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씨!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세요

2007.04.25 09:48

미문이 조회 수:1006 추천:12


2007/03/15 오전 8:31 | ...

이문열 씨!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세요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고…극우반북주의의 색채가 한결 짙어져

며칠 전 소설가 이문열의 신작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이문열의 신작이 출판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이 소설을 읽어 볼 마음은 별로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이 변화를 일으킨 것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이 씨의 인터뷰 기사를 본 이후였다.

문학평론가 이명원과 소설가 이문열 사이에 이뤄진 적지 않은 분량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혹시 언론의 침소봉대에 의해 이문열이 오해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엇보다 이문열 자신이 언론의 왜곡 보도 때문에 자신이 ‘극우반북주의자’ 내지는 ‘영남패권주의자’로 대중들에게 낙인 찍혔다는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작 이문열 본인은 스스로를 균형 잡힌 보수주의자 정도로 인식하는 성 싶다.

<호모 엑세쿠탄스>를 서둘러 읽은 것은 보수주의자라기에는 너무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혹은 있다고 평가되는) 소설가 이문열이 진성(眞性) 보수주의자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기 때문이었다.

소설 한 권 읽고 작가가 지닌 이념적 좌표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문열만큼 자신의 작품에 작가의 이념적 좌표를 또렷하게 새기는 작가도 흔치 않으니 이 점은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 씨 스스로도 <호모 엑세쿠탄스> 서문을 통해 작가가 소설을 소설로만 읽어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현 세태를 격렬히 비판하고 있지 않은가?

지울 수 없는 극우반북주의의 흔적들

주지하다시피 극우주의자들의 주요한 특징은 사회적 다위니즘과 극단적 엘리티즘을 추종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중을 몇몇 음모가들의 조작과 선동에 쉽게 휘둘리는 우중(愚衆)으로 평가하며 민주주의를 중우(衆愚)정치의 다른 말로 이해한다.

극우주의자들은 분명 스스로를 철인(哲人)으로 여겼을 플라톤이 꿈꾸었던 철인 통치에 가까운 정치 체제를 선호한다. 이들은 체력, 지력, 윤리적 감수성 등의 거의 모든 부면에서 사람 사이에 생래적 우열(優劣)이 있다고 단정한다. 극우주의자들이 사회적 다위니즘과 극단적 엘리티즘을 정신세계의 공통분모로 삼는 것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한편 반북주의는 분단과 전쟁을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 중 일부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들은 북한을 섬멸해야 할 악(惡)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들은 김정일 정권과 북한 주민들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그리 깔끔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극우주의와 반북주의가 위험한 까닭은 무엇보다 이런 이념들이 ‘차별’과 ‘배제’의 원리를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극우주의의 정치적 실천이라는 세계사적 경험을 볼 때 극우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반북주의도 사회적 해악이 만만치 않다. 반북주의의 가장 충실한 실천이 무력에 의한 북한 흡수통일일 터인데 이는 가능성이 낮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 또한 남북한 모두에 재앙이 될 뿐이다. 무력 이외의 방식을 통해 김정일 정권을 붕괴시킨다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기존의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기실 대북 문제의 해법은 넓은 의미의 햇볕정책 뿐이다. 비록 김정일 정권이 변덕스럽고 미덥지 못한 파트너임에는 분명하지만 말이다.

불행히도 그간 소설가 이문열이 쓴 작품들, 이 씨 자신의 표현을 빌면 ‘정신의 자식들’, 가운데 상당수가 극우주의를 이념적 질료(質料)로, 반북주의를 작품의 배음(背音)으로 삼고 있었다.

<호모 엑세쿠탄스>는 그렇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수 없어 유감이다. 아니 오히려 극우반북주의의 색채가 한결 짙어지고 여과 없이 표현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문열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침없이 친북좌파 정권으로 낙인찍은 뒤 혹독한 비판을 퍼부어댄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친북좌파 정권으로 규정하는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친북의 혐의는 찾기 어렵고 좌파적 가치와 정책들은 레토릭으로만 존재한다.

