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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시세계

2008.02.23 05:27

박영호 조회 수:707 추천:33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의 시세계    
                                                                                                                      박 영 호
들어가면서
한국의 현대시를 이야기 하면서 서정주의 시 세계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수많은 시를 썼고, 많은 시인들이 그의 시를 읽고 영향을 받아 왔었고, 일반 대중들까지도 그의 시를 많이 애송해왔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그는 한국 현대 서정시를 대표하는 시인중의 한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무엇보다도 그가 종전까지 전해 오던 일반적인 한국현대 서정시에서 볼 수 없었던 토속적이고 원색적인 광기 어린 생명감을 과감하게 보여 주었던 그 의 시 세계가 독자들에게 남다른 감동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그를 두고 혹자는 "서정주는 한국시의 政府다. 그의 시를 읽으면 머리 속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라고 말했듯이 그는 그 시대의 상상을 초월하는 "비약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와 인간의 원초적인 육정의 몸부림의 혼"을 극히 토속적이고 민족적인 정서로 표현해 한 때 한국 시단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시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는 불행하게도 일제 말엽인 1942년부터 친일 잡지와 신문 지상을 통해 1944년 종전 이전까지 10 여 편에 가까운 친일 작품을 발표했고,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도 군사정권 어용문학에 참여하여 독재정권에 대한 찬양의 글을 발표해서 비 민족적 비양심적 작가로 비판을 받아왔고, 특히 2002년 국회에서 발표된 친일 작가로 확인 발표되 어 그의 작품이 교과서에서 삭제가 되는 등 수모를 겪고 있지만, 그를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그의 작품이 다시 국정 교과서에 수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는 30 년 동안 동국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현대문학, 신문 신춘문예를 통해서‘미당 사단'으로 불릴 만큼 많은 시인들을 양성해냈고 내로라 하는 현재의 50~60년대 중진 시인들을 배출해 냈으며, 1940년대부터 1970 년 대의 한국 문단사에 그의 이름을 떨쳤다.  다만 여기에서는 그러한 그의 업적이나 과오나 인품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순수 문학적인 측면에서 그의 시작품과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출생과 생애
그는 1915년 5월18일 전북 고창 부안면 선운리에서 서광한씨와 김정현 여사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어려서 마을 서당에서 한문과 한학을 익혔고(1922-1924) 고성 보통학교를 졸업(5년제)하고 이어서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했다. 그러나 1930년 광주 학생운동 주모자 4인 중의 한 사람으로 퇴학처분을 받았고, 기소되었으나 미성년자로 기소유예 되어 석방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1931년 고성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다시 학생 독립 운동에 연루되어 권고 퇴학을 당해 다시는 공립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되자, 그는 상경하여 독학을 하는 과정에 인도주의에 심취되어, 일본인 톨스토이주의 신봉자인 하마다가 청계천에 세웠던 빈민촌에 들어가 넝마주이 노릇을 하는 등 방황을 하다가, 불교 대종사인 박한영(朴漢永) 만난다. 그리고  ‘자네는 승재(僧材)가 아니라 시인될 재목이다, 라고 말한 스님은 그를 비 공립학교인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에 입학시켰다. (1935년) 여기에서 미당은 문학과 불교의 정신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고, 다음 해인 1936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같은 해에 그는 김동리 이용희 오장환과 등과 함께 동인지《시인부락》을 편집 발행했었다. 이어서 1935년 시 ‘자화상’을 그리고 다음해에『화사’를 발표해서 눈길을 끌었고, 1941년에 첫 시집인『화사집』을 출간했다. 광복이 되자 다음해인 1946년에 김동리, 조연현,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곽종률 등과 함께 순수문학 및 순수시를 주창하는 조선 청년 문학가 협회를 결성하고 시 분과 위원장을 맡아 보았다.
