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셀 시집-꽃의 문을 열다
2020.12.02 11:29
책소개
책 속으로
헝가리 귀족과 아일랜드계 피가 흐르는
연약하면서도 도도한 젊은 화가 오키프
카메라 렌즈 속에서 어린 정부를
운명적으로 껴안은 스티글리츠
사진을 그림처럼 찍는 사진 작가의 시선과
꽃을 보는 화가의 남다른 시선이 만나
새로운 사랑과 예술에 빠졌다
예술에 대한 이해가 뭔지
화폭을 넘나드는 그녀의 힘과 자유는
거대한 연기를 뿜으며 커브를 돈다
성공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 「사랑과 예술 ― 산타페 연서 I」중에서
육체의 관능은 사라지고
은둔의 신비만 남은 황량하고 낯선 고향에서
고립을 위해 유배를 자처하는 일이 자주 생겼다
사막에서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진다
비바람에 씻긴 배신과 갈등의 세월
따가운 햇빛에 환골된 짐승의 뼈가
흰색으로 거듭나듯
상처 입은 사막은
상처 입은 자를 보듬을 줄 안다
--- 「상처 입은 사막 ― 산타페 연서 V」중에서
그녀의 묘사 앞에 꽃들은 기가 살았다
사막의 어느 풀꽃이 이렇게 교만하던가
깊고 푸른 밤 하늘을 향해 트럼펫 들면
유독 희고 크고 꼿꼿하고 독을 품은 풀꽃이
분냄새 풍기며 화장을 한다
보잘 것 없는 나도
그녀의 그림 앞에 귀하게 쓰였다
기죽지 마라
고개 숙이지 마라
--- 「흰독말풀 ― 산타페 연서 VII」중에서
추천평
LA 북쪽 근교의 부촌 라카나다(La Canada)에 자리한 ‘데스칸소 가든(Descanso Gardens)’. 여러 나라 희귀한 꽃들도 많고, 꽃구경에 연인들 가족들 산책길로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그 근처 사는 미셸 시인이 이 공원에서 계절마다 바뀌는 꽃을 보지 않을 수 없을 터. 결국 그 ‘일상 같은 꽃 시간’은 시인의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자극하고 만다. 이 시집은 그런 ‘일상의 꽃’에서부터 미주 곳곳, 세계 곳곳의 여행공간을 넘나드는 과정이자, 동시에 아득한 옛시절로의 시간여행이기도 하다. 뉴멕시코주의 사막지대 산타페에서 ‘조지아 오키프’의 그림세계를 만나 15편의 연작시 ‘꽃의 문을 열다’를 얻은 것이 그 대표적인 수확이다. 꽃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설렘으로 가득한 시집!
- 박덕규 (시인, 문학평론가)
시인의 삶 자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갔다가 미래로 갔다가 다시 또 과거로 가는 여행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시간의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제 모습 그대로 피어나는 꽃이기에 시인은 꽃을 시간여행의 주인공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그런 꽃을 이상형으로 삼아 자신의 삶을 꾸려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한국에서 보았던 꽃을 가꾸며 이민생활의 외로움을 달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꿈꾸려면 시를 쓸 수밖에 없다. 시인은 지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시는 남는다. 시어를 다듬으며 영원을 꿈꾸는 시인의 숨소리가 시 구절마다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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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최미자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