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도시-전지은

2007.02.08 03:27

미문이 조회 수:255 추천:20

<목타는 도시> 출렁거리는 몸짓의 여인이 휘황한 네온의 슬롯머신 사이를 춤추듯 걷는다. 담배연기 자욱한 공간의 사이사이로 검은머리 채를 흔든다.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터질 듯 풍만한 가슴이다. 보일 듯 말 듯 유두를 감추고있는 원더 브라 밑으로 드러낸 체형은 가슴을 빼고는 휘어질 듯 작다. 선정적인 유니폼과 검은 스타킹이 온통 반짝거린다. 움직이는 네온사인 같다. 어깨에 걸러 맨 좌판에는 무지개 빛 팽이들과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권련들이 가득하다. 손에 낀 팽팽한 줄을 잡아당기거나 늦추면 팽이는 또 다른 네온처럼 여러 가지 빛으로 불을 밝히며 돈다. 좌판 위에는 누군가의 연인들에게 받쳐져야 할 붉은 장미들이 한 송이씩 셀로판지에 쌓여 리본에 묶여있다. 어린 시절, 골목을 누비던 엿장수 아저씨가 가위질에 맞추어 손님을 부르던 소리처럼 일정하게 씨가, 씨가렛을 부른다. 무리 진 아이들이 뒤를 따라가듯, 여인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은 현란한 네온을 따라 시선을 옮긴다. 낯선 얼굴이건 이방인이건 상관없이 마주치는 얼굴마다 웃는다. 흰 잇속이 아직은 곱다. 박민수의 신세를 많이 진 것은 어설픈 이사 후였다. 미국 생활을 해 보았다고는 하나, 캠퍼스 내 학생아파트에서 살았던 우리는 학교를 벗어난 곳의 생활에 아주 서툴었다. 은행구좌를 새로 열고, 아이를 전학시키고, 전화와 전기, 수도 서비스를 다시 받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여름방학 중인 학교의 복도에서 우연히 비슷하게 생긴 이를 하나 만났고 지나치며, 아 유 코리안? 하고 물어본 것이 인연이 되었다.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있는 것은 시간뿐이라며, 자진하여 이것저것들을 챙겨주었다. 유훨 트럭에 아내와 아이를 싣고 사막의 하이웨이를 가로질러 온 것은 순전히 학교를 옮겨야 했던 급박함 때문이었다. 살인적인 더위였다. 언제부터였는지 엇나가기 시작한 지도교수와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어느 프로젝트를 하나 하려해도, 어떤 실험을 준비하려해도 그는 툴툴거렸고, 무엇인가 이유를 달아 시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새끼 줄 마냥 뱅뱅 꼬여 가는 관계는 풀어지지 않았고 문화와 인식의 차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스스로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통장의 잔고는 밑바닥이 보이고, 항상 조교자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꿈 같은 기대였다. 실험실에 가지 않는 늦은 저녁시간이나 휴일이면 꼼짝없이 집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아내는 곧잘 신경질을 부리고, 아이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장난감 이야기를 꺼냈다. 다행히 아내는 빨리 포기했다. 미련 없이 짐을 싼다며 동네 슈퍼마켓에서 박스를 얻어 오곤 하였다. 싸놓은 짐이 침실을 가득 차게 되자, 그제야 아이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눈치 채는 것 같았다. 사막의 한가운데 있는 학교를 다시 고른 것은 순전히, 싼 생활비와 다시 받을 수 있게된 조교 자리 때문이었다. 아파트 앞 아이들의 놀이터는 텅 비었다.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로 캠핑을 떠났거나, 멀지 않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갔으리라, 상상을 하며 아이들이 타는 그네에 앉아 삐걱거려보기도 했다. 공해에 찌들지 않은 하늘엔 초롱초롱한 별들이 뜨고, 사자 자리좌 별들도 은하수도 손에 잡힐 듯 했다. 바닷가에서 시작되었던 아내와의 데이트. 이름 모를 향기가 베어있던 연서들. 박봉의 월급을 쪼개야 했던 시외 통화료. 주말에만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짧은 만남. 편지가 한 상자쯤 모여지고 바다 풍경들이 몇 번쯤 바뀌자 헤어지는 시간들을 아쉬워하게 되었다. 시골의 꽤 잘 나가는 집 무남독녀라는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다. 늘 자신을 위한 생활에 충실하였던 아내는 결혼 후에도 직장을 놓지 않았다. 