같은 해인 1946년 그는 제 2시집『귀촉도』를 출간해서 다시 관심을 끌었고, 1954년 예술원 종신 위원으로 추천되어 문학분과 위원장을 역임했고, 2회에 걸쳐 한국문인협회 이사장을 역임 했다. 1975년에 제 2 시선집 『서정주 육필 시선』을 출간하고, 같은 해에 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1979년 동국대학교 교수직을 퇴임 후에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떠돌며 머물며 무엇을 보았느냐’(1980)는 글 등 많은 산문을 신문에 연재했고 이를 기행시집으로 출간하는 등 우리향토적 문학과 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우리 문화와 이국 문화의 동질성을 통해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를 밝히는 일에 힘을 기우렸다. 1985년에 예술원 원로 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1993년에 마지막 시집인 '늙은 떠돌이의 시' 출간했다. , 2000년 10월에 타계한 부인 방옥숙 여사에 이어 2000년 12월 24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 시집
『화사집(花蛇集』(1938)『귀촉도(歸蜀途』(1946)『서정주시선』(1955)『흑산호』(1953)『,新羅抄』(1961)『冬天』(1969)『질마재神話』(1975)『서정주 육필 시선 』(1975)『떠돌이의 시』(1880)『西으로 가는 달처럼』(1980)『鶴이 울고간날들의 시』(1882) 『미당 시전집』(1983) 『안 잊히는일들』 (1983)『노래』(1984) 『안 잊히는 일들, 영시집 』(1986)『팔할이 바람』(1988) 『山詩』(1991) 『,늙은 떠돌이의 詩』,『늙은 떠돌이의 詩』(1993)『국화 옆에서』(1975)『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등 총20여 권의 시집이 있고. 총2천여 편의 시를 썼다

3)서정주의 시 세계
우선 그의 시 세계는 다행스럽게도 그의 시집 출간 순서대로 사상적 특색과 변화가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시집 출판 순서에 따른 그의 시 세계 변화과정을 통해서 그의 시 세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필자는 그가 문단에 등단을 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초기의 작품을 모아서 발표한 제1시집인 『화사집』을 중심으로 해서 나타난 자신의 내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에 대한 악마적이고 반역적인 광기 어린 표현으로 이를 나타냈던 시기를 제1기로 구분하고, 다음으로 제2시집인 귀촉도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동양적인 사상과 자연과 종교적인 불교 사상과의 교감을 통해서 차분하게 순화되고 조화된 인간으로 되돌아 와, 보다 가치 있는 새 생명의 참된 가치와 원숙한 삶의 모습을 나타낸 시 세계를 제2기로 구분하고, 이어서 이처럼 자연과 함께 불교적 동양적인 사상을 통해서 조화되어 나타나는 생명의 시에서, 우리 민족의 근원적 정신인 신라 정신 세계와 그 노래를 현대적으로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 나타난 제 4시집 『신라초』와 함께 동양적인 고전의식과 불교적 연기세계를 통해 우주의 신비와 초현실적인 탐미의 세계가 표현되는 제 5 시집인  ‘동천; 까지를 제 3기로 정하고, 제 6시집인  『질마재의 신화』를 통해서 표현된 고향에로의 정신적 귀향과 함께 우리 민족의 보다 토착적인 혼의 원천을 신화와 설화적 세계에서 표현해 보려는 노력이 나타나는 시기를 제4기로, 그리고 1975년에 발표된 『떠돌이의 시』와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1982) 그리고 이후에 발표된 시들을 통해서 유랑과 여행을 통한 우리의 고유한 향토의 문화와 노래를 이국과 조화시키려는 노력 등, 우리 문화의 가치를 인류이고 세계적인 문화의 가치로 끌어 올리려는 노력이 나타난  말년의 시 세계를 제 5기로 구분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제 1기 / 인간 내면의 원초적 관능적 탐미의 세계에 대한 탐구
그의 초기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특색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에 대한 관심을 표현 한 것으로 주로 인간의 근원적인 원죄의식이나 천형의식과 함께 인간의 원색적이고 토속적인 관능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그 시대적 배경과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그 시대는 암울한 일제의 압제 밑에 있었던 관계로 외부로 나갈 수 없었던 억압된 정신 세계의 방황과 갈등과 좌절이 어쩔 수 없이 인간 내면의 세계로 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표현이 체념이나 좌절이 아닌 용솟음치는 생명의 힘과 원색적인 육정으로 광기 어린 표현으로 노래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경향은 종전의 낭만주의적 서정시의 표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표현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그 표현방법을 우리의 전통적이고 원색적인 토속 언어로 이를 조련하여 표현하고 있는 점이 또 하나의 특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초기적 시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 작품이 바로 ‘화사’와 ‘자화상’ 그리고  ‘문둥이’’ 등인데, 결국 그의 초기시의 세계는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과 생명의 가치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초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화사’를 보면 선과 악이나 신과 인간, 원죄와 불손 , 그리고 추함이나 아름다움 등 인간의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상반된 두 세계를 통해서 인간의 근원적이고 탐미적인 관능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는데,.  탐미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표현이 극치를 이루고 있고, 선과 악이나 추함과 아름다움이 서로가 극과 극을 넘나드는 상관된 세계로 표현된 점이 특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화사’의 관능미에 대한 표현은 결국 리비도(lbido)의 상징적 표현으로 볼 수 있고, 이러한 리비도의 관념은 그의 시 ‘입맞춘’ 등 다른 초기의 작품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리비도적인 광적이고 악마적 표현은 다분히 자신의 현실에 대한 방황과 이에 대한 저항에서 표현된 것이라 고 할 수 있겠지만, 그의 광기 어린 표현은 그가 일찍이 심취해 있었던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서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 면으로는 그 시대에 주로 표현되고 있던 안이하고 부드러운 일반적 서정시에 대한 개인적인 반동에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부분적으로 초현실주의적 특색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시대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던 모던이즘의 문학사상과도 상관이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점은 시대적으로 차츰 약화 되어가고 있던 낭만주의나 경향파 문학의 퇴조와 맞물린 새로운 기운의 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이 발전되어 차후 나타나는 것이 바로 시집 『귀촉도』를 중심으로 해서 표현되는 인생파(人生派) 내지 생명파로 연결되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간의 원죄나 개인의 출생 등 우리의 운명과 같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모습에서 그 대상이 차츰 가치 있는 생명이나 삶의 모습으로 정화되어 가는 일종의 재생의 세계가 표현된 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사(花  蛇)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뚱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날름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芳草)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 보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이처럼 ‘화사’에 표현 되고 있는 내용은 다음에 나타나는‘자화상’과함께주로 인간의 내면 세계가 표현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도 결국은 인간의 생명이 있는데, 이러한 표현도 결국은 인간의 생명이나 가치 있는 삶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된 표현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은 시인 스스로도“우리들의 중심 과제는 늘 생명에 대한 탐구였고 이것이 늘 집중적 표상이었다.” 