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홍 시집 '살아 숨쉬는 기억'

2004.08.02 23:34

문인귀 조회 수:1042 추천:14


   이윤홍 시집 '살아 숨쉬는 기억'



<발문>

특유의 "몸통시어詩語"로 각인刻印 해내는 삶의 가치價値

문인귀(시인)

이윤홍 시인, 그의 시세계詩世界에 내가 매료돼 있는 것은 그에게는 솔직하고 다분한 전투적인 끊임없는 '살아있음'의 풋풋한 정신이 있음이요 그것이 그의 시 세계를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4년 전의 일이다. 그가 내 앞에 내 민 것은 두 권의 대학노트였다. 모두 60편의 시를 써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지난 한 달 동안에 쓴 시들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영문학을 전공하고 번역서도 몇 권 출판한 경험이 있고, 이런 저런 에세이도 써온, 글을 좋아하는 그의 경력을 들어본다면 그는 근원적으로 향 문학적向文學的 심상형성心象形成이 되어있는 사람이라 하겠으나 한 번도 써보지 않던 시를 한 달 동안에 60편을 썼다는 것은 시로써의 평가적 면을 떠나서 그의 중심을 발칵 뒤집어 놓은 그 무엇인가의 작용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유는 간단했다. 갑자기 시가 쓰고 싶어졌고, 쓰지 않으면 못 견디는 지난 한 달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애들 엄마가 시 공부를 하려던 것을 제치고 본인이 나서게 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시를 만나게되었고 그렇게 해서 좋은 시를 쓰는 시인이 되어 여기 이렇게 시집을 펴내기에 이른 것이다.

나는 시인 이윤홍의 시에, 그리고 그의 시 활동에 자신감을 가지고있다. 그의 관찰력은 늘 활활 타오르는 횃불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어둠에 묻혀있는 세미細微한 것이라 해도 반드시 찾아내고 마는 끈기,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들어내기 위해 들이는 부단한 노력은 몸통시어(이런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법으로 보다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시어 몇몇으로도 얼마든지 시정신을 들어낼 수 있다하겠으나 이윤홍 시인의 시는 특별한 시어의 인용보다는 평범한 일상어를 엮은 시 전체의 흐름이 독자의 내면세계로 유유히 흘러 들어가게 한다. 왜 일까? 아마도 그는 그의 '쇠주잔의 미학'으로 몸을 적시는 풍류의 멋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윤홍 시인은 인간의 삶, 그 본질적인 형태를 다각적인 면에서 조명하며 재형상화 하고있다. 그것이 실제적인 것에서이건 관념적인 것에서이건 그가 가지고있는 삶에의 깊은 애증은 독자들의 가슴에 삶의 진솔한 면면으로 새겨지고(재창조)있는 것이다.
세심한 관찰력으로 다분한 우화적 해법을 동원해 다루어진 사물들의 가치는 더 없이 친근한 형상으로 우리들의 손끝에 만져지고있다.

아랫목에서 주무시다/하나씩 둘씩 밀치고 들어서는/녀석들에 밀려/윗목에서/자기 몸 껴안고 주무시는 아버지/막내가 떠다미는 통에/문밖으로 떨어졌다//자기 몸 추운 것을/녀석들 추위로 알고/온 집 통째로 껴안고 주무시다/동 틀 무렵/고뿔 걸린 시뻘건 눈으로/방안을 들여다보시는 아버지. -「아버지」 전문

피를 팔았다/2만원 어치/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2만5천 원 보다 부족한 금액/하여 언제나 차액만큼의 빈혈을 달고 다닌다. -「피의 가계부」중에서

바람을 뒤척이며 돌아눕는 그녀/하루의 삶을 위해 오늘도 그녀는 얼마나 젊음을 깎아/먹었을까/나는 날마다 시커매지고 그녀는 날마다 새 하얘진다/아파, 하는 잠꼬대에 내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뚝 떨어진다 -「올리브 잎 하나 물고 올 비둘기는 어디 있는가」중에서

마지막 날까지 다 못 다듬어진 동그라미/흰 뼈다귀 되어 나란히 누었을 때/비로소 닮아버린 서로를 바라보며/달그락 달그락 웃으렵니다. -「부부」중에서

그가 밀고있는 제 엎드린 키보다 더 낮은 책보만 한 수레 위 좀약/세상에 무슨 좀들이 그리 많은지 스스로를 닳구고 또 닳구고 있다/그가 바닥을 기고 있다/수산시장, 본래 몸담고있던 곳을 떠나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의 아픈 물고기들, -「좀약장사」중에서

시 세계는 그 시인의 유전자의 염색체 같은 시심詩心과 시정신詩精神으로 형성된다. 나는 이윤홍 시인의 시 세계가 그렇게 해서 생긴 시 세계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그를 세상에 자랑스럽게 소개하고자 한다.



2004-01-10 01:4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