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호의 창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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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위에서
2005.03.09 21:32
다리 위에서
밤이면 내 몸은 침대 위에서 편히 자지만
마음은 늘 다리 위에서 *노숙을 한다
두 땅 사이에 걸친 다리
바람에도 흔들리고
뱃고동 소리에도 흔들리고
그네처럼 흔들리면
다리 밑의 시퍼런 물이 보여
나는 다리 나간을 붙들고 잔다
내가 붙든 것은
체모가 노란 *퓨르네 여인도 같고
검은 눈빛 순이도 같지만
나는 아직도 그가 누구인지를 모른다
그래도 낮이면
다리 이쪽도 가고 저쪽도 가지만
늘 마음이나 몸둥이는 홀로이고
몸과 마음이 화목하게는
가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넋이 없는 헛개비가 되어
다리 위에서 잠을 잔다
그리고 꿈속에서
몸과 마음이 서로를 찾아 헤맨다
*퓨르네(phryne)-기원전 4세기경의 그리스 이름난 창녀.
* 노숙 ㅡ 육신과 의식의 세계가 이곳과 고국과의 두 공간을 넘나들며 불안하게 살아가는 이중의 의식 세계가 바로 다리 위의 노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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