라고 말했던 점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자화상’ 을 보면 인간의 근원적이고 숙명적인 모습을 통한 운명적인 과거를 통해 천형의식이나 신의 근원에 대항 애증을 표현 한 것으로 여기에서는 ‘화사’ 에서 표현된 인간의 일반적인 원천성으로서의 원죄가 자신의 내면 세계인 자신의 구체적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천형 의식이나 신에 대한 애증 에서 나오
는 자기 고발은 우선 자신의 내면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어, 조상의 가난한 숙명적 업보의 운명에 대한 부끄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자신을 두고 스스로 자학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이에 순응해고 극복해 가려는 삶과 생에 대한 강한 의지와 자존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 점이 가장 가치 있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시인이 느끼는 천형의식은 다음의 '화사’나 ‘문둥이’에서 나타나는 원죄의식과도 상관이 되는 것으로서,'화사'에서는 그러한 원죄의식이 하나의 불손과 광기 어린 탐미적 세계로 표현되고 있는데 반해, 자화상에서는 그러한 천형의식이나 부끄러움이 결코 열등감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인 삶에 대한 의지나 자존의 힘이나 생명력으 반동되고 승화되어 나타나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숙명적인 운명을 천치, 죄인, 병든 수캐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이러한 울부짖음은 ‘문둥이’나 ‘화사’에서도 마찬가지로 결국 신에 대한 원망과 불신에 대한 울부짖음이어서 이는 결국 모두가 참 인간과 참된 생명에 대한 갈망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다음에 나타나는 시집 『귀촉도』를 중심으로 해서 표현되는 인생파(人生派) 내지 생명파의 표현에서 그 구체적 모습을 보게 된다. 이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개인의 출생 등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인간 모습에서 그 대상이 차츰 가치 있는 생명이나 삶의 모습으로 정화되어 가는 는 일종의 부활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내면 깊숙이 잠재되어 있는 자신에 대한 애증과 사랑과 겸양과 자존이 함께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도있고, 이러한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받아들이려는 순응과 적응의 자세가 표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화상(自畵像)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덕거리며 나는 왔다.

자화상은 결국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통한 국가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숙명적으로 타고 태어난 자신의 천형적 운명을 표현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꾸밈없는 극단적이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회고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의 고뇌와 시련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고통스런 삶에 대한 회고를 통해 강인한 생명력의 욕구에 대한 의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는 고통스런 자신의 숙명에 대한 자기 번민과 고뇌를 통한 열정의 몸부림으로 가치 있는 새로운 생명의 세계를 찾아가는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는 연의 구분이 없이 이어 쓰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기승전결의 4 분법으로 구분하여 감상할 수가 있고,.시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6 행까지가 주로 자신이 타고난 숙명적인 불행과 그 내력을 밝히고, 그 불행에 대한 부끄러움과 한스러움을 밝히고 있다. 다음 둘째 부분은 그가 힘들게 살아온 시련의 역사를 표현한 것으로,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다’ 라고 표현하고, 그 구체적 사례를 부끄러움과 죄인과 그리고 천치라고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시의 절묘함은 바로 다음에 나타나는‘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라고 하는 시인의 자존에서 비롯된 당당하고 단호한 어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천형이나 자신의 운명에 거역하지 않고 당당하게 적응하려는 적응과 자존과 순응의 자세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결국 자신이 운명에 좌절하거나 거역하지 않고 시련과 고통을 이기고 가치 있는 생명으로 승화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이것이 찬란히 트여 오는 아침에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과도 같은 창조의 열매나 새로운 생명이나 시의 참된 가치로 태어날 수 있게 된 근원적인 힘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자화상은 한 인물의 생애가 지닌 숙명적 환경과 이로 인한 방황과 고통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일제 압제라는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숙명적으로 힘들게 타고난 자신의 환경과, 힘겹게 살아온 자신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이나 가치 있는 시의 세계를 추구하는 자신의 삶을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점은 결국 그가 시를 쓰게 된 근원적인 동기나 시를 그의 생의 전부로 여기고 있는 그의 시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제 2기. / 자연과 동양 사상을 통한 새 생명과 영원성을 표현
원색적이고 불손하고 야만적이었던 그의 초기의 시 세계가 광기 어린 열정에서 깨어나, 차츰 세련되고 원숙한 인간의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자연과 불교의 종교적인 정서를 통해서 다스려진 인간의 원숙미에 대한 표현 등을 통해서, 그러한 가치 있는 생명과 삶의 조화를 하나의 화해로 표현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1946년에 출간한 시집 『귀촉도』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조국광복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과도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것으로, 불손과 조소적인 초기 시의 토속적이고 원색적인 광폭한 정서가 차츰 자연과 고전적인 동양 정서와 불교와의 조화된 가치로 승화되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을 나타내고 있는 시의 대표적인 것이 ‘귀촉도’ 이다.