아직 제대 이전이었던 남편의 불확실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자 아내는 평범한 일상을 원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에 주말부부는 합당치 않았다.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방법으로 떠오른 것이 훌쩍 어디론가 가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준비했다. 유행병처럼 지나가는 유학 병에 스스로 감염이 되었고 치료란 오로지 떠나보는 것밖에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아이의 핑계를 대며, 아이가 좀 크면 데리고 오라고 해보았지만 어떤 낌새를 눈치 챈 아내는 죽을 각오로 따라나섰다. 기선을 잡을 기회는 이번이다 싶었다. 낯선 나라, 낯선 말, 낯선 환경, 묶어두고 싶었다. 볼모로 잡혀가는 고려의 공주처럼 아내는 하자는 데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들었다. 어둠이 가시기도 전, 통금이 해제되기 무섭게 택시를 잡았다. 미대사관까지 가자는 말에 운전수는 경쾌하게 액셀을 밟았다. 아직 막히지 않을 시간에 미터요금이 꽤 나올 거리로 모시는 첫 아침 손님의 마수걸이가 나쁘지 않았던 탓 일게다. 새벽에 줄을 서야 건물로 들어 갈 수 있는 표 딱지를 받고,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아내는 아이를 친정에 맡겨두고 왔다.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등을 빳빳 세워 앉아 있는 모양이 많이 긴장해 있는 모습이었다. 별로 잘해 준 것도 없는 삼 년의 시간 속에서 앳된 티를 벗고 있는 것이 조금 안스럽기까지 했다. 긴장을 풀어 볼까, 운전수 양반에게 말을 건넸다. 일찍 일을 나오셨네요. 먹고 살아야하는 일이니 별 수 있나요. 이런 새벽부터 줄을 세우는 미국대사관의 처사는 틀려먹었어요. 묻지도 않은 말을 거들었다. 나도 아들이 둘인데 글쎄, 유학 간다면 도와주어야겠지요. 아드님이 몇 살이 신데요. 대학생이지요. 뭘 공부하나요. 아, 녜. 신학대학 다니지요. 목사님이 되시겠네요. 그렇지요. 요즈음 목사들 최고로 돈 잘 버는 것 아시지요? 강남에 보세요. 빌딩 하나 건너에 하나씩 교회가 생긴다구요. 그래도 교회는 장사가 잘되나봐요. 건물 척척 올라가지, 좋은 차에, 좋은 집에, 신도들이 떠받들어 모시지, 괜찮은 직업인 것 같아서 신학대학 간다는 것 말리지 않았지요.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는 집안인 가봐요. 아내가 다시 거들었다. 아니요. 제는 그냥 한 두어 번 가보았을 뿐이고 집사람이 열심히 다니지요. 형 하는 것 보더니 밑에 놈도 신학대학 가겠다고 하는데 글쎄, 목사가 둘씩이나 해서 뭘 할까 모르겠어요. 건물 사이로 어둠은 점차 걷히고 신작로의 아스팔트가 깨어져 요철현상을 이루는 곳들이 삶의 상처처럼 곳곳에서 드러났다. 어둠이 내려져 있는 곳에선 보이지 않았던 상처들. 밝은 빛은 숨기고 싶을 곳까지 들어내 보였다. 도착한 곳엔 사람들이 이미 긴 행렬을 만들어 섰다. 찢어진 신문지 쪼가리들이 차가운 봄바람에 어지럽게 날렸다. 아예 모포를 깔고 반쯤 누워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새벽 커피와 달걀 토스트를 파는 포장마차에선 맛있는 냄새가 시장기를 더하게 했다. 아내에게서 커피 두 잔을 받아들며 토스트도 더 사라고 일렀다. 빈속의 아침바람은 가슴 속까지 떨리게 했다. 줄을 서서 커피를 마시며 어제 오후의 일을 토스트에 함께 넣고 씹어 보았다. 은행의 잔고가 많지 않았던 우리에게는 비자를 받기에 충분한 액수의 잔고증명이 필요했다. 사채 업자에게서 삼천 만원을 빌렸다. 우리 은행의 잔고증명을 떼고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비자를 받게 되면 그들의 통장으로 다시 넣어주는 24시간 사채 빌리기. 수수료는 삼십만원이었다. 우리의 신용을 담보로 잡혔다. 시골 부자라는 장모는 유학이라는 말을 송충이 보듯 싫어했다.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을 넘겨 준 것도 못 마땅한데 뭐 그리 신나는 일이라고 통장에 돈까지 넣어주며 유학을 부추기냐며 싫어하더니, 끝까지 모르는 척 하기로 했는지 뒷돈을 보아주지 않았다. 몇 마디 잔고 증명과 가족관계를 묻고는 비자를 받았다. 막대기처럼 서있던 아내는 오케이, 소리 한마디에 환한 얼굴이 되었다. 신비의 세계가 기다린다고 생각했을까. 무지개를 쫓아 가다보면 무지개는 일정한 방향으로 달아나고, 빠른 속도로 가까이 가려하면 무지개를 지나 이미 언덕 너머에 와 있었던 것을 그 시간에는 기억하지 못했다. 똑같은 번거로운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더 지배적이었다. 