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붓꽃- 리디아

2007.02.24 13:23

김영수 조회 수:1116 추천:38




각시붓꽃

리디아



봄 하늘 불러내린
보라빛 가는 허리

고목나무 언저리에
살포시 고개숙인

새 각시
그 고운 가슴
한 손안에 쥐어라.


*공자가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그 사람은 마치 담벽을 보고 마주 선 것과 같다"말했다 한다.참 놀라운 일이다.삼강오륜을 가르친 분이 새삼 詩情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고 하니 말이다.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공자의 시에 대한 정의다. 그는 시 삼백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악함이 없다( 詩三百 一言蔽之 曰思無邪) 한다.이것은 공자가 엮은 시경 속 詩歌 300수를 말하는데 "...그 중에는 인류 문화사상 시가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주남과 소남의 시가들이 여러 편 있고, 그 시가들은 적나라한 성애열락(性愛悅樂)을 예찬하고 있다"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계 4대 성인 중 한 분인 공자가 성애를 예찬한 시가가 여러편 있는 시경을 엮으면서 그것들을 사무사라 하였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이쯤에서 우리는 공자 같은 분이 왜 시에게만은 이렇게 너그러웠을까를 생각해 봐야 하겠다. 적어도 性에 대한 언급은 시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인가.性을 노래하는 소임을 도덕군자에게 맡기지 않고 시인에게 맡겼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인의 <각시붓꽃>은 해설이 사족이 될 만큼 쉽게 읽힌다. 초장에서 "봄 하늘 불러내린/보라빛 가는 허리"는 성적으로 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그런데 대상이 '봄하늘'이고 보면 性은 퍽 동양적이고 생명적이다.그것을 중장에서 "고목나무 언저리에/살포시 고개숙인" 한국적 고전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감싼다.그러면서 '고목나무'를 대비시켜 한층 생기롭다. 이런 다소곳한 여인이 종장에서 느닷없이 육감적이다.그런데 육감적이란 말이 왜 스스로 우스운가?
천진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性은 천진스러울 수 밖에 없다.그래서 육감이란 말이 우스운 것이다.시의 性은 자연性과 다름아니다.그래, 詩情에 무슨 사악함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