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심사평

2005.01.18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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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시 / 이선자 <돌에 물을 준다>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 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해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이슬을 행각하며 내가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뒤돌아 볼 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웟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다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 수 없을 때, 긴꼬챙이 같이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로 먹고 살았다 아픔도,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물진렀다 캄칸한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강가 밤이슬 사라지고 소리없이 웅크린 기억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너의 긴 길이 내 몸 속으로 들어왔다 멈출 수도, 늙어갈 줄도 모르는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준다 * 63년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출생. * 광주대학 문예창작과 재학 중 심사평 / 이향아 예선을 거쳐 올라온 것은 아홉 사람의 시 44 편이었다. 그 중에서 이선자씨의 <돌에 물을 주다>를 2005 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선자씨가 응모작품으로 보내온 시는 위의 <돌에 물을 주다> 외에 <비닐봉지>, <소리의 집>, <잠들지 않는 육교>, <그림 속의 물>등 다섯 편이었고 이 시들의 수준은 거의 균일하였다. 한 사람의 작품 수준이 고르다고 하는 것은 그 시작의 능력에 신뢰감을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물을 끌어들이는 이선연씨의 싱싱한 감각, 어휘의 적절한 절약,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시상의 흐름도 장점이라고 하겠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는 이성연씨의 장도를 축하한다. 지금의 열정이 마르지 않도록 간수하면서 정성을 기울여 이끌어가기 바란다. 항간에서 '신춘문예 스타일의 시'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그것은 평범한 시가 아닌 특별한 스타일의 시라는 말일 것이다. 다소 장황하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짧은 시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은 시를 서사적으로 이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실험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시의 지평을 열자는 노력의 일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시든 일반적인 시든,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적 세계관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시각, 지나치게 요설적이어서 부자연스러운 어휘들의 접합은 감동력이 약하다. 시가 아무리 개성의 문학이라고 해도 보편성을 너무 무시하면 요령부득의 암호가 될 수 있다. 최종까지 올라온 작품으로는 구본창씨의 <이 땅에 꽃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사설을 조금만 더 여과하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는 이선자씨의 장도를 축하한다. 지금의 열정이 마르지 않도록 간수하면서 정성을 기울여 이끌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