이러한 불교와 토착적인 전통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은 시인의 초기에 나타났던 개인적인 원죄나 젊음의 방황에서 표현된 하나의 한을 극복하기 위해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점은 그가 불교와 동양적인 전통의 조화를 통해서 한을 하나의 생명의 가치나 사랑의 영원성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점에서 엿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시집 『귀촉도』를 중심으로 해서 표현되는 그의 시 세계는 바로 이러한 생명의 시 내지 생명파의 시 세계가 표현되고, 그 대상이 차츰 가치 있는 생명이나 삶의 모습으로 정화되어 가는 일종의 부활이나 원숙의 의미로 나타난다.
이러한 생명파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국화 옆에서’ 라고 할 수 있고 이러한 연장선에서 쓰인 대표적인 작품들이 ‘풀리는 한강 가에서’ ‘상리과원’ 그리고  ‘푸르른 날’  ‘학’ 등이고,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가 시인 자신의 자연과 고전적인 세계를 통한 달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이 시기의 시들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표현이나 구성상의 특색을 보면 한국의 전통적 율조를 살리려 노력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초기 시에서 나타나고 있는 내재률에 의한 흐름의 리듬에서 민족 기본 리듬인 3.4조와 함께  정형에 가까운 리듬인 7.5조의 형태로 변화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제2 기의 초기작품인 ‘귀촉도’를 살펴보면, 이 작품은 그의 대표적인 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이 시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색의 하나가 바로 초기 시의 모습과는 달리 하나의 한이나 사랑 등의 인간의 참된 가치를 영원성이나 초월성에서 추구하려는 비교적 안정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를 가장 잘 나타낸 이 시의 주제는 인간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사랑과 그 한을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영원성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성은 3 연의 자유시로 역시 정형에 가까운 7.5조의 울격으로 표현되고 있고, 이러한 율격이 이 시기의 그의 모든 시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리듬으로 역시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내용을 역시 우리의 전통적인 리듬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이고 있고, 그 흐름의 정서는 극히 주정적(主情的)이고 상징적이어서 그 느낌이 비통하게 느껴지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주제를 상징하는 소재인 이 귀촉도는 소쩍새, 자규, 초국새, 촉조, 촉백, 풍년조 접동새, 두견새 등 수도 없이 많은 이름을 지닌 새로, 일명 시의 새라고도 불리는 것처럼 두견화와 함께 우련(憂憐)의 미의 극치를 나타내는 동양시의 상징적 의미로 쓰이고 있다. 이는 촉(蜀)나라 왕 두우(杜宇)가 죽어서 그 혼이 환생한 것이라고 하는 고사 (杜宇死 其魂化爲鳥 名曰 杜鵑 亦曰子規 ; 成都記)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러한 전설을 소재로 하여 '귀촉도’라는 표현으로 죽은 임을 그리워하는 비통함을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귀촉도를 소재로 사용한 이 시는 다시 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난 임에게 자기의 정성을 다하지 못한 회한의 정과 끝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사랑의 본질이 비극적인 것이고, 더 나아가서 생의 본질이 비극적이라는 점과 사랑의 영원성이나 절대성을 상장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귀촉도’에 대한 작자 자신의 표현을 보면, “ 우리가 항용 귀촉도라고 하는 것은 두견새, 소쩍새, 접동새, 자규(子規)라고도 하는 새가, 귀촉도……귀촉도…… 그런 발음(發音)으로 우는 것이라고 지하(地下)에 돌아간 우리들의 조상(祖上)들 때부터 들어온 데서 생긴 말씀이다. “라고 하고 있다.