또한 이 씨 본인은 적어도 양(量)적 차원에서는 보수와 진보에 대해 균형 잡힌 비판을 하려고 애썼다고 했지만, 이 소설 어디에도 보수-여기서의 보수는 극우를 의미한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물론 어떤 소설가가 보수적 가치들을 진보적 가치들 보다 우월한 것으로 승인할 수도 있고 사건과 사태의 해석을 보수적 관점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실관계와 그 평가에 관한 한 최소한의 객관성과 공정함을 지향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이문열의 신작 소설 <호모 엑세쿠탄스>에는 이런 미덕을 찾아보기 어렵다. <호모 엑세쿠탄스>에는 과도한 연역(演繹)이 사방에 넘쳐난다. 쉽게 말해 이문열은 자신의 주장-예컨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친북좌파라고 표현함-을 움직일 수 없는 진실로 전제한 뒤 이를 뒷받침할 사실들을 매우 편향적으로 제시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한야(寒夜)대회-이 소설 3권에 등장-에 참석한 자들의 독기(毒氣)서린 발언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소설가 이문열의 적의(敵意)는 섬뜩한 수준인데 이 씨는 자신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전쟁사>를 이용한다.

요세푸스의 <유대전쟁사>에 등장하는 기스칼라의 요한과 붉은 땅 이두매를 다스리는 거라사의 시몬은, 로마제국과 전쟁 중인 유대 땅 예루살렘에 입성해 유대동족들을 수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등의 악행을 통해 유대민족을 분열시키고 결국에는 유대민족이 로마제국에 멸망당하는데 큰 역할을 한 악당들인데, 이문열은 노골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기스칼라의 요한으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을 요한의 후견 아래 있는 열심당의 각료로, 김정일을 거라사의 시몬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한(김대중)과 시몬(김정일)이 몇 해 전부터 ‘내통’하고 있으며, 요한(김대중)은 시몬(김정일)과의 내통을 위해 시몬에게 조공(朝貢)을 바쳤고, 이를 얼치기 열심당원(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들이 비호하고 있다는 주장이,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빌어 공공연히 발언되고 있다. 이쯤 되면 명예훼손의 가능성까지 따져볼 수 있을 지경이다.

한편 <호모 엑세쿠탄스>에는 극단적 엘리티즘이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다. 촛불 시위에 참여하고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대중들을 소수 음모가들의 선동과 감성 이벤트에 홀린 어리보기들로 묘사하는 대목들은 윤리적 미감을 거스르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인터넷 언론과 시민기자에 대한 야박하기 그지없는 평가에는 노골적인 경멸의 기미(幾微)마저 포착된다.

물론 이 소설 안에는 이문열 소설이 지닌 장점들, 그 중에서도 유려한 문체와 끝 간 데 모를 교양(敎養)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나 이문열 소설의 최대 강점이라 할 유려한 문체와 압도적 교양은 이 소설이 내포한 치명적 결점, 즉 작가가 지닌 극우반북 이데올로기에 문학적 외피를 씌워 독자들에게 전파하려는 의도를 은폐하거나 희석시키려는 장치나 고안(考案)이라는 혐의 아래 있다.

소설가 이문열이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길 바라며

최근 이문열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들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꿈 가운데 하나가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는 것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문열의 최신작 <호모 엑세쿠탄스>를 읽어 보니 이 씨의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이 적어도 당분간은 없어 보인다. 이 씨가 지금 착용하고 있는 극우반북의 안경을 바꿔 쓰지 않는 한 ‘멋있는 보수주의자’가 될 가능성은 앞으로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제 장년기를 넘어 노년기에 접어드는 이 씨가 자신의 정신 안에 착근된 극우반북 프레임(frame)을 탈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 씨 자신을 위해서나 장래 이 씨가 생산할 ‘정신의 자식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 한국 문단을 위해서 이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타고난 문재(文才)에 박람강기(博覽强記)가 더해 진 소설가 이문열이 균형 잡힌 보수주의자의 시선을 가지고 작품을 생산한다면 이는 한국 문학계만이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다.

모쪼록 이 씨가 이런 이치를 밝히 깨달아 멋진 보수주의자가 되길 기대해본다.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협동사무처장


출처: 뉴스엔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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