은행에서 삼천 만원을 다시 고리대금업자의 구좌로 옮기고 복덕방엘 들렀다. 아파트를 세 놓고, 하나씩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준비를 하게 되었다. 작은 방을 비우고 요긴하게 쓰일 살림살이들과 공부에 도움이 될 것들만 골라 쌓아 갔다. 이곳에서의 이사가 낯설었던 것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공공 서비스와 현지어 때문이었다. 영어를 배운답시고 영어 학원을 다니고, 유학원에서 줄불나게 외웠던 영어 단어들은 무용지물이 된 채,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아원에서 배워 온 말들이 훨씬 의사소통을 용이하게 해 주었다. 마켓에서 돈을 거스를 때나 은행 창구에서 쩔쩔매는 것들을 아이는 제법 거들고 있었다. 맥도널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사야하는 것도 물론 아이의 몫이었다. 구르지 않는 소리, 영상이 머리 속을 한번 지나고 입 속에서 연습을 하고 나서야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노릇이었다. 알 수 없는 삶의 긴장들이 굴러가야 하는 발음을 더욱 방해 하고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복도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날로 박민수는 집으로 따라왔다. 아내에게 예고하지 않았던 손님으로 눈총을 받았지만, 함께 짐을 풀며 비오듯 땀을 흘리는 같은 나라사람에게 시원한 냉국도 준비되었다. 섬머타임을 실시하고 있던 곳은 오후 8시라고 해도 아직 훤했다. 달구어진 대지는 식을 줄 모르고 훅훅 더운 바람을 밀어냈다. 땀으로 샤워를 하며 짐은 대충 자리를 잡았다. 처음엔 다섯 개의 이민 가방에 나누어져 실려왔던 것들, 다시 다섯 개 분량의 잡동사니 세일 품목들이 덧붙여졌다. 작은 크기더라도 유훨 트럭이 아니면 움직일 수 없었다. 박민수는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집으로 찾아들었다. 박민수는 늘 아파트의 빈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우리 차를 이용했다. 도움을 받는 형편이고 보면 아내의 눈총도 하는 수가 없었다. 학교의 등록과 공공서비스를 개설한다는 그럴싸한 이유를 대고 집을 나섰다. 햇살 아래로 드러난 도시는 지저분했다. 거리에 나 뒹구는 쓰레기, 네온이 진 거리는 옷을 벗은 나신의 모습으로 주름이 잡힌 뱃살과 쭈그러들은 유방의 겉모습처럼 드러났다. 볼품이 없었다. 습한 곳을 찾아드는 인간의 습성으로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면 안개 자욱한 도시처럼 담배연기가 가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에 취해, 현란하게 부딪히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정신을 산란하게 만드는 기계음 소리에 취해, 흔들리는 걸음이 되었다. 공짜로 마시는 흑맥주 한잔과 커피에 머리를 쓸어 올리며 정신을 차리려 해보지만 유혹은 마약이 되어 몸 속을 흐르고 안주머니까지 탈탈 털어야 거리로 다시 나설 수 있었다. 아직 아내가 은행잔고를 확인해 보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이사를 하며, 새로운 곳에 예치금을 넣어야하는 것들이 많다는 핑계도 이젠 한계에 달했다. 내일은 그만 두어야지. 박민수가 오더라도 따라 나서지 말아야지 결심을 해보지만 오늘도 종일 아무 요기를 안한 것을 차를 타서야 알았다. 옆자리의 박민수도 주머니가 빈 것 같았다. 오늘은 좀 잘될까 싶었는데, 역시 안되네요. 꿈도 좋았고 해서, 좀 따면 이젠 그만둘 작정이었는데. 묻지 않는 말에 답을 하는 박민수를 물끄러미 처다 보았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린 것이 때아닌 비가 오려는지. 10시가 넘었는데도 그가 오지 않았다. 웬 일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참아 보기로 하였다. 은행잔고가 위험 수위까지 내려와 있는데 더 이상 재주가 없었다. 정오쯤 되자 일어났다 앉았다 안절부절못하게 되었다. 정신 혼란하다며 아내는 투정을 했지만 손놀림도 마음도, 그 시간 꼭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누군가 기다리고 있거나, 슬롯 포커를 하면 잭팟이 터질 것 같은 기분. 잭팟이 터지면 근사하게 아내에게 한턱 내고 용돈도 좀 푹 집어주어야지. 사고 싶어했던 옷도 한 벌 사주고, 차도 바꾸고, 아이에게도 장난감을 한 보따리 안기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집안에 앉아있는 것은 너무도 비생산적인 것 같았다. 