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성전 - 구자애
2011.01.14 11:37
그믐밤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 한자락 뉠 곳 찾아 헤매었던 것 같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이 집요하게 나를 억누르고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숨을 몰아 쉬어야 할 것 같아 고개를 드는데
어딘가에서 아스라이 한 줄기 빛이 나를 자꾸만 끌어 당겼습니다
그 산중에 집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이 기이해서
무서움도 외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막무가내로 어둠을 쳐내며 걸었던 것 같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 넋나간 발이 가다 멈춘 곳은
인간의 집이 아닌 아름드리 느티나무 앞이었습니다
나무도 오래살다 보니 환기통 하나 정도는 필요했던가 봅니다
엉치뼈 쯤에 큼지막한 구멍하나 만들어 성전을 들여놓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정성으로 깨진 보시기에 오롯이 담겨진 촛불이
그 구멍속에서 나를 불러들였던 것이었습니다
한때는 나보다 더 캄캄했을 뿌리가
몸 한 쪽 귀퉁이 도려내고
그 빈자리로 빛을 들여
눈뜨고도 보지못하는 나를 길에 세우셨습니다
너무도 거룩한 기도를 보는 순간, 나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순간을 통채로 갈아엎게 만든 다마스커스,
그 극진한 빛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우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내어 우는 일 밖엔 없었습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3 | 각시붓꽃- 리디아 | 김영수 | 2007.02.24 | 1118 |
32 | 임승천시인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 문인귀 | 2004.11.21 | 1142 |
31 | 고아원 하늘에 피는 노을 (수필) / 김영강 | 김영수 | 2008.09.30 | 1142 |
30 | 김남조 시인의 '성서' | 문인귀 | 2004.10.08 | 1177 |
29 | 나희덕시인의 '새떼' | 문인귀 | 2004.11.21 | 1192 |
28 | 매미소리를 들으며 | 이남로 | 2009.02.02 | 1195 |
27 | 곽재구 '사평역에서' | 솔로 | 2004.08.02 | 1206 |
26 | 송수권 '아내의 맨발' | 솔로 | 2004.08.02 | 1220 |
25 | 내 인생의 승차권 | 김병규 | 2005.01.26 | 1224 |
24 | 아내의 가슴 (콩트) / 박경숙 | 김영강 | 2008.09.30 | 1227 |
23 | 유장균시인의 제2안경의 추억 | 문인귀 | 2004.10.26 | 1257 |
22 | 맨하탄의 세 친구 (동화) - 최효섭 | 김영강 | 2009.03.08 | 1268 |
21 | 미국 크리스천의 두 얼굴 | 장동만 | 2006.04.29 | 1284 |
20 | 임창현시인의 '물이 진하다' | 문인귀 | 2004.11.21 | 1294 |
19 | 강우식시인의 '노인일기2'--丈母喪 | 문인귀 | 2004.11.21 | 1359 |
18 | 김현승 시인의 '창' | 문인귀 | 2004.12.31 | 1382 |
17 | 화살나무-손택수 | 펌글 | 2004.08.11 | 1391 |
16 | 서정주시인의 '나그네의 꽃다발' | 문인귀 | 2004.10.22 | 1392 |
15 | 이지엽 「그 작고 낮은 세상 - 가벼워짐에 대하여·7 」 | 김동찬 | 2005.03.08 | 1399 |
14 | 인사동 유감 / 임영준 | 뉴요커 | 2005.05.25 | 1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