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주시인의 '나그네의 꽃다발'
2004.10.22 01:31
<시와 함께하는 산책3>
나그네의 꽃다발
서정주/호:미당 대표작:국화 옆에서
내 어느 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어 호올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꺾어 모은 한 웅큼의 꽃다발 -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 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어서
내가 못 본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그리하여
천년이나 천오백년이 지난 어느 날에도
비 오다가 개이는 산 변두리나
막막한 벌판의 해 어스름을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사람이 살다보면 외로움도 느낀다. 아니, 인간 삶 자체가 이 시에서 말하는 ‘적적(寂寂)한 것’인지 모른다. 화자(話者)는 이 적적함을 배겨내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나그네 길(노력)을 택한다. 그래서 마침 그 묘약(꽃으로 표현됨)을 발견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소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발로 묶어 “나는 이 꽃으로 나의 적적함을 이겼어” 라며 다른 사람에게 준다.
미당 서정주 하면 그의 대표작인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는 데는 소쩍새도 봄부터 그렇게 울어대야 했고, 먹구름 속에서는 천둥도 그렇게 울어대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소중한 생명의 태동은 우주의 생성원리에 의한 결실인 것이다.
‘나그네의 꽃다발’에서는 삶의 지혜가 이러한 생명의 연속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가치는 전통과 질서의 유지에 의한 소중함으로 들어나고 있는데 그 가치를 이어받을, 마치 릴레이 경주에서 바똥(baton)을 건네받을 다음 주자는 과연 있는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문인귀/시인
*일요신문 10-22-04 게재
나그네의 꽃다발
서정주/호:미당 대표작:국화 옆에서
내 어느 해던가 적적하여 못 견디어서
나그네 되어 호올로 산골을 헤매다가
스스로워 꺾어 모은 한 웅큼의 꽃다발 -
그 꽃다발을 나는
어느 이름모를 길가의 아이에게 주었느니.
그 이름 모를 길가의 아이는
지금쯤은 얼마나 커서
제 적적해 따 모은 꽃다발을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주고 있는가?
그리고 몇 십 년 뒤
이 꽃다발의 선사는 또 한 다리를 건네어서
내가 못 본 또 어떤 아이에게 전해질 것인가?
그리하여
천년이나 천오백년이 지난 어느 날에도
비 오다가 개이는 산 변두리나
막막한 벌판의 해 어스름을
새 나그네의 손에는 여전히 꽃다발이 쥐이고
그걸 받을 아이는 오고 있을 것인가?
사람이 살다보면 외로움도 느낀다. 아니, 인간 삶 자체가 이 시에서 말하는 ‘적적(寂寂)한 것’인지 모른다. 화자(話者)는 이 적적함을 배겨내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나그네 길(노력)을 택한다. 그래서 마침 그 묘약(꽃으로 표현됨)을 발견하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소한다. 그리고는 그것을 다발로 묶어 “나는 이 꽃으로 나의 적적함을 이겼어” 라며 다른 사람에게 준다.
미당 서정주 하면 그의 대표작인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는 데는 소쩍새도 봄부터 그렇게 울어대야 했고, 먹구름 속에서는 천둥도 그렇게 울어대야 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소중한 생명의 태동은 우주의 생성원리에 의한 결실인 것이다.
‘나그네의 꽃다발’에서는 삶의 지혜가 이러한 생명의 연속성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가치는 전통과 질서의 유지에 의한 소중함으로 들어나고 있는데 그 가치를 이어받을, 마치 릴레이 경주에서 바똥(baton)을 건네받을 다음 주자는 과연 있는 것인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문인귀/시인
*일요신문 10-22-04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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