잠시면 되는데, 블랙 잭을 할 때도 한 서너번 왕창 가서 21이 나오면 손 털고 올텐데. 일불 짜리 동전을 5개 넣고 한번 당겨 777이 나오면 그냥 끝내 줄텐데. 아내에게는 학교를 다녀와야 할 일 있다고 늘 써먹는 이유를 댔다. 학생이 학교를 가는데 무슨 서술이 필요할까. 주차장에 세워져있던 차 속은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창을 내리고 바람을 맞아보지만 사막에서 훅훅 불어오는 더운 바람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금새 등줄기로 땀이 흘렀다. 건물 안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시원한 곳에서 한번 붙어보자, 전장에 나가는 전사 마냥 가슴을 펴고 걸었다. 크레팃카드를 디밀고 현금을 찾았다. 총알이 충분해야 과녁을 명중하는 한발의 무엇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 비장한 각오로 블랙잭 테이블을 기웃거렸다. 멍청해 보이는 딜러들을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숫자에는 늘 귀신인 그들이니까. 가능하면 딜러들의 팁이 두둑하게 모인 테이블을 찾았다. 이쪽에서 돈을 따지 않으며 팁을 내주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딜러의 팁이 두둑하다는 것은 곧 손님들이 준 개평이 많았다는 것이고, 손님이 딴 횟수와 액수도 많았다는 것을 뜻했다. 이곳에서 짐을 푼 지 몇 일되지 않았는데도 이런 작전들을 알았다는 것은 큰 수확이었다. 순전히 박민수의 경험에 의한 강론이 전달된 것이었다. 그의 경험을 믿고 조준 해보는 것은 스릴 만점의 게임이었다. 이기지 못하는 게임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자신 있게 딜러의 눈을 똑 바로 쳐다보며 여유 있게 해야 한다는 것, 임산부가 끼어있거나 처음으로 카지노에 와 보는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면 이쪽이 유리하다! 는 것은 어디에서 근거했는지 알 수 없으나 그것 또한 박민수의 사설에 의한 것이었다. 앞에 쌓이는 칩들이 높아갔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순간까지 세어보지 않는 것도 무슨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서 밖의 시간을 알기란 쉽지가 않았다. 휘황한 네온의 밖은 어둠이더라도 이 안쪽은 고색 창연한 샹들리에와 에그조틱한 조명으로 밝혀져 있으니까. 칩의 색깔이 푸른 것에서 붉은 것으로 바뀌어 가더니 드디어 핍 보스를 불러 지켜보게 하는 검은색으로 바뀌어 가고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쌓여갔다. 모르는 사이에 주위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옆자리의 할머니도 자주 카드를 훔쳐보곤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딜러는 한 움큼의 팁을 테이블들의 가운데 마련된 자물쇠가 달린 통에 넣고, 앞치마를 끄르며 사라져갔다. 할머니는 또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에 갑자기 시장기가 느껴졌다. 시간이 꽤 되었는지 열광하는 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진 듯했다. 곳곳에서 여자들의 환호소리가 들리고 기계는 삐웅거리며 동전을 떨어트렸다. 플라스틱 통에 가득 담고도 남아 지나가는 환전수를 불렀다. 그만 일어서서 저쪽 기계에서 한 밑천을 더 잡아야 할 것 같았다. 스툴에서 내려서는데 다리에서는 쥐가 났다. 손을 털며,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하는 사이, 딜러는 검은 색 칩을 여러 개 내주었다. 우수리로 남은 푸른색을 팁으로 주고, 붉은 색은 기다리고 있던 환전수에게서 동전으로 바꾸었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앉아있다 일어선 자리, 스툴엔 아직 미지근한 체온이 남아 있었다. 하나씩 둘씩 넣으며 손잡이를 당겼다. 속으론 777을 외치며. 또 넣고 또 당기고, 동전 통의 바닥이 들어 나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그만 두면, 이 검은색 칩들만 바꾸어도 한동안 먹고살텐데, 아니 한번만 더 당겨 보자. 혹시 더 큰 것이 터져 아내의 옷이라도 한 벌 장만할지. 사이렌 소리가 울렸다. 주위엔 누가 소리치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씨가, 씨가렛”을 노래처럼 부르며 삐져 나온 가슴과 빈약한 엉덩이를 흔들던 여인도 사람들 사이에서 보였다. 