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북-문인수

2004.07.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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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중앙일보]<시와의 대화>달북-문인수 [시]



<시와의 대화>




달북



                                       문인수



저 만월, 만개한 침묵이다.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

그리고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지만

고금의 베스트 셀러 아닐까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이다.

만면 환하게 젖어 통하는 달,

북이어서 그 변두리가 한없이 번지는 데

괴로워하라. 비수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져

천천히 붉게 머리 내밀 때까지

억눌러라. 오래 걸려 낳아놓은

대답이 두둥실 만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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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휘황한 만월 앞에 서면, 꿈과 상상의 교감은 마음껏 부풀어오른다.

누구나 만월을 바라 보면서 느끼는 감성은 제각기 다르겠으나 이 시인은 만개한 달을, 만개한 어머니의 침묵으로 비유하여 ‘소리가 나지 않는 먼 어머니’로 독특하게 형상화한다. 더욱이 북처럼 울려 퍼지는 달북이 소리가 없는 북이라니 얼마나 더 환하겠는가.

북처럼 울려 퍼지는 말씀은 바로 어머니의 덩어리째 유정한 말씀인 것이며 우리의 어린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우리 조상대대로부터 흘러내리는 유구한 말씀을 담고 있는 우리 고금의 베스트셀러와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달은, 아름답고 황홀한 감성을 풍부하게 채워주었던 것은 물론 우화적 설화의 중심적 상징이기도 해왔던 것이다. 이런 달의 이야기야말로 오래 묵은 바로 그 말씀의 덩어리가 아니겠는가.

시인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시공을 넘어 전해져 오는 어머니적 말씀들을, 달북으로 은유한다. 여기서 달은 동양적 인고의 내력과 고전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그 둥글고 화사한 달무리의 모습이 번져나가는 모습은 마치 괴로워하면서도 마치 비수를 댄 듯 암흑의 밑이 투둑, 타개졌다고 하니, 그 환상적인 모습이야말로 과연 그림을 보는 듯 눈앞이 훤해진다. 곧 억눌러서 오래 걸려 낳아놓은 그 대답이란, 바로 소리없는 어머니의 오래된 말씀인 것이다.

그 쏟아지는 달빛이야말로 우리에게 늘 푸근하게 잦아드는 영원한 고전의 악보, 바로 그것이 아닐것인가. 눈부시게 시린 달의 모습이 우리에게 서정적 깊이로 큰 울림을 전해준다.

문인수 시인은 1945년 경북 출생. 1985년 <심상>으로 등단하였으며, ‘뿔’ ‘홰치는 산’‘동강의 높은 새’등 다수의 시집과 김달진 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뉴욕중앙일보
입력시간 :2004. 07. 12   17: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