귀촉도 (歸蜀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어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아

첫째 연에서는 임과의 사별의 슬픔을 '눈물 아롱아롱' '피리불고'처럼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고 '서역 삼만리'나 '파촉    삼만리' 라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의 먼 길을 표현하여 이별과 죽음의 먼 거리감과 그 아득함을 표현 하고, 임과의 사별의 슬픔을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처럼 우리말의 고유한 리듬감으로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고, 또한 진달래를 통한 전설적인 비탄의 회한을 표현하여, 죽음과 사랑의 애절함과 한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연은 생전에 못다 바친 사랑에 대한 회한의 슬픔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생명을 상징하는‘머라털'도 부질없다다는 표현으로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었다는 헌신적 사랑과 그러지 못한 회한을 밝히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임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그 슬픔을 ‘귀촉도’의 울음을 통해서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 울음은 그리움•서러움•후회스러움에 오랜 시간 울어서 ‘목이 젖은 새’가 되었고, 그것은 다시 혼신의 열정으로 ‘제 피에 취한 새’가 되어 그 애절함이 극에 달하고 있고, 죽음과 저승 길인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에 대한 회한과 사랑과 그 그리움을 '은핫물' 이라는 표현으로 그 슬픔과 사랑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자연과 우주의 세계로까지 확장되어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귀촉도 울음'을 통해서 죽음으로 멀리 떠나버린 사랑하는 임에 대한 회한과 죽음을 초월한 깊은 사랑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으로, 결국 사랑이나 생의 본질을 비극적인 측면과 자연적이고 종교적인 세계로 아름답게 확대 승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귀촉도>에서 나타난 그의 시 세계는 고전적이고 종교적면이 특색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특색이 다음에는 차츰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시의 세계로 정화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생명파의 시' 세계이고, 이러한 생명파 시의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국화 옆에서 '이다.
  이 작품은 그의 시 세계는 물론 그 시대의 한국의 현대적인 정서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으로 그 누구에게나 손쉬운 이해와 포근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어서 한 때 이 시가 ‘국민의 시'로 애송되기도 했다. 이러한 점은 이 시의 세계가 우리 국민의 극히 편협되지 않는 보편 타당한 가치를 주제로 하여, 그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민족적인 정서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는 미당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인 동시에 우리나라 현대시를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임에도 틀림이 없다.
이 시의 핵심 내용은 ‘누님 같은 국화꽃’ 이라는 새로운 한국적인 가치 있는 인간상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꽃과 누나는 여성적이지만, 이는 극히 일반적인 미적 개념이고, 시인 자신의 자아인 인간상이고 그의 정신 세계일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모두가 추구하는 우리 모두의 모습일 수 있다는 점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고통과 한의 민족인 우리 모두가 시련을 극복하고 참된 생이나 삶, 그리고 원숙한 가치로 거듭날 수 있는 시련의 역사와 이의 극복이라는 민족적 염원이 상징적 표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중년기에 쓰인 원숙미의 표현은 차츰 현실적이고 개인적 표현에서 벗어나 다음에는 보다 큰 세계인 우주와 영원의 세계로 확대되어 감을 볼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그의 시 세계는 우리의 과거로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나 다름 없는 우주에까지도 확대되는 초월성과 영원성 등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점은 일찍이 이어령 씨가  미당 '국화꽃 옆에서 '시의 가장 큰 특색의 하나인 시적 공간에 대해서
”신라의 스님 월명(月明)이 밤길을 가며 피리를 불면 가던 달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이 천체의 운행이 멈추는 순간, 만물이 교감하고 조응(照應)하는 그 순간에 시가 태어난다. 가을에 피는 국화꽃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거울 앞에선 누님, 그리고 밤에 잠 못 이루는 나(시인)는 서로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되고, 그 행복한 은유는 서리 내린 이 현실 세계를 교감과 조응으로 가득 채우는 시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라고 말했듯이 이 시는 그 시적 공간이 지니는 음영과 운율과 사념이 극히 우리의 민족적 정서와 미적 정서가 조화를 이룬 점이 바로 시의 공간적 구성인 은유의 빛나는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는 점을 통해서 엿볼 수가 있다.
또한 ‘누님 같은 꽃’이라는 표현을 통해 통상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꽃이 이제는 중년의 원숙미를 상징하는 소박하지만 지고한 꽃으로 형상화한 점이 또 하나의 독창적인 새로운 시적 미의 창출 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군자의 지조를 상징했던 국화라고 하는  주관적인 남성적 개념에서 남녀를 망라한 국민적인 지고한 원숙미를 지닌 새로운 가치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국화꽃의 상징성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 시의 가장 큰 가치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菊花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우선 표현상의 특색을 보면 자유시로서 음보나 율조 보다는 음절상의 리듬을 중심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은유를 통한 상징의 표현법으로 시간과 공간의 불교적 연기 사상의 흐름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표현은 극히 단순하고 가볍게 보이나 시의 내적 흐름인 사상이나 정서의 흐름은 매우 심오하고 그 공간과 시간의 폭이 매우 크고 넓고 깊다. 이러한 점이 바로 영혼이나 정신의 영원성과 그리고 천상까지도 이어지는 불교적이고 동양적인 정신 세계의 표현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시의 구성상 특색은 동질성에 의한 연의 배치와 반복에 의한 점층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기의 과정이다.