붉은 재킷을 입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동시에 다가 왔고 손에 든 무전기로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았다. 커다란 종이를 기계에 붙이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그렇게 스툴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쳐다보며 쑤군거리고 모여 있던 사람들도 움직이질 않았다. ‘대박이 터지긴 터진 모양이지’ 이십 분도 훨씬 더 지났을까, 붉은 재킷의 사람들이 돌아왔고 백불짜리부터 십불짜리까지 거꾸로 세어 주었다. 아귀가 딱 맞는 액수임에도 불구하고 이십불짜리와 십불 짜리를 섞어 준 것은 팁으로 우수리를 달라는 것이겠지. 그러나 모르는 척 십불짜리까지 챙겨 받고 자리를 떠났다.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뒤쪽에서 들렸으나 못들은 척 그곳을 빠져 나왔다. 한 귀퉁이를 돌아 현금 교환소에서 검은 칩을 꺼내주고 다시 현금으로 교환했다. 얼마 만에 이런 목돈을 만져 보는가. 목이 말랐다. 스낵코너에서 냉장고에 들어 있던 시원한 물 한 병을 샀다. 한번에 마셔버렸다. 가슴이 확 트이는 듯 시원했다. 따라 오는 사람은 없는지 뒤를 돌아보고는 빠른 걸음을 옮겼다. 해가 진 사막에선 아직도 지열이 굉장했다. 창을 열어도 에어컨이 없는 차는 짜증스러워야 할 텐데도 자연스레 휘파람이 나왔다. 그제야 시장기를 느꼈다. 어깨도 아프고 익숙지 않은 담배연기에 머리도 띵했다. 그러나 주머니는 두둑했다. 시동을 걸고 건물을 돌아 나오며 안쪽에서 아까 보았던 여인의 뒷모습을 언뜻 지나친 것 같았다. 그림처럼 휙 지나가는 모습. 검은머리에 작은 체구, 휘어진 다리에 어울리지 않는 반짝이 유니폼, 아무나 보고 윙크하며 웃는, 코맹맹이 소리가 오랫동안 머리 속에 남겨져 있었다. 짧은 바람 소리에 감겨드는 째즈 음악의 볼륨을 한껏 올리고 액셀을 밟았다. 이제는 정말 다시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더운 바람 사이로 보름인지 둥그런 달이 하나 높게 떴다. 며칠째 박민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통장의 잔고가 다시 채워지자 아내의 얼굴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대우도 좀 달라졌다. 그런 딴 세상에 자기도 좀 데려가 달라고 애원이었다. 무슨 비밀스러운 곳이나 되는 것처럼, 아이를 데려 갈 수 없어서 안 된다는 핑계를 대며 그곳에 가길 피했다. 다음으로 이어질 유혹이 겁이 났다. 더위 속에서 아이는 용케 견디었다. 넓은 잔디에 물을 주기 위한 스프링클러 주위에서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물장난을 쳤다. 아파트의 매니저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물줄기만을 따라 다니는 아이들의 무리를 어쩔 수가 없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아이들은 무더위 속에서 시원함을 찾았다. 야자수 나무 그늘이 없다해도 물방울 사이론 작은 무지개가 뜨고 아이들은 그걸 잡기에 열중해 있었다. 곱게 차려 입은 노인 한분을 모시고 온 것은 또 다른 유학생이었다. 박민수와 통화도 안 된다며 혹시나 해서 찾아 왔다고 했다. 새로운 유학생들만 있으면 찾아다닌다는 이야기도 덤으로 들려주었다. 혹시 들은 소리는 없는지도 조심스레 물어 왔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나는 어떤 의미인지를 되물어야 했다. 혹시 어디로 떠난다거나, 아내의 이야기라거나 그런 거,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노인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다 알고 있는데 쉬쉬할 것은 없다는, 만나거든 딸 데리러 왔다고 전해주시오, 라는 단아한 노인의 목소리가 한 음계 높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고명딸이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신아비에게 웃돈 줘 가며 고른 신랑감이었다. 박사 학위가 2년 남았다고 했다. 잘 나간다는 전자공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살러 가야하는 곳이 미국이니 신혼 여행 겸 잘되었다고 그 흔한 제주도 한번 못 보내고 신랑 따라 보냈는데. 함께 공부하면 더 좋을 거라는 말에 빚까지 얻어 뭉치 돈 만들어서 보냈는데, 남았다던 2년이 지나고도 또 2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안 하더라고. 