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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어미가 죽고 나라가 없어졌다. 수향은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어두운 바다에 홀로 떠 있는 듯 막막한 심정이 되었다. 세 칸 밖에 안되는 집이었지만, 한밤중 월례와 둘이서 지키노라면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수향은 누군가 담장 밑을 지나는 기척만 들려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43쪽)

갑신정변 때 목숨을 잃은 하급 군인의 유복자인 이갑진은 제물포항의 부두 노동자로 일하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난다.

그는 사탕수수밭의 고된 노동으로 연명하다가, 결혼 적령기를 넘긴 나이에야 고국의 처녀와 결혼하기 위해 하와이 한인 교회를 통해 신붓감을 구한다. 이갑진은 김수향을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지만 서로 겉돈다. 머나먼 하와이 땅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끝내 별거하게 된다.

이갑진은 십수 년만의 고국 방문길에 우연히 동행하게 된 국민회 간부의 권유로 3·1 만세 운동에 가담한다. 일본 헌병의 칼날에 갑진이 종로의 만세 현장에서 숨을 거둘 때 수향은 하와이에서 아들을 낳고, 유복자인 갑진의 아들 삼일은 또다시 유복자가 된다.

"수향은 편지 위로 또다시 눈물을 뚝 떨어뜨렸다. 전장을 옮겨 다니느라 어느 땐 소재가 불분명해 수향을 불안하게 했던 아들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앉아 긴 편지를 쓰고 있는 장면을 그려 보았다. 철모를 벗어 놓고 군복 차림으로 펜을 휘갈기는 삼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갑진을 빼다 받은 기름한 얼굴, 수향을 닮은 흰 피부는 전장을 헤매느라 어지간히 그을어 있으리라."(308쪽)

2013년 소설집 '빛나는 눈물'로 통영문학상을 수상한 박경숙이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를 출간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태어난 땅을 떠났지만, 그 조국과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20여 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작가는 100여 년 전 하와이로 떠났던 이민 1세대의 곤고한 삶과, 정든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들의 희망과 좌절, 파란의 역사를 그렸다. 거센 변화의 물결과 세계 열방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국을 떠나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 했던 이민 1세대를 통해 살아간다는 것이 무언인가를 느끼게 한다.

박경숙은 작가의 말에서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후 나의 삶은 평생을 떠도는 듯 하다"며 "고국을 떠나던 날, 연로한 어머니는 공항에서 눈물을 흘리셨다. 서울 유학을 한답시고 너무 어릴 때 부모 품을 떠난 것도 서운한데, 이제는 미국까지 가느냐며 가슴 아파 하셨다. 그 때는 곧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토록 많은 세월이 흐르도록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잉태에서 출간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이 소설을 이제 세상에 내보낸다"며 "미진하고 아쉬운 점이 많지만, 우선은 누군가 읽고 기억해줘야 그 다음 이야기를 이어 쓸 힘을 얻을 것 같은 예감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336쪽, 1만3000원, 문이당.

                                2015.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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