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밥 / 한길수
2012.11.05 06:47
어릴 때는 몰랐었다
어머니는 반찬도 많은데
국그릇에 물 부어 물밥을
후루룩 마시듯 드셨는지
빈 그릇 내려놓고 천장 보며
한숨 쉬는 의미가 뭐였는지
고국을 떠나온 이민자에게
매일 열한시간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마는 날은
더워 땀 흘리며 흥정하다
흐트러트리고 간 옷가지와
손님 뒷모습 보며 불쑥
고개 내미는 스트레스에게
말아 논 물밥을 떠올린다
저녁에 뭘 먹을지 고민될 때
남은 밥에 시원한 물 넣고
총각무 한 조각 깨물면
편한 어머니 얼굴 떠오르며
가슴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감칠맛 나는 한 끼가 되었다
어릴 때는 몰랐었다
저녁을 물리신 아버지는
물밥이 소화되기 전에
드러누워 코를 고셨는지
잠속에서 혹 눈물 같은 걸
강으로 쏟아내지 않았을까
기름진 음식이 즐비한 식단
허기를 느낄 새 없는 요즘
수저에 간장 찍어 먹어도
가슴 먹먹한 삶의 눈물 같은
그리움 휘저어놓은 물밥은
아름다운 추억의 양식이었음을
지구를 몇 바퀴 돌았을지 모를
꽃향기 바람 같은 시간은
머리에 꽃으로도 피어나는데
말도 안 되는 영어는 엉키고
이국에서 만 물밥에 목메는
두 딸 둔 아버지가 된 지금
물밥은 그냥 물밥이 아니고
슬픔을 이겨내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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