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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문학 캠프 전야와 아침 8/17/07~8/18/07

2007.08.29 01:53

이 상옥 조회 수:300 추천:54

엊저녁 오 연희씨 댁에서 늦게 잠이 들었으나 습관대로 시카고 시간으로는 아침 5시 20분 쯤이니까 LA시간으로 오밤중인 밤 3시에 일어나 어제 찍은 사진을 정리도 할겸 일어나 앉았다. 우선 카메라 사진을 모두 컴퓨터에 옮겨 논 다음 간단히 일기 형식으로 어제 있었던 일들을 순서대로 대략 컴퓨터에 입력 시켜 놨다. 그런 대도 시간이 대략 2~3시간 가까이 걸려 그렁 저렁하니 벌써 시간이 현지 시간으로 7시 가까이 됐다. 난 곧 옷을 챙겨 입고 걸을 준비를 한다음 집을 나섰다. 벌써 한 시간 반 전에 오 연희씨부부가 새벽 예배를 가며 대략 집 도착 시간이 아침 8시 쯤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해서 지금 부터 한 시간 가량 걷고 오면 시간이 마치 맞겠다 싶었다. 집 근처를 돌아보며 걷기 시작했다. 엊저녁 커피를 마셨던 스타 -벅 커피 샵을 향했다가 거리가 너무 짧아 래돈도라는 실제 이름을 따라 쭈욱 서쪽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길로 쭈욱 가면 태평양 바닷가가 나오겠지 ? 그때 그러니까 정확하게 작년 2월 달 중앙일보 난 픽션 상 타러 왔을때, 이 정아 님과 전 달문 선생님이 함께 와서 먹은 회 생각을 하며 걷고 있었다. 막 돌아 와 샤워를 하고나니 오 연희씨 부부가 벌써 와 있었다. 아들은 아직 자고 있는 모양이여서 셋이 맛난 아침을 먹었다. 오 연희씨는 대략 오늘 스케줄을 내게 말 해 줬다. 점심때는 이사장 장태숙씨와 택사스에서 오신 고 대진씨를 만나러 코리아 타운에 간다 했고 거기 다녀 온 다음 저녁은 JJ Grand 호탤에서 한국에서 오신 하길남 선생님 환영 상견례가 있게 된다는 이야기를 해 줬다. 난 이미 짐을 대략 챙겨 논 상태기 때문에 짐을 다시 한번 더 점검을 한다음 아예 문앞에 갔다 놨다. 그리고 남은 시간에는 집에서 프린트해간 다른 사람들의 단편이나 혹은 왜 지금 글을 쓰는가 ?를 읽고 있었다. 12시쯤 우린 오 연희씨 댁을 떠나 코리아 -타운을 향했다. 인터 스테이 10번과 110번 사이를 다녀 온듯 싶었는데 가는 중 전화가 왔다. 회장이신 김 동찬님이 하 길남 선생님을 픽업해 오면서 함께 합류 하겠다는 전화다. 우리는 함께 파킹랏에서 첫 인사를 했다. 70대 중반의 하 길남 선생님과 택사스에서 오신 고 대진씨, 장 태숙이사장님, 끝으로는 나처럼 모자를 쓴 수염이 텁수룩한 김 동찬 회장님과 나, 이렇게 6사람이 식당에 들어갔다.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점심 주문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고 대진씨는 대학 교수시지만 역시 미국 사는 사람이라 그런지 우리는 금방 잘 통 할것 같았다. 오연희씨가 내일 나를 대리고 다닐 고 대진씨께 날 부탁했고 김 회장님 도 우리둘에게 온타리오 공항에서 오후 3시쯤 도착하는 다른 두분을 부탁하신다. 물론 초행길인 우리들이지만 내가 자신 만만하게 오우 케이라고 말해버렸다. 단 약도만 주신다면이라는 단서를 붙여서, 식사후 우리는 옆집에 있는 팥 빙수집으로 옮겨 또 자잔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저녁 때를 기약하고 헤여졌다. 오후 5시 반까지 준비해간 프린트를 읽으며 보냈다. 오 연희씨가 준비다 됐다는 말을 듣고 난 드디여 내짐을 챙겨들고 함께 나섰다. 가디나라는 곳이였는데 아무튼 또 다시 코리아 타-운을 향했다. 러쉬 아우어를 통과 해야 했다. 경찰 스콰드카가 갑자기 갈지자로 가며 가는 차들을 통제라는 가운데 왼쪽으로 토잉 트럭까지 에머진씨길로 질주하고 있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생기긴 한 모양인데 제발 주님 다친 사람좀 없었으면 하고 기도 했다. 아무튼 우리는 아주 알맞은 시간에 JJ호탤에 도착 했다. 