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의 꽃
2004.12.31 09:26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의 시인 김춘수선생이 타계했다. 최근 한국의 원로시인들이 한 분 한 분 떠나고 있다. 마치 꽃잎이 지는 것처럼 아름다움을 팔랑이며 떠나고 있다.
이 시는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는 시 ‘꽃’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 우리는 존재의 가치성은 그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데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꽃을 향해 이름을 불러줄 때 그 꽃의 존재는 아름다움의 가치로 내 시야(視野 또는 생활)에 들어서는 존재가 된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줄 때 그의 존재는 나에게와 모두에게 들어나게 되는 것이며 동시에 그 가치가 확인되는 것이다. 불러줌(인정함)으로 확인되는 그의 존재와 가치처럼 나 또한 그가 나를 불러 줄 때 나의 존재는 확인되는 것이며 나의 가치는 들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두 사물의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이 아닌 쌍방간에 마땅히 성립되는 존재성에 대한 정당한 인식이야말로 모든 사물을 공존케 하는 원리가 아닐까. - 大餘 김춘수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문인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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