우선 국화꽃과 누님과 동질임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시인 자신인 나 또한 그들과 동질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고, 독자인 나 또한 동질의 의미로 이해해야 이 시의 가치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이 지닌 동질의 상징 의미는 삶의 시련을 통해서 이룩된 인간의 ‘원숙미 ‘ 이고, 이는 다시 참된 생명의 가치 나 참된 삶의 가치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의 동질성은 시련이나 불교의 연기나 도교적인 무한성을 나타내는 시련의 세계인 소쩍새 울음과 천둥과 잠 못 이루는 밤 들이고 봄, 여름 가을이라는 계절 역시 시간적인 배경으로서의 동질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시련의 내용들이 국화꽃이 겪는 시련이라면 누나가 겪어야 하는 시련은 ‘젊음의 뒤안길’이다. 이처럼 거의 모두가 수학적으로 그래서 인과응보나 연기의 세계가 표현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누나의 뒤안길이나 나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인위적인 시련이지만, 이러한 것도 국화꽃이 자연과 불교적인 연기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꽃을 피우듯이, 종교와 자연과 우주를 아우르는 초월의 힘으로 마련되어야 참으로 가치 있는 부활과 같은 새로운 생명이나 가치나 아름답게 생성될 수 있고 할 것이다.
  또 다른 표현상의 묘가 되고 있는 점은 반복법에 의해 첫째 둘째 연에 이어 통상 셋째 연에 이어져야 할 넷째 연의 무서리의 밤을 마지막 연으로 위치를 바꿔 표현한 점이다. 결국 이 시의 중심 은 시적 자아가 표현된 마지막 연의 나와 셋째 연의 누님과 그리고 국화꽃인 셈이라는 점에서 나가 독자에게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 시의 중심이 되고 있는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의 표현의 묘다. 여기에서의 누나는 어머니와도 다르고 젊은 누나와도 다르다. 거울이라는 아직도 아름다움의 여인이라는 상징과 누나라는 혈연과 뒤안길이라는 시련을 겪은 중년의 원숙한 여인을 표현 한 것으로 시인 본인의 표현은 그의 자작시 해설에서,
“젊은 시절의 흥분과 모든 감정 소비를 겪고 인제는 한 개의 잔잔한 우물이나 호수와 같이 형(型)이 잡혀서 거울 앞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의 미(美)의 영상… 내가 어느 해 새로 이해한 정일(靜逸)한 40대 여인의 미의 영’상을 시에 담았다” 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누나의 표현은 결국 자신의 시작 과정이나 삶을 통한 고통과 방황과 온갖 시련을 상징하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가치 있는 시의 세계나 새로운 삶의 모습으로 돌아온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성이나 반성이라고 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누님 같은 꽃’이라는 표현을 통해 예부터 흔히 군자의 지조를 상징하던 꽃이 이제는 중년의 원숙미를 상징하는 소박하지만 지고한 꽃으로 형상화하여, 남녀를 총 망라한 국민적인 인간상이라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으로 국화꽃의 상징성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는 점이 이 시의 가장 큰 가치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 3기 /  신라 정신과의 조화를 통한  민족적 정서와 리듬을 표현
다음은 이러한 생명의 시에서 토속적이고 고전적인 우리 고대 신라 정신을 보다 동양적이고 불교적인 세계를 통해서 시대를 초월한 폭 넓은 민족적 정신 세계로 확대해 표현해 보려는 노력이 그의 제 4시집인 『신라초(新羅抄)』(1961년)를 중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점은 우리 민족의 고전적인 정신세계가 잘 나타나 있는 신라의 향가나 설화 등을 현대적인 우리 민족 정서로 표현하여 우리의 과거와 현대와 미래를 아우르는 민족의 시가로 표현해 보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쓰인 시의 소재는 주로 《삼국유사》나《삼국사 절요》등에 나타난 설화나 향가 등이고, 이를 자연과 동양적인 불교 사상과의 교감을 통해 우리의 토속적인 언어와 전통적인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이는 불교적 연기의 정신 세계에 깃들어 있는 영원성이나 심미적 세계가 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결국 민족적 화해와 새로운 민족 정신의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구와도 상관이 있고, 이를 위해서는 이제까지 추구해온 가치 있는 생명의 추구가 이제는 하나의 민족 화합을 위한 민족혼으로 혼으로 정신과 정서 등의 민족 혼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기인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시기의 그의 시 세계가 종전보다 더 시간적 공간적으로 폭이 넓어진 것과. 민족의 전통정신 위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은 그가 꾸준히 추구해온 생명의 가치를 국민적 가치와 국가적 결집을 위한 일종의 민족 혼이나 민족정서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것이다. 결국 고전에 대한 탐미적 추구와 신라 정신의 표현을 통해서 참된 생명의 가치나 민족적 혼을 표현 하려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시집『신라초』의 내용은‘신라초’와 '고조’이렇게 2 부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고, 제1부에서는 ‘신라초’의 시편으로 ‘선덕여왕의 말씀’ 과 ‘노인 헌화가’ 등 8편을 수록하고 있고, 제 2부에서는 ‘고조’를 비롯한  ‘귓속말’’무제’등 근작 시 30 편을 ‘싣고 있다.

노인 헌화가(老仁 獻花歌)
   붉은 바위 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를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꺽어 드리리다.