공부하는 딸 때문인가 싶어 다달이 돈 부쳐 주고 마름음식가지와 옷가지, 보따리 보따리 싸보내곤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전화도 자주 안 하더니, 어느 날은 노인이 먼저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안되더라고 했다. 영어로 떠드는 전화기를 붙잡고 몇 일을 애 쓰다가 국제통화 교환수한테 물어보았더니 전화가 끊겼다는데 새 번호를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이지. 내 딸년 전화를 알려고 하는데 안 되는 것은 뭐고, 사돈댁에 전화를 했더니 이것들이 그쪽에도 연락을 끊었다는 것이야.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해결을 해주던가 할 것 아니냐는 말은 일리가 있었다. 노인을 모시고 왔던 이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엊그제 이사 온 우리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그러나 박민수의 아파트 주소라도 두고 가면, 혹 연락이 닫게 되면 즉시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박민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더구나 그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다. 그에 대하여서는 전화번호 하나만 달랑 알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늘 그가 이 아파트로 찾아왔었으니까. 노인과 동행해 온 그도 박민수를 만난 것이 한참 되었다고 했다. 돈을 빌려주지 않았는지도 물었다. 이사 올 때 돈이 거의 없었거든요, 라고 답했다. 그렇다고 지금이라고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혹시라도 돈 빌려달라고 하거든 딱 잡아떼쇼, 노인의 말을 뒤로하고 그들은 떠났다. 시원한 냉국에 간단히 점심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는 아내의 말을 인사로만 받아드렸던 것일까. 그들이 돌아가자 아내는 몹시 궁금해하였다. 둘 사이가 나빴던 게지, 아내의 불필요한 상상을 덜기 위해 한마디 거들었다. 하현달이 뜬 아파트는 어두웠다. 미국사람들은 어두운 조명을 좋아하는지 낮은 아파트엔 불들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늦게까지 켜 놓은 텔레비젼에선 알 수 없는 제 소리로 무엇인가를 역설했다. 제법 심각하게 경청하는 아내에게 뭐 알아들어, 라고 물어 보았다. 쓸데없는 한마디가 아내의 심지를 건들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격지심에 출신학교 어쩌고만 나오면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쩐지 가끔은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는 너는 뭘 알아듣느냐는 막말이 나오고 그 잘하는 공부에 이곳까지 왜 옮겨왔느냐는 말에, 옆에 놓였던 잡지가 날아갔다. 아내의 목청이 여름 밤하늘을 찢어 놓을 듯이 높아지자 위층에선 쿵쿵 마루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휭하니 밖으로 나왔다. 딱히 어디를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차를 몰고 세이지부러쉬가 가득한 사막의 사이를 달렸다. 도시는 휘황하게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불빛들이 현란하게 퍼 붙는 청객 행위는 삐끼 아이들의 소리보다 훨씬 매혹적이었다. 건물로 들어섰다. 이용이 편리한 플라스틱 크레팃카드는 주머니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왔다. 또 병은 도졌다. 정신없이 동전을 넣고 당기고 또 얼마쯤은 기계가 요란한 음을 내며 떨어지고 손바닥이 새까맣게 될 때까지 한 곳에 붙어있었다. 높은 스툴에 달랑 매달려 있었던 탓인지 허리가 뻐근했다. 늘 허리가 불편한 시간쯤이면 적당히 동전도 바닥이 나고 목도 말랐다. 지나가는 아가씨를 불러 세웠다. 엉덩이를 겨우 가린 서비스 아가씨에게 흑맥주 하나를 시켰다. 오케이, 탁한 음을 내며 지나갔다. 자세를 바꾸려 스툴에서 내렸다. 기계들의 저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고개를 삐꿈히 내밀고 얼굴들을 따라가 보았다. 한국에서 왔다는 노인과 지난번 동행했던 그 학생이었다. 몸을 숨기고 싶었다. 맏닥 드리게 될 그들의 시선이 조금은 창피했다. 기계를 돌아 다른 쪽으로 사라지려는데 아가씨가 맥주를 쟁반에 받쳐들고 나타났다. 