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시와 어려운 시/김진학

2007.01.30 15:08

미문이 조회 수:1412 추천:25

쉬운 시와 어려운 시


말이나 글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사실 100년 전이라면 1세기 밖에 안 되는 데도 우리는 100년 전의 한글이라 해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잘 읽지 못한다. 글이 이럴 진데 말이야 오죽할까 싶다. 지금 대학에 들어온 신입생들에게서 자기들끼리의 대화를 옆에서 들어 보면 매우 빠른 언어와 그들만 사용하는 은어들 때문에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이렇듯 한 세대가 채 차이가 나지 않는 데도 말은 벌써 달라져 가고 있다. 또한 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해방 후 외래어가 봇물같이 들어와 수천 개의 외래어가 지금은 엄연한 우리말이 되어 국어사전에 올라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사실 난 개인적으로 난해한 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읽으면 딱딱하고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를 언어의 나열, 나하고는 적성이 맞지 않다. 작년부터 난해한 시들이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나 권위 있는 문학상에서 어느 정도 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독자를 의식한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쯤, 김소월 시인이 내겐 우상이었다. 세월이 흘러 늦은 나이에 문학을 공부하면서 어느 날 문창과 교수에게 물었다.

"김소월 시인이나 윤동주 시인 같은 분이 만약 지금시대에 태어났어도 과연 유명해 졌을까요?"하고, 그런데 교수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솔직히 그 정도의 글로서는 지금 시대에는 살아남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 분들은 글을 사랑하고 감수성과 창의력이 뛰어나신 분들이라 아마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 시대에 맞는 글을 쓰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말 유쾌한 명답이었다.
지금 시대는 시의 기교나 언어적 기술보다는 점점 발상이 뛰어난 쪽으로 가고 있다. 또한
시에서 적당한 메타포(metaphor)가 없다면 그건 산문이나 수필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사실 함축된 시어가 있나 하면 길면서도 문학성이 뛰어난 시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다.
시인에게 시의 사유가 자유롭듯, 여러 분야의 시가 있어야 하며,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 쉬운 시만 있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어려운 시만 있어서도 곤란하다. 하지만 어려운 시도 시의 한 분야이며 그건 한국시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 할 것이다. 짧고 단답형의 시만 고집해서도 안 되고 긴 장문의 시만 고집해서도 안 된다. 시인은 불의에 저항 할 용기와 시대를 비평할 은유를 구사할 실력도 쌓아야한다. 저녁 한 끼 를 먹더라도 밥상은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많다. 수저와 밥공기는 물론이고, 밥과 반찬, 물과 국, 식탁 등이 있으며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서 식단이 된다. 밥이 국을 보고 너는 왜 밥이 아니고 국이냐고 물을 수가 없다. 현대시를 쓰면서 쉽던 어렵던, 은유가 많던 적던, 시가 길던 짦던 그런 것은 각 시인의 특성이며 비평받을 대상이 아니다. 다양한 시적(詩的)문화는 한국시의 발전을 가져온다. 한국인만큼 정서적이고 감성적이며,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언어적 사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민족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의 시는 찬란한 황금기를 맞고 있다고 보고 싶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현대시가 다시 고전의 시가 되는 날 지금의 말과 언어는 어느새 바뀔 것이며 전공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의 한글이 읽기 힘든 시기도 올지 모른다.
그래도 시는 현재 우리 곁에 있고, 시인들은 그들만의 다양하고 고유한 필치로 세상의 여러 모습들을 노래한다. 그건 우리글이 세상에서 빛을 내고 있는 찬란한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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