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고대했던 한국 문학계는 또다시 후년을 기약해야 했다. 외국 언론.베팅업체 등에서 올해 수상 후보자의 한 명으로 유력하게 거론했던 시인 고은(73.사진)씨가 결국 수상의 영광을 차지하지 못했다.수상자 발표가 예정됐던 12일. 이날 오후부터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마정리 대림동산 장미골 173호 고은 시인의 자택 앞에는 취재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국 문학, 나아가 문화계 전체의 '최대 경사'로 꼽힐 만한 고은씨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오후 8시 발표 시간이 임박한 시간에는 100여 명의 취재진으로 골목이 가득 찼을 정도였다. 취재 차량 30여 대가 시인의 집 앞에 대기했고, 지상파 방송 3사의 중계차도 총출동했다.

고은 시인은 지난해에도 유력한 후보자로 언급됐으며, 특히 올해에는 북한 핵실험 발표로 한반도에 대한 외국의 관심이 집중돼 문단 일각에서는 고씨의 수상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했다.

고 시인 자택의 대문은 이날 하루 종일 잠겨 있었다. 고 시인은 지난달 27일부터 미국에 머물다 7일 귀국해 집에서 조용히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뉴저지에서 열린 세계 시 축제에 참석하고 돌아온 것이다.

오후 6시쯤 그의 부인인 이상화(중앙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잠시 대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A4 용지에 타이핑한 프린트물을 대기 중인 기자들에게 나눠줬다. 시인은 올해도 상을 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통보받았던 것일까. 종이에는 다음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오늘은 나의 날이 아닌 듯합니다. 타인의 향연을 축하합니다. 지금 한반도는 이겨내야 할 시련을 맞고 있습니다. 내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10월 12일 아침 고은."이윽고 오후 8시. 스웨덴 한림원이 올해 수상자로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를 선정했다는 소식이 시인의 집 앞에도 전해졌다. 몇 시간을 기다렸던 취재진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이날은 한국 문학의 새로운 내일을 다지는 시간이 됐다. 시련의 한반도에서도 문학의 정진은 계속될 것이라는 시인의 각오는 사실 우리 문학 전체의 다짐일 테니까.

안성=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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