매우 닮았다고 본다.
그렇다면 왜 이런 시가 신춘문예에 당선 됐을까?

창원대 민병기 교수는 <신춘문예는 개선되어야 한다>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매년 당선되는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연구 대상이다. 시의 경우, 당선작 대부분이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 많은 역대 당선작 중에 독자들에게 애송되는 시가 없다. 이 사실은 신춘문예 제도가 독자 반응이 좋지 않은 작품과 작가를 양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춘문예 당선은 문학적 사건은 될 수 있어도, 문학성 그 자체일 수는 없다. 그것이 동일시된다면, 문학성은 무의미해지고, 문학성에 대한 독자들의 공신력은 사라질 것이며, 결국 문학은 생명을 잃게 된다. 이는 신춘 제도가 문학의 생명력을 높이기 보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결국 심사위원들의 자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필자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실력 있는 문인이 아니라 유명문인이 최종심사를 보는 신춘문예....
유명문인이라고 다 실력이 있는 시인인가?  좀 깊은 생각을 해 봐야 겠다.
그런 신춘문예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해 본다,.

무차별 기형도 따라하기..... 웃기는 말이다.
어느 날 나는 모 대학 문창과 졸업반 학생에게 '잎 속의 검은 잎'이 좋은 시냐고 물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좋은 시라고 찬양하였다.
그 시를 외울 수 있냐고 물었다.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면 그 시의 깊은 뜻을 내게 설명해 줄 수 있는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생은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건 작가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라며....
작가 혼자만 알 수 있는 시, 그런 시를 쓴 한 요절 시인이 이 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문학지망생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무슨 뜻인지도 모를 시를 찬양하다니...
그리고 무차별 따라하기라니....

어느 해 모 신문사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하신 분을 우연한 기회에 저녁을 함께 하였다.
그 해의 그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시는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였다.
내가 물었다.
"선생님, 이번 xxx신문사에서 당선작으로 뽑으신 시가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던데
선생님은 아시니까 뽑으셨지요?"
"예심에서 걸려내고 수백 편이 제 손에 왔는데.... 저도 사실 좀 그렇습니다.”
"네???”
"요즈음 시의 흐름이 그래서....."
말문이 막혔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심사평에서 극찬을 하여 놓고 심사위원이 모른다니.....

이렇게 말하면 어떤 시인들은 김춘수의 <무의미의 시>를 논하며
작가도 모르는 시를 독자가 마음대로 상상하게 만들라고 말한다.
무의미의 시, 정작 무의미의 시를 논한 김춘수 시인의 시 역시
무의미의 시보다는 의미 깊은 시가 더 많다.
무차별 형상언어를 난사하는 시인들만 실력 있고 좋은 시인이란 말인가?
기형도는 기형도의 색깔이 있고 나는 나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나라든 시가 어느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나라의 문학은
퇴보한다. 문학은 그 나라의 국민들의 정서이기 때문이다.
형상언어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런 형상언어의 시만
제일이어서도 안 된다.
무차별 기형도 따라하기...
새해 벽두부터 왠지 찝찌름하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17 문학축제 김종회 교수 강의 원고 미주문협 2017.08.24 255
공지 미주문학 USC 데어터베이스 자료입니다. 미주문협 2017.08.14 234
74 지식인의 말 미문이 2007.10.09 906
73 ‘문학관광’ 시대 활짝 미문이 2007.09.08 908
72 두 편의 시가 주는 의미-성기조 미문이 2007.08.20 947
71 시인 선서(1990년)/김종해 미문이 2007.08.13 975
70 시인과 사랑/정용진 미문이 2007.07.23 1117
69 올해 문학계 ‘대표주자’ 누굴까 미문이 2007.07.03 938
68 밀양 - 허영과 탐욕의 잘못된 만남이 빚어낸 비극 - 미문이 2007.06.06 1186
67 정다혜 시집 '스피노자의 안경' 미문이 2007.05.21 1535
66 시를 쓰려거든 여름 바다처럼 /이어령) 미문이 2007.05.16 939
65 다시 2007년 기약한 고은 시인 "그래도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 미문이 2007.04.25 1009
64 윤동주 3형제는 모두 시인이었다 미문이 2007.04.25 1407
63 문단 대가들 장편 들고 잇달아 귀환… 침체 문학계에 활력소 미문이 2007.04.25 1019
62 이문열 씨!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세요 미문이 2007.04.25 1006
61 2007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살펴보니… 미문이 2007.04.25 1254
60 도대체 순수란 무엇인가? -한국 문학에서 순수의 의미 미문이 2007.03.21 1067
59 미당의 죽음을 통해서 본 '순수문학'의 허구성에 대한 단상(短想) 미문이 2007.03.21 1185
58 순수문학과 대중 미문이 2007.03.21 1197
57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 신선한 활동 미문이 2007.03.07 1132
» 무차별 기형도 따라하기/김진학 미문이 2007.03.07 1110
55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마광수 미문이 2007.02.12 10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