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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비극 / 6 25 한국전쟁

2008.06.24 18:27

박영호 조회 수:59 추천:3

상기하자! 북한 김일성 군대가 남침한 민족 비극-625 한국전쟁

상기하자! 북한 김일성 군대가 남침한 민족 비극-625 한국전쟁

6.25 전쟁

★ 마음의 양식(424) : 상기하자! 북한 김일성 군대가 남침한 민족 비극-625 한국전쟁

    ☆ 6•25전쟁 [六二五戰爭, Korean Conflict]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04:00시에

       김일성(金日成)의 북한 인민군이 38선을 넘어 기습공격-

        남침( 南侵)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이다.

    ★ 그들이 동족이라는 한반도 수백만 인명은 살상되고,

       국토는 폐허가 되어 해방된지 몇 년지난 한반도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그 어디에도 행복(幸福)은 없었다.

    이들은 이미 동족이 아니며, 오직 우리 국민을 죽이고,

        대한민국을 적화(赤化)하려는 주적(主敵)일 따름이다.

    ☆ 그럼에도 해방전쟁(DJ, 강정구 등), 북침전쟁이라며

        역사를 속이는 자들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

    ☆ 625 실상을 모르는 젊은 이들에게 가르쳐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김정일 공산도당화 되는  不幸은 막아야 된다. 

 ** 그대들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아는가 ? **


압록강에 첫발을 딛고 맑은 물을 수통에 담고 있는 국군용사.
10월26일 오후 5시50분, 함경남도 혜산에 도착한
6사단 7연대 수색대원의 잊을 수 없는 모습이다.

# 1. 한국전쟁   피난민 전쟁고아 #


한국전쟁 - 분단된 조국과 함께 자유를 찾는 일가족들의 모습.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전쟁고아의 모습 1950년 9월 28일 서울 모습


6.25 : 한국전쟁   피난민-전쟁고아 (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음)


피난길에 오른 한국의 어머니-갓난 아기에 젖은 물리고


다큐극장 '한국전쟁'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허기를 메우고 있는 피난가족 - 피난길에 지친 한가족이
미군 등 연합군이 배급한 급식으로 허기를 메우는 모습


한국전쟁 - 피난민 전쟁고아  (조지 풀러 유작전)  



전쟁은 체면이나 양심, 도덕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곳에 현실로 존재한다.
유치원에 다녀야 할 나이의 어린이가 깡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낯선 얼굴들에게 손바닥을 벌려야 했다.
 
나무뿌리라도 먹어야 산다.
그리고 잡초보다 모질게 살아 남아야 했다.
아이를 업은 소녀의 손에 쥐어진 나무뿌리는
이 가족의 한 끼 식사일까, 아니면 땔감일까 ?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어린 형제가
골목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슬픈 현실을 바라보고 있다.


전란통에 용케도 살아남은 이 소년 소녀들은
시민혁명과 쿠데타, 군사독재와 경제기적의 한복판을
질풍노도처럼 관통하여
"의지의 한국인"을 세 계에 알리는 주역이 되었다.


부모님은 피난통에 돌아가시고
살던 집은 폭격으로 다 부서져 폐허가 된 터에
어린 소년이 버려진 채 눈물을 훔치고 있다.
고난의 1950년대를 몸으로 때우며 살아온
이 민족의 처절한 단면이다.


찬 이슬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면 헛간이라도 좋았다.
행색은 초라해도 카메라를 강하게 의식하는
이 초롱초롱한 눈매의 자매들은
지금쯤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개털모자에 항공모함같은 헝겊 군화,
곳곳을 기운 이 복장이
1950년대 유년시절을 보냈던
대부분 한국인의 자화상이었다.


추위만 이길 수 있다면
누더기가 다 된 솜바지라도 좋다.


판자로 얼기설기 엮어 지은
2층 건물 곳곳에 피난민이 바글대고 있다.

고함 한번 치면 풀썩 주저앉을 듯
위태로운 건물 모습이
위기에 처한 조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하다.

 
엄동설한 추위를 피하기 위한
땔감도 넉넉지 못했던 시대에
두 소년이 끌고 가는 수레에는
한 식구의 온기를 담보하는
행복이 실려있는 듯 하다.



태평양을 건너온 미군복을 얻어 입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간혹 마음씨좋은 미군 아저씨를 만나면
미국으로 입양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헬로, 쪼꼬렡" 소리치며 따라다니던 한국인이었다.


연을 들고 포즈를 취한 소년들.
전쟁의 傷痕(상흔)을 잠시 잊은 듯 하다.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한 아이가
탈진했는지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있다.
마치 요즘 북한 장마당의 꽃제비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다.


미군 병사가 한 소년을 목욕 시키고 있다.
소년은 카메라를 들이대자 잔뜩
겁을 먹었는지 얼굴 표정이 굳어 있다.


노인이 문 긴 담배대를 고개를 외로 꺽고 바라보는 소년과
소년이 손에 쥔 깡통 속을 바라보는 노인.
전쟁은 노인의 빈 담배대와 소년의
빈 깡통 속에 있었다.