     이건 어떤 신라의 늙
     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를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꺽어 드리리다.

   햇빛이 포근한 날—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떨어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늙은이가
   문득 그 앞을 지나는 어떤 남의 안사람을 보고
   한바탕 건네인 수작이다.

   자기의 흰 수염도 나이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다아 잊어버렸었다

   남의 아내인 것도 무엇도
   다아 잊어버렸던 것일까?

  물론 다아 잊어버렸었다.

  꽃이 꽃을 보고 웃듯이 하는
  그런 마음씨 밖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었다.
                                     (‘노인 헌화가’의 전반부 인용)
‘노인 헌화가’는 신라의 정신을 나타낸 작품들 중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고, 이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신라인들의 사상과 정서를 부분적으로 엿볼 수 있고, 이러한 점을 통해 우리 민족이 고대사회로부터 지녀온 낭만적이고, 동양적인 해학과 세월과 공간을 초월하고 전해 오는 민족 정서를 현대적 민족 정서로 표현시켜 보려는 시인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이 시는 우리 민족의 낭만적인 사랑의 정서를 꽃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통해서 하나의 순수한 사랑의 교감과 그 아름다움을 풍자적이고 설화적으로 표현하여 동양적인 여유와 사랑의 정신을 초월성과 영원성으로 확대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의 내용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 성덕왕 때의 설화인 ‘헌화가’ 를 그대로 요약 인용해서 지은 것으로 그 시대 절세 미인인 강릉 태수 부인인 水路부인과 암소를 끌고 가던 무명의 노인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순간의 낭만의 교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수로 부인은 다시 해가(海街)라고 하는 신라 초기의 구지가가 변형된 노래와도 관계가 있는 아름다운 부인으로, 이 부인과 노인 사이에 흐르는 연정의 정서를 꽃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서 자연의 미와 인간의 미가 조화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보편적인 아름다움인 헌신이나 사랑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나이를 초월한 노인의 신분을 통해서 아름다움과 사랑의 보편성이나 초월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은 신라의 낭만이인 정서을 우리 민족의 근원적인 정서의 세계로 보고, 이를 신라의 향가나 설화를 통해서 이를 현대나 우리의 고유한 정서나 가락으로 우리 민족 혼이나 리듬을 을 재현해 보려고 시도했었던 점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신라초』 에 이어서 발표된 시집 『동천(冬天)』(1969)은『신라초』에서 표현된 불교의 정신과 신라 정신에 대한 관심이 더욱 확대 발전되어 세계관의 차원을 넘어서서 우주와 영원과도 조화될 수 있는 우주적 사색의 신비와 함께 탐미적 가치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는 시대를 초월한 민족적 시혼이 표현된 『신라 초』의 설화적 신비나 자연의 신비를 넘어선 불교적 연기나 도교적 신비까지도 통합된 미적 가치의 극치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전에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 이룩된 생명의 영원성이 더욱 더 심화된 일종의 초월성이 표현되고 있어서, 그의 시혼이 드디어 하나의 시선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는 시 ‘동천’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동천’’은 자연과 우주와 개인의 절대 가치에 대한 외경의 정신을 불과 5행의 시에 승화시킨 것으로, 자신의 생애와 시작 세계의 압축이라고도 할 수 있고, 시인 자신의 시적 가치의 결집인 시적 자서전으로도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마음 속의 하나의 심상을 불교적이고 환상적으로 그리고 초현실적인 영혼의 유영(流泳)을 통해서 하나의 완성에 가까운 탐미의 세계를 형상화 하고 있는 표현은 바로 이 시인 시 세계의 극치가 표현된 것이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동천(冬 天)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마음 속에 품고 꿈꾸어 온 삶의 가치나 사랑하는 임이나 시의 세계 등, 하나의 가치의 세계를 눈썹으로 상징 하여, 이를 통해서 미완의 초승달과 원숙한 만월의 이메이지를 통해서 매서운 새라고 하는 시인 자신이나 시의 세계일 수도 있는 생명의 세계가 또 다른 절대적 가치인 세계로 접근해 가는 무형의 세계를 시라고 하는 새의 날개 짓을 통해서 꿈 의 상징으로 보는 달과 같은 신비한 탐미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인이 추구해온 절대적인 미나 삶의 가치를 그리운 님의 눈썹과 그리고 초승달로 표현하여 이를 향해가는 그리고 원숙한 자연이고 꿈이고 아름다움일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시의 세계일 수 있는 그 곳에 접근하여 살아 움직이는 자연이나 시인 자신을 하나의 살아 나르는 매서운 새로 상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심상과 시각적 형 상의 오묘한 조화를 불교적 유영이나 연기로 표현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 시인이 시선의 경지에 이르고 있음을 나타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극히 상징이고 종교적 신비와 자연의 경이가 극히 환상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점이 특색이라고 할 수 있고, 자유시이긴 하지만, 3.4조를 바탕으로 변형된 7.5조의 민족적 리듬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고, 심상의   세계를 시각적 상으로 전이시키는 묘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흐름을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미의 절대적 가치
와 외경의 정신을 영원과 초월성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기 / 고향의 전설과 신화적 세계로의 회귀
  『신라초』를 중심으로 표현되었던 전통적인 신라정신을 민족적 정서와 리듬으로 표현해 왔던 노력과, 개인적인 탐미의 세계에 대한 추구가 이제는 개인적인 자신의 고향에로의 정신적 귀향과 함께 향토에 묻혀 있는 전설적인 신화와 설화를 중심으로 한 산문적 표현의 시에 대한 표현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질마재의 神話』 (1975)다.  이러한 점은 이제까지 표현해 오던 신라정신과 같은 비교적 도덕적이고 민족적인 가치 세계의 한계를 벗어나서, 보다 원시적이고 보다 민간적인 토속 무속 신앙이나 원시 종교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러한 점 역시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 오던 인간 생명의 근원적 가치인 민족혼의 표현에 대한 노력의 연장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질마재’'는 그가 태어나 자라난 고향마을 선운리의 별칭이다. 그는 고향에 널리 흩어져 있는 우리 고유한 전설이나 신화를 찾아서 이를 하나의 구가적 민족적 신화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표현해 보이려는 점이 바로 『질마재의 신화』가 지닌 특색이라 할 수 있고, 또 다른 특색은 이러한 신화나 전설에 대한 표현을 이야기라는 형태에서 시적 산문으로 바꾸어 표현해 보려는 새로운 노력이라는 점이다.