여기 시원한 것, 맥주병은 손이 시리게 차가웠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팁으로 동전 하나를 집어주고 기계에 남아 있던 동전들을 꺼내려는데 기계에선 동전이 떨어지는 삐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고 들키고 말았다. 숨바꼭질을 하다 잡힌 술래처럼. 얼마 남지 않은 동전을 챙겼다. 그들은 시선이 계속 뒤통수에 붙어있었다. 돈을 바꾸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노인을 거절하지 못했다. 마시다 남은 맥주병을 들고 우아하게 장식이 된 호텔의 입구의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박민수를 정말 못 보았는지, 카지노에서 못 보았는지를 따지듯 물었다. 정말 만난 것이 일주일이 넘었다고 대답을 했다. 훔친 물건을 앞에 놓고 머리를 조아리고 취조를 당하는 꼴이었다. 노인의 딸은 지금 아파트에 있다고 했다. 도박이라는 병에 걸린 남편의 돈을 대주기 위해 카지노에서 일을 했다고. 돈이 떨어진 남편은 가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여 이웃의 신고로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하고 며칠씩 꼼짝 않고 누워있기도 하고.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해보기도 했으며, 둘이서 함께 카운슬링을 받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조금 좋아지는가 싶으면 또 도지고, 얼마 동안 카지노 출입을 안 했나 싶으면 어느새 또 크레딧카드에 빚이 늘어나 있고. 임신을 했다가 혼자 결정하여, 저소득층을 위한 보건소 비슷한 곳에서 아이를 지웠다고 했다. 혼자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며. 그 지경이 되었으면 귀국을 했어도 좋으련만 빚까지 내어 박사 사위 보겠다는, 금의환향 할 것이라는 부모들의 꿈을 저버릴 수가 없어 지금까지 버티었다고 했다. 박민수는 학교를 가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자 학사경고를 받고, 과를 옮기고, 버티는데 까지 버티다가 드디어는 제적이 되었고, 제적 이후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심정에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돈도 떨어지고 학생비자 기간이 만기가 되자 둘은 불법 체류 자로 남게 되었다. 딸이 시작하겠다던 공부는 그림의 떡이 된 채 혹시 그 시간이 올 것을 기대하며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다. 유학생의 동반 가족 비자로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어있는 이민법에도 불구하고, 싼 임금의 노동력이 필요했던 카지노에 취직이 되었다. 그들이 볼 때 이국적으로 생겼다는 것, 유창하지 않은 현지어와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시키는 일에 절대로 이의를 달지 않는다는 것은 고용주에게는 금상첨화였다. 딸이 서비스 아가씨 일을 하면서 겨우 살 수 있었고 박민수는 점점 망가져 갔다고 했다. 새로운 사람들이 유학생이나 이민자로 타운 내에 들어오게 되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들을 도와주며, 얼마동안을 빌붙어 지내곤 했다. 그리고 돈을 빌려선 카지노를 갔고 며칠을 들어오지 않고. 악순환의 병은 점점 깊어 갔다. 타운 내의 한국 사람들은 그의 행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노인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 마지막에 걸린 것이 우리들이라고. 이제 노인은 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딸과 박서방이 연애를 했던 애틋한 사이도 아니고 부모가 극성스럽게 선을 뵈이고 날잡고 각본대로 짜 맞추어 보낸 것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도 이젠 정말 데려가야겠다고. 부모 때문에 인생 망친 것 같아 명치끝이 아프다고 했다. 책임져야지. 에미가 책임져 주어야지. 긴 한숨이 이어졌다. 만나거든 전해주시오. 악연으로 만났어도 이 정도로 했으면 사람의 도리는 다한 것 같다고. 노인의 목소리가 점점 기운을 잃고 조금씩 한숨을 섞더니 끝낸 울음을 섞었다. 젊은 양반도 정신 차리시오. 우리 박서방이라고 이렇게 되고 싶었겠수. 조금씩 도를 지나치다 보니 일이 이 지경까지 온 것이지. 이곳에 처음 왔다니 말이요. 처음부터 다잡아 조심하지 않으면 누가 알아요, 큰 코 다치지 않게. 아이도 있더구만, 며칠 전에 보니까. 