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마광수

2007.02.12 03:57

미문이 조회 수:1077 추천:14

[손민호기자의문학터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마광수 마광수(사진)에 열광하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고 떠들고 다녀서, 장미여관으로 가자고 뭇 여성을 선동해서 마광수를 찾아 읽은 건 아니었다. 마광수는 게릴라였다. 고지식하고 점잖은(혹은 그러한 척만 하는) 사회와 혼자만의 방식으로 싸움을 벌인 문화 게릴라였다. "그럼 당신은 야한 여자가 싫으냐"고 되묻는 그의 뻔뻔한 질문엔, 온갖 종류의 허위의식을 비웃는 삐딱한 시선과 사회 금기와 한판 붙겠다는 다부진 결의가 담겨있었다. 그는 전사였다. 문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떨쳐 일어선 민주화 투사였다. 민주화 열기가 문화 영역으로 번지던 1990년대 들머리, 마광수는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 영웅, 겁먹다 2000년 늦가을 어느 허름한 술집. 그는 불안해 보였다. 심하게 손을 떨었고 눈동자는 자주 흔들렸다. 마광수를 응원하는 몇몇이 어렵사리 만든 자리였지만 그는 끝내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연방 담배만 꺼내 물었다. 그가 구속된 건 92년 10월 29일이었다. 91년 발표한 장편 '즐거운 사라'가 음란물 판정을 받으면서 두 달간 옥살이를 했다. 93년 2월엔 연세대 국문과 교수에서도 해직됐다. 그러나 98년 3월 사면.복권됐고, 같은 해 5월 대학에 복직했다. 한국에서 판매금지됐던 '즐거운 사라'는 일본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하여 어느 정도 상처가 여문 줄 알았다. 그의 아픔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툴툴 털고 일어섰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고, 자신을 기억하는 몇몇 앞에서 겨우 말했다. 겁먹은 영웅의 얼굴은 초라했다. # 야함과 음란함 2005년 5월 장편 '광마잡담'이 출간됐다. '마광수가 '즐거운 사라'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야한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에도, 소설은 하나도 야하지 않았다. 표현의 수위나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광수에 따르면, 일탈과 모반의 기운을 동반해야 비로소 야해질 수 있었다. 하나 소설은 그렇지 못했다. 다만 음란할 뿐이었다. 최근에 발표한 장편 '유혹'도 야하지 않았다. 섹스클리닉이란 선정적인 소재도 소설을 야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표지 상단 '19세 미만 구독불가'란 문구가 되레 낯설었다. 소설은 밋밋했고, 지루했다. 그렇다고 마광수가 변절한 건 아니었다. 10년 전과 똑같은 얘기를 되풀이하는 게 문제였다. 반짝이는 여성의 긴 손톱에서 성적 상징을 읽어냈던 90년대, 마광수는 변태란 소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네일아트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지배적인 문화코드 중 하나다. 아무도 섹스를 말하지 않던(또는 못하던) 시절이었기에 마광수는 야했던 것이다.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제 아무리 낯 뜨겁고 망측한 얘기를 쏟아내도 마광수는 지저분해 보이지 않았다. 돈 욕심도 없었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다. 그에겐 소년 같은 구석이 있었다. 밤하늘 별을 세는 윤동주의 여린 마음 같은 게 있었다. 마광수는 윤동주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더 이상 야하지 않다고 마광수를 비난할 수는 없다. 변한 건 그가 아니라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모든 게 달라졌다. 제자들의 시를 거의 그대로 자신의 시집 '야하디 얄라숑'에 실은 그의 모습에서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내가 미쳤나 보다"며 변명을 늘어놓을 땐 차라리 슬펐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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