  그는 이 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잠재의식의 추구도 마찬가지이죠, 불필요한 심리적 디테일을 몽땅 파고들어가 나중에는 우리 인생에 이런 잔소리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 잔소리에 나는 질렸다 .그래서 나 자신은 ‘에라! 나래티브라는 것은 이제 시인이 해야겠다. 잔소리 안 하는 시를 우리가 만들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우리는 그의 이러한 표현에서 그의 산문시에 대한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있다.
  사실 이러한 점은 인류 최대의 고전인 성경을 비롯해서 동양의 도덕서나 그리고 고대 신화 등은 모두가 시와 이야기의 중간 형식으로 쓰여져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설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부(新婦)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 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 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다니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 보고 나가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40 년인가 50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 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시집 『질마재로 돌아가다』에서
위의 시는 민간들에게 전래되는 일종의 민간 설화다. 그는 이러한 토속적이고 향토색 짙은 설화를 통헤서 우리의 고유한 민족 정서인 여인의 부덕이나 사랑의 영원성이나 절대성을 극히 윤리작인 명에서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우리의 향토적인 민간신앙의 하나인 도교나 토템사상 등을 하나의 미적 가치로 형상화 시키려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신라초』에서 나타난 우리의 정서와 토속적인 민간신앙이나 설화를 통해서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재현시켜 보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5기 / 유랑을 통한 인류의 공통된 토속 문화의  탐색
그는 대학 교수직에서 정년 퇴임 이후에도 꾸준한 시작활동을 통해  『떠돌이의 시』(1880) 』『鶴이 울고 간 날들의 시』(1882)『山詩』(1991)『,늙은 떠돌이의 詩』『소년 떠돌이 시』(1997년)등  임종 전까지 12권의 시집을 남겼다. 특히 그는 수년에 걸쳐 세계 각지를 떠돌며 여러 나라의 산과 지리 그리고 민속 문화와 문학 등 여러 면에 걸쳐 각국의 특색을 살피고, 우리의 민속 문화와의 공통점을 찾아 이를 시로 엮어 발표하고, 이를 양국에 소개하는 등 우리의 전통적 문화와 민속 문학을 타국에 소개하고 상호 교류에 힘을 썼다. 결국 그가 세계 각지를 떠돌며 찾아 헤맨 것은 우리 인류가 지니고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모습을 그들의 전통문화나, 문학 속에서 찾아 보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가 눈을 감을 때 마지막 했던 말은 “괜찮다”라는 한 마디였다고 한다. 그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마다 이를 걱정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다음 시와 같은 “괜찮다” “괜찮다” 라는 말을 자주 썼다고 한다.
이 시는 그가 40대에 쓴 시이다.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運命들이 모두 다 안끼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오는 소리.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山도 山도 靑山도 안끼어 드는 소리

  이 시는 상당히 상징적인 시다. 그는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기도 했지만 상대적으로 시의 세계에서 수 많은 세파를 겪었던 분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이 시를 읽다 보면 그러한 세퍄를 떠올릴 수가 있고, 그런 사실에 대한 시인의 답변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괜찮다...... 괜찮다.......라는 말 속에 그의 너그러운 이해와 포용과 화해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까지도 엿볼 수가 있다.
  아무튼 그의 후기의 시 세계나 그의 시적 업적이나 시의 가치는 앞으로 얼마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보다 확실 하게 밝혀지리라 믿는다.  - 이는 결국 역사가 증명할거라는 이야기다. -  라는 말을 맺음말로 대신하며 이 글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