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찬 시인의 '민들레 9'
2004.08.02 23:18
민들레9
김동찬
미국으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밤일 다닐 때
아파트 계단에서 늦도록 기다리시던
어머니
집도 사고 좀 안정되었을 때
술 처먹고 늦게 들어오면
늘 문열어주시던
아버지
오늘도
현관 문 앞에
가만히
내려와 계시네
민들레 꽃, 그 노오란 금관(金冠) 같은 것이 진초록 이파리 가운데 피어났다가 씨가 맺히면 입김에도 유유히 부유(浮遊)하며 새 자리를 찾는 의연함이란, 예쁘고 멋있는 꽃이다. 그런데 제대로 '꽃 같은 취급'을 받기는커녕 눈에 뜨이면 뽑혀버리고 오가는 발길에 무참히 밟혀 문들어 지기 일수인 것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너무 흔한 꽃이기 때문일까.
김동찬 시인의 씨리즈 시 "민들레"는 우리 이민자의 질겨야만 하는 삶의 여정을, 그리고 그보다 더 질기디 질긴 인간애증(人間愛憎)의 연(緣)을 민들레의 속성에서 찾아 노래하고 있다. 특히 <민들레 9>에서는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밤늦게 귀가하는 아들의 안위에 온 신경을 집 앞에 모두고 계셨던 부모님을 회상시킨다. 집 앞을 지나다니며 힐긋, 한 두 번 쳐다보기나 했을까 싶은 하찮은 꽃, 민들레의 겉모양만 보듯 가벼운 마음으로 부모님의 이러한 질긴 애정을 대하지나 않았을까... 부끄러워진다. 아파트 입구에서도, 집 현관 입구에서도 언제나 볼 수 있는 그 흔한 민들레는 결코 흔한 꽃이 아니라 여겨지는 밤이다.
2003-12-09 17:22:05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3 | 민들레 10 - 김동찬 | 김영수 | 2011.01.14 | 461 |
32 | 깊은 밤에 - 문인귀 | 김영수 | 2011.01.14 | 444 |
31 | 느티나무 성전 - 구자애 | 김영수 | 2011.01.14 | 443 |
30 | 가 정 / - 이 상 - | 박영숙영 | 2011.03.24 | 422 |
29 | 미미박 시인의 '순서' | 문인귀 | 2004.08.02 | 422 |
28 | 김남조 시인의 '국기' | 문인귀 | 2004.08.02 | 359 |
27 | 말리부 해변에서 | 오연희 | 2015.05.20 | 324 |
26 | 고대진 「독도 2: 섬사랑」 | solo | 2004.08.02 | 319 |
» | 김동찬 시인의 '민들레 9' | 문인귀 | 2004.08.02 | 303 |
24 | 나무/아내에게-윤석훈 | 오연희 | 2015.05.20 | 297 |
23 | 잠실에서 다우니로-윤석훈 | 오연희 | 2015.05.19 | 277 |
22 | 길 - 윤석훈 | 오연희 | 2015.05.20 | 249 |
21 | 정용진 시인의 '장미' | 문인귀 | 2004.08.02 | 230 |
20 | 김영교 시인의 '생명의 날개' | 문인귀 | 2004.08.02 | 227 |
19 | 라일락 가든-윤석훈 | 오연희 | 2015.05.19 | 224 |
18 | 시인 윤석훈 | 오연희 | 2015.05.18 | 224 |
17 | 괜찮다 꿈!-윤석훈 | 오연희 | 2015.05.18 | 207 |
16 | 고원-물방울 | 문인귀 | 2004.08.02 | 199 |
15 | 여백에 대하여-윤석훈 | 오연희 | 2015.05.20 | 176 |
14 | 시에게-윤석훈 | 오연희 | 2015.05.20 | 1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