봇짐을 등에 진 할아버지와
망태기를 손에 든 손녀.


피난을 가는 일가족의 전형적인 모습.
이렇게 지게에 가재도 구를 싣고
수백리 길을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다.
 
길가에 앉아 참외 등을 팔고 있는 아낙들.


젊은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이래야
날품팔이가 고작이었던 시절.
한 지게꾼이 피로에 지친 모습으로
길가에서 잠들어 있다.



황량한 벌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어린이.
담요 한 장으로 매서운 추위를
견더낼 수 있을까?


흥남철수광경.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피난민들이
`유엔`군의 `LST`를 다투어 타고 있다.
이 사진은 미공개기록사진 중의 하나다.


철수함정을 타려고 흥남부두에 쇄도한 북한동포들


6•25전쟁 중 인천항에 정박해 있는 메러디스 빅토리호 -
흥남철수 성공뒤엔 `기적의 배`가...
59명 정원 메레디스 빅토리호 피란민 1만4000명 자유의 품으로 인도.
1만4000명의 피란민은 물도 약도 없이 3일간의 항해 끝에
부산항에 닿았다.



남으로...남으로.. 50년 7월29일 국군의 소개명령으로
지게나 소가 끄는 수레에 가재도구를 싣고 남쪽으로 향하는 피란민 행렬



폐허속에서 노숙하는 전란민 가족(1950년 9월)



완전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시가와 전난민들(1950년 9월28일 서울수복당시)



북한동포의 목숨 건 남하 행렬 - 1950년 12월4일 평양을 철수하는
국군과 유엔군을 따라 북한동포들은 이렇게
부서진 대동강다리를 결사적으로 건너 남하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민들 - 51년 1. 4 후퇴때 서울시민들이 철도에서 피난하고 있는 모습
- 이고지고..피란행렬. 51년 1.4후퇴 때 서울시민들이 철도를 따라
피란하고 있다. 피란 보따리 위에 어린이가 앉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6.25 피난생활 "금지구역"



한국전쟁 때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철수 당시의 피난민 모습



임시수도 부산의 천막촌. 1951년



▲ 1950. 7. 29. 경북 영덕,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7. 29. 경북 영덕,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지향없이
떠나는 피난민 행렬.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0. 22. 평양, 북한 주민의 학살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고아원으로 가고 있다. 눈망울이 초롱한 아이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1. 바지 저고리들의 포로들. 총이나 한 번 제대로 잡아보고
포로가 되었는지?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함흥 덕산광산,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13. 지아비가 생매장된 갱도 어귀에서 오열하는 지어미.
"날라는 어찌 살라하고 가시리잇고"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2. 한국전쟁   전투-한국군 #



드디어 38선(한탄강)을 돌파하고 북진중인 육군용사들.


전선으로 긴급 출동하는 국군 기병대.



학도병 전선투입 -인민군을 격퇴하기 위해 국군병사들이 50년 7월5일
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몸에 맞지않는 군복과 누비담요, 소총등으로
무장한 것으로 보아 학도병들인 듯하다.



삽으로 푸는 가마솥밥 -1950년 7월14일 전선에서
국군 취사병들이 임시로 가설한 가마솥에 밥을 지은 뒤 소쿠리에 퍼 담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에 참가중인 해병대 - 1949년에 제주도에서 창설되어
6.25개전이래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한국해병대는
1950년 9월15일 UN군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다.
상륙용 주정에서 아군의 함포사격으로 검은 연기 싸인 기슭을 바라보면서
상륙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전쟁-인천상륙작전> 서울에 돌입한 국군선봉대 -
패주하는 인민군을 쫓아 진격을 거듭한 상륙 동진부대 국군과 UN군은
9월15일 드디어 한강을 건너서
9월 26일까지 인민군을 완전 소탕, 서울을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평양공략을 위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국군1사단 장병들 -
평양 제2의 관문인 보통문이 보인다.(1950.10.17)



38선상의 간이 아치.(1950) 38선돌파 기념으로 우리 국군들이 세운것임.



1950년 10월 아침. 평양입성...평양. 화신앞 모란봉 가는길.
신상철(7사단장)씨와 함께 인민군의 말을 타고 찍은 모습.



국군 입성을 환영하는 함흥 시민들.(1950.10.18)



압록강변에 감격의 태극기 - 1950년 10월26일,
국군 선봉대 용사들이 만주를 눈앞에 바라보는 압록강 기슭 혜산진에 도달하여
감격에 벅차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고창하고 있다.



북한 출격 - 북한의 상공에서 공격을 감행하는 공군기.



불을 뿜는 무반동총 -
육군이 무반동총을 지급받아 무장한 것은 6.25전란 중이었다.



우리공군기의 출격 -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무스탕 전투기편대



우리 공군기의 출격 -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공군사상 최초로 전선으로 출격하는 F-51 전폭기들



한국전쟁중 국군을 위문하고 있는 연예인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2004 NARA



▲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2004 N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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