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풍경
                          
                                    - 김미령


시청 앞 작은 연못에 기억상실증에 걸린 비단잉어가 산다

몰락한 귀족처럼 느릿느릿 헤엄치면

양귀비꽃 수면에 비쳐온다

우리는 그걸 주홍빛 슬픔이라 부른다

허기진 햇빛이 정수리 위에 어른거린다

메마른 광장의 오후 2시가 아가미 속을 들락날락하는

지루한 염천(炎天)의 대낮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벽을 두드려보듯 지느러밀 움직여

물의 파동을 느껴본다

배에 와닿는 물의 감촉이 따스하다

눈앞이 침침해지고부터는 소리에 집착하게 된다 좁고 가늘어진 바 람소리

공중에 박음질하듯 이따금 지저귀는 새소리

무수한 소문들이 물기를 머금고 부풀었다 사라진 벤치에

빈 종이컵이 실신할 듯 입벌리고 있다

새우깡을 무심히 던지던 손이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던 건 무엇일까

生의 마지막 들숨을 쉬듯 물위로 솟구칠 때 무심코

돌아서던 누군가의 하얘진 귓불을 보았을 수도 그때 잠깐 흔들린 듯

눈을 깜빡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서로가 엿본 것은 아무 것도

들킨 것 또한 아무 것도 없다 다만 그 동안에도

애초에 누구의 관심거리도 아니었다는 듯

개미들이 떨어진 여치 다리를 십자가처럼 옮기고 있었고

체인을 오래 매만지고 있던 자전거 옆으로 은색 승용차가

서류뭉치를 신생아처럼 안고 급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모두 외로움을 흙먼지처럼 껴입고 있지만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 법을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벤치 밑에 조금 구부러진 쇠뜨기풀이 다시 일어서는 동안

내 어슬렁거림은 어떤 사소함에 비유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보이지 않게 어긋나도록 돼있는 정교한 교차로 같은 일상 속에서도

무언가에 열중하는 순간 누구나

제 몸에 딱 맞는 표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모두 서로에게 그림 속 배경일 뿐이라는 듯

과자 부스러기들이 바람에 흩어진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2017 문학축제 김종회 교수 강의 원고 미주문협 2017.08.24 255
공지 미주문학 USC 데어터베이스 자료입니다. 미주문협 2017.08.14 234
34 책도 이젠 맛보고 산다 미문이 2006.03.16 1806
33 2006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모음 미문이 2006.01.20 1547
32 신춘문예 당선시 연도별 감상하기 미문이 2006.01.13 1283
31 2006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24개 신문) 미문이 2006.01.13 2538
30 우리는 왜 문학을 갈망하는가 미문이 2005.12.02 1415
29 한국시인협회 독도지회 설립 미문이 2005.10.03 1317
28 현대시 100년사 최고 시집은? 미문이 2005.10.03 1207
27 "아직도 빛나는 건 별과 시 뿐" 미문이 2005.09.10 1094
26 吳圭原의 '새와 나무와 새똥… 돌멩이' 미문이 2005.09.09 1579
25 시인이 시인에게 물었네 ‘시시(詩詩)콜콜’ 미문이 2005.07.11 1364
24 페미니즘(feminism)문학이란 무엇인가?/이승하 미문이 2005.04.05 1353
23 <font color=blue>좋은시의 조건 </font> 미문이 2005.04.05 1046
22 <font color=red>삼월, 그대에게</font> 미문이 2005.03.18 1353
» 『05년 서울신문 당선작』흔한 풍경.. 김미령 미문이 2005.03.14 982
20 『05년 문화일보 당선작』즐거운 제사.. 박지웅 미문이 2005.03.14 1091
19 『05년 한국일보 당선작』나무도마..신기섭 미문이 2005.03.14 1033
18 『05년 동아일보 당선작』단단한 뼈.. 이영옥 미문이 2005.03.14 894
17 문인이 뽑은 가장 좋은시! 가재미/문태준 미문이 2005.05.04 1357
16 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장태숙 미문이 2005.07.04 1623
15 영시감상<누군가의 상처를 이해한다는건> 미문이 2005.06.05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