나는 일단 내짐을 챙겨 들고 나를 오늘 태워갈 사람을 기다려야 했다. 오 연희씨가 제빨리 핸드 폰을 누르자 가까이 온 그분이 대답을 했다. 곧 그분 차가 보였다. 날 태워가야 하는 사람은 지 희선씨였다. 대략 내 짐을 차에 실어 넣고 우리는 가벼운 인사를 나눈 다음 곧바로 하 길남선생님 환영 모임으로 직행했다. 여담이지만 지 희선님은 나와 같은 카톨릭신자였고 오랜 동안 창조주께서 주신 달랏트를 우리신자들이나 아니면 다른 외교인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셨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저 지 희선씨 홈페이지에 가보시면 곧 아시겠지만 한마디로 대단한 실력자시다. 최소한 수필에 관해서는 어쩌면 미주 일인자 일지도 모르겠다. 내말은 그렇게 글을 잘 쓰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하 교수님의 환영회가 끝난 다음 곧 그분의 차를 타고 출발 했다. 어두움만이 가득한 하이 웨이를 별빛과 도시의 불빛을 보며 그녀가 운전을 했다. 시카고와는 두시간 차이가 나지만 이렇게 나이를 먹고나니 새삼스럽게 두시간 차이를 느끼겠다. 난 그만 졸다가 자다가 또 졸면서 꿉뻑거리고 있었던 거다. 드디여 차가 큰 길을 벋어나 농가의 투웨이 트래픽 좁은 길로 들어선 것이 보였다. " 다아 왔어요 ! "그녀의 말에 난 솔직히 졸음이 와서 " 네에 ! "하고 건성 대답을 한다음 얼른 방을 찾았다. 선생님께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곧 내방으로 와서 쓰러져 잔 것이다. 인간의 습관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난 역시 시카고에 프로그램이 돼 있는지 정확하게 내가 매일 핏트니스 센타가는 시간 쯤에 잠이 깼다. 그러니까 LA시간 플러스 두시간 만 더하면 정확하게 시카고 시간이고 난 그 시간에 맟춰 활동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튼 일어나서 세수하고 볼일을 다 보고나 다음에 산책삼아 운동화를 신고 이미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는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반가워하는 모습이 아직까지 눈에 삼삼하다. 그분들은 거의 2년 전 쯤에 이리로 이사를 왔다며 공작새 80여마리를 기른다고 하셨다. 희선씨가 내게 멀리 있는 공작새 우리를 손으로 가르쳐 주신다. 난 어슬렁 거리며 공작새 우리로 갔다. 공작새는 금방 내가 낯선 사람인줄알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는데 그 옆의 닭장에는 내가 모이을 줄줄알고 우르르 내게 달려온다. 난 정말 미안해서 ' I am sorry ! '를 중얼거리며 다른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함께 아침을 먹고( 순전한 웰빙 음식만으로 )우리는 집을 나서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안았음을 안다. 아침을 먹을때 그분들이 성호를 긋는 모습을 보고 난 천주교신자인줄을 알게 됐다. 이런 저런 교회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던 사제인 골롬반 외방 전교회 차 신부님이 희선씨 교회에서 돌아가셧음을 알게 된다. 그분은 정말 훌륭한 사제였다. 우리교회가 잊어서는 안될 분이셨는데 어쩌면 당시에 가장 사랑 받았던 신자가 바로 나 였을 것 같았다. 그런 인연을 잘 아시겠다며 차신부님 얼굴이 새겨진 먹을 희선씨가 날 주셨다. 아 ~~~ 고마워라 ! 난 잠시 차신부님과 지 희선씨 가족을 위해 화살 기도를 했다. " 주님, 당신의 뜻대로 이 세상을 살다가신 차신부님을 당신겯에 두시고 우리 지 희선씨가 이 세상에서 가장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보살펴 주십시요. 물론 그 가족들도 모두 당신의 사랑속에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