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의 '국기'

2004.12.31 09:28

문인귀 조회 수:1068 추천:26

국기

          김남조

전쟁으로 한 도시가
무너질 때
그도 장렬히 죽는다
보이지 않는 금속의 발판 위에서
한사코 품에 안아 지키던
그의 성스러운 연인을
경건히 땅 위에 뉘이고
제 몸을 덮는다

모든 나라에서
그는 오로지 숭엄하고
빈사의 도시들이
기어이 다시 살아 몸을 일으킬 때
그도 그리스도처럼 부활하여
신성한 연인을 안고
소슬한 공중에
필연 복귀한다


  누구나 국기를 향해 경외심을 갖는 것은 국기가 지니고 있는 국가개념의 상징성 때문이다.
  국기는 하늘 높이 펄럭이며 그 나라의 존재를 다른 나라에 알리고, 국기는 그 나라 사람 하나하나의 가슴에 심어있는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한데 모으는 힘을 만들어낸다. 어쩌다 나라가 망하는 날에는 그 나라와 함께 땅에 묻혀야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러다 나라가 다시 세워지는 날에는 함께 일어 하늘 드높이 올라 다시 펄럭이며 나라의 건재를 알리는 일에 복귀한다.
  이와 같이 나라와 국기의 관계는 성스러운 연인처럼 생사를 같이 하는데 나라를 잃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는 우리로썬 이 시 ‘국기’를 예사롭게 읽어 넘길 수가 없다.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존엄함과 태극기라는 우리 국기의 숭엄함에 대해 어느 만큼이나 인지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적절한 태도가 어떤 것인가를 어느만큼 알고 있을까. 뒤숭숭한 오늘의 한국 정정과 불안한 사회는 혹시 투철하지 못한 국가관과 국기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문인귀/시인

일요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