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진 시인의 '벌레 먹은 나뭇잎

2004.08.02 23:26

문인귀 조회 수:1945 추천:8



벌레 먹은 나뭇잎


이생진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귀족의 손처럼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한 것은
어쩐지 베풀 줄 모르는 손 같아서 밉다
떡갈나무 잎에 벌레 구멍이 뚫려서
그 구멍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은 예쁘다
상처가 나서 예쁘다는 것은 잘못인 줄 안다
그러나 남을 먹여 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이 시는>
이생진 시인은 보기 드물게 읽을수록 맛이 울어나는 시를 쓰는 시인이다. 칠순이 넘었으나 지금도 홀홀히 배낭을 메고 산행을 한다. 며칠씩 섬에 들어가 시를 위한 고행을 한다. 아니, 시를 위한 고행이라 기 보다 고행에서 득도(得道)한 것을 시로 담아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 시 <벌레 먹은 나뭇잎>은 벌레가 먹은 떡갈나무 잎의 존재에서 희생과 보람의 가치를 찾고있다. 벌레가 뚫어놓은 구멍이 있기 때문에 또 다른 아름다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외침은 힘들게 살고있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평탄한 삶을 유지하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비록 힘든 역경과 어려운 삶을 살고있다 해도 그것이 훗날에 보람있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 된다면 평탄하기만 했던 삶보다 훨씬 아름다운 일이 될 것이다. 비록 본인 자신은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았다 해도 그 일이 남을 위해 나에게 걸쳐진 남루한 흔적이라면 그 흔적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아닐까.

문인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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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윤동주문학상 수상
상화시인상 수상
시집 <산토끼><시인과 갈매기>등 25권
우이시 동인
홈페이지: www.or.kr/sj

2003-12-24 02:4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