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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협회 김영문 소설가의 단편소설집 '죠 딕슨'이 출간되었습니다.



                                                              작가의 말

  높은 곳을 보며 항상 꿈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름답다. 죽는 순간까지도 놓지 못할 꿈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그 꿈이 열매를 만들고 영글어서 탐스러운 수확이 되어 내 손에 들어올 수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풍년이 되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수확이 온다면 말할 것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정성들여 가꾸고 비료주고 땡볕 아래서 잡초 뽑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가을들판에 초라하고 빈약한 산출만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참담한 마음으로 빈 들판을 보노라면 가슴에 피멍이 들겠지만 그렇다고 다음 해에 농사를 짓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수확기가 지나고 날씨가 추워져 발밑에 서리 하얀 흙이 서걱서걱 소리 낼 때 바람 차가운 들판 혼자 걸으면서 내년에는 틀림없이 풍요로운 수확이 있으리라 믿고 다시 씨 뿌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위대하다. 어떠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도전하며 꿈을 놓지 않고 살고 있는 사람은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사회의 도처에서 생업에 성실하게 종사하면서 글을 쓰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집요하게 매달리고 있는 우리 모든 문우들에게 나는 찬사를 보낸다. 수확 없는 빈 들판에 나가서 찬바람 맞으며 서있어도 좌절하지 말기로 약속하자. 인생은 그저 일하고 밥 먹고 잠자고 또 일하고 돈 벌고 또 돈 더 많이 벌고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도록 태어난 사람들이 아닌가. 당신이 있기에 나도 힘내서 글을 쓰고 있다. 당신도 나 같은 사람이 있으므로 인해서 용기를 잃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준다면 아주 고맙겠다.

  종자개량하고 비료 많이 줘서 함지박 만하게 피워낸 장미꽃보다는 산골 양지바른 곳에 핀 한 송이 패랭이꽃이 내 눈에는 더 아름답게 보인다. 아무의 눈길도 없지만 그 작은 얼굴 활짝 피어서 햇빛 우러르며 한껏 뽐내다가 또 그렇게 아무의 눈길도 없이 조용히 고개 숙이는 이 작은 꽃 한 송이를 나는 가슴 저리도록 사랑한다. 나는 이 패랭이꽃 같은 글을 쓰고 싶다. 나도 이 패랭이꽃 같이 아무의 눈 개의치 않으며 도도하고 초연하게 살고 싶다.  

  잡아먹지 않으면 먹혀야하는 현대의 정글에서 점점 찬피동물이 되어가는 인간의 무리 속에 갇혀서 오도 가도 못하고 불안하게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이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다른 사람을 침범할 생각은 없지만 내 존엄성 또한 짓밟히고 싶지 않은 이런 사람들이 정글 속에서 벌이는 힘든 투쟁은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나도 그렇게 싸우면서 살고 있다.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 투쟁하고 이기고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과 그런 품성을 지니지 못한 우리 사이의 대결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승패가 뻔하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그럴까?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나는 그들과 싸우지 않는다. 나는 그저 슬그머니 피해서 자진항복하고 유심히 관찰한다. 내가 성인군자가 되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거다. 나도 우리 모든 글 쓰는 문우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고고한 귀족이다. 내 싸움은 글에서 한다. 법과는 거리 멀게 살고 도덕심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것처럼 군림하고 타인을 파괴하고 자기이득 챙기기에 급급하면서 사는 녀석들을 보면서 느끼는 내 분노감이 나에게 글을 쓰게 만든다.
  오랜만에 만난 녀석과 저녁이라도 먹게 되면 소주 거나하게 마시면서 밤새도록 자기 돈 번 자랑하고 계산서 나오면 눈 멀뚱멀뚱 뜨고 딴전 부리다가 화장실 가는 놈들이 나를 글 쓰게 만든다. 이 악인들과 얌체족들과의 조우는 나의 재산이다. 나는 이런 녀석들과 가급적이면 많이 만나고 싶다.

  당신이 문득 바쁜 일상을 떠나 홀로 뜨락에 나가서 까만 밤하늘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보며 우주의 신비를 생각하고, 고달픈 삶에서도 그 별빛 같은 또 한줄기 희망을 발견하려 애쓰듯이 나도 오늘 오랜만에 마음 차분히 가라앉히고 손바닥만 한 뒷마당에 나가서 밤하늘의 별을 본다. 서로 다른 어딘가에서 살고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있지만 당신과 나는 함께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인간의 존엄성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한 자락의 빛줄기를 건져내려하고 있다. 표정을 잃은 찬피동물들의 군상 속에서 우리는 그래도 조금 남아있는 온기를 찾아내려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 어디엔가에서 홀로 고민하고 있을 당신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당신도 나를 생각하고 당신과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김영문  2015년 4월의 어느 바람 없는 잔잔한 밤에 로스앤젤레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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