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식시인의 '노인일기2'--丈母喪

2004.11.21 00:32

문인귀 조회 수:1359 추천:38

노인일기2
-丈母喪


                                            강우식

장모 이 아무개 여사는 85세까지 혼자 살다가 돌아가셨다. 외아들도 시집간 두 딸도 나름대로 모시지 못한 까닭이 있겠지만 나는 장모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본다. 불효스럽게도 딸들은 어머니를 뵈올 때마다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한 발 먼저 간 남편 곁으로 가시라고 틈만 있으면 강요했고 마침내 장모는 단식 아닌 단식을 시작하여 체중 25kg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살아 있는 유일한 즐거움이었던 저녁 일일드라마 ‘보고 또 보고’의 끝도 못 보고 말았다. 혼자 사는 외로움의 그 지독한 깊이를 누가 헤일 수 있으랴. 나는 입관시  미이라 같은 그 몸뚱어리가 고독으로 찌들고 안이 막혔음을 똑똑히 보았다.

   장례 후 장모의 방에는
   누가 먹으라는 것인지 정성스레 담근
   노오란 모과주가
   장롱 속에 한 병 있었다.


며칠 전에도 노인(72세) 한분이 8층에서 투신한 사건이 있었다. 이렇게 목숨을 끊는 당사자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이런 일을 대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이 그 사건에 연류라도 된 공범자 같은 느낌이 든다. 때로는 가해자요 때로는 당사자인 것처럼.
이 시에서도 화자인 사위의 시각에 비친 85세 된 장모의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현실에 떠밀린 자살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먼저 간 남편 곁으로 가시라”는 딸들의 그럴싸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노모(老母)는 할 일이 아직 많았다. 자녀손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뇌어보는 일이며, 하루 종일 닫아둔 창틈으로 새어드는 소음으로 바깥 날씨를 가늠하면서 나막신 장사하는 아들과 우산장사하는 딸네를 떠 올리는 일이며, 그리고는 구석지에 조용히 앉아 연속드라마를 보면서 장롱 속에 담아 둔 모과주를 나눠 먹일 생각에 가슴 뛰는 일까지 모두 노모의 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노모는 언제부터인가 식음을 전폐하고 미이라가 되어버렸다. 바싹 마른 몸에는 방부제 대신 고독만 잔득 담고 떠나야 했다. 장롱 속에 남겨둔 모과주, 아니 그 어머니의 사랑을 마실 자격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문인귀/시인


-일요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