남편하나 믿고 이곳까지 따라 나선 아내도 어느 댁에선 귀한 딸이었을 거구만. 노인의 사설이 끝없이 이어지는 동안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고있었다. 옆에 앉아 있는 학생도 같은 자세로 머리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잘못된 관계의 시작. 왜곡된 결혼 풍속도의 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한시간 반 짜리 단막극처럼 부모들의 허영과 욕망이 만들어낸 맺음이 뒤틀리고 꼬이는 시간들. 가난이라는 현실과 명예와 돈을 함께 거머쥔다는 허영의 꿈은 간헐적인 괴리를 만들어내고 그 틈바구니에서 각본대로 되어가지 않는 인생에서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자신이 꿈을 이루어 주어야 한다고 믿는 딸과 스스로 가해자가 되고있는 박민수를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금의환향이라는 것이, 박사학위라는 것이 이들의 꿈이었을까. 피폐한 사막의 가운데에 인생의 끝자락을 만들어 스스로 자신들을 유배시키고 부모들의 꿈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것은 아닐까. 가련한 몸부림이 되어 살아보려고 했던 이들. 모든 여건들에 의해 망가지고 해체된 피해자가 되어 조갈이 심한 유배지에 와있게 되었다. 엉거주춤 일어났다. 부탁이오. 박서방 만나거든...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을 건 꿈이 아니었던가, 허망하게 버려진 꿈. 다시 모으기엔 이미 너무 잔 조각이 되고 말았다. 꿈의 편린들. 사막의 세이지부라쉬 속으로 말려들어 갔다. 시간이 꽤 되었는지 새벽공기는 서늘했다. 아직 주머니엔 몇 장의 지폐들이 남아있다. 아파트이 불이 꺼진 것을 보니 아내는 잠이 들었나보다. 열쇠를 돌리며 금속성의 차가운 소리를 듣는다. 방안엔 아이의 장난감과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것이 어두움 속에서도 희미하게 드러난다. 조심스레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눕는다. 몸뚱이의 찬 기운을 느낀 탓일까, 아내가 돌아눕는다. 얕은 한숨 소리가 들리고 언 듯 손에 닫는 베게는 흠뻑 젖어있다. 노인은 혼자 돌아갔다고 했다. 다시 짧은 미니스커트 반짝이 유니폼을 입고 ‘씨가, 씨가렛, 로우지스’를 구르듯이 말하는 여인을 그 카지노에서 볼 수 있었다. 한 손에는 요요를 들고 줄을 놓았다가 당겼다가, 불이 켜지고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고 사람들을 유혹했다. 박민수의 돌아옴을 묻지 않았다. 지금쯤 그는 그만이 알고 있는 깊고 은밀한 곳으로의 잠적을 기꺼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문제에는 결코 신경을 쓰지 않는 서구 문화 속에서 어눌하고 굼뜬 행동들이 다른 구조 층을 이루게 했고,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치열한 삶은 처절한 외로움으로 밀어냈는지도 알 수 없다. 어울리지 못하는 사회, 속할 수 있는 곳은 누구든 돈만 있으면 환영하는 사막의 구석자리였고 또 다른 집합체 속에서 그는 편했을 것이다. 개학이 되고, 실험이 시작되었다. 누런 산언덕이 까실한 바람을 내몰고, 운동장 만한 아파트 잔디에서 스프링 쿨러 돌아가는 시간이 좀 뜸해지자 아내의 짜증도 좀 수그러들었다. 함께 등교하고, 남은 시간이면 실험기구를 닦아 가지런히 엎어놓기도 하고 수업이 비는 날이면 아이의 학교에서 자원봉사도 했다.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박민수의 실종은 화재거리가 되었다. 늘 술안주가 되어야 하는 ‘씨가렛 여인’. 아직도 기다린다고 했다. 돈을 벌고 아무에게나 웃음을 웃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여자는 아직 그 카지노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아내는 가끔 지나가는 말처럼 박민수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묻곤 했다. 길어지는 세세한 이야기들은 아내의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쓸데없는 자비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므로 글쎄. 통 아는 사람이 없나봐, 모르겠는데, 로 일관했다. 다행히 이곳 다른 아낙들과는 아직 편안한 사이가 아니어서인지 주위의 뉴스에 어두운 것 같았다. 다행이었다. 시시콜콜 알게되어 미래에 대한 엉뚱한 상상을 하게되면, 새로운 곳에서의 또 다른 시작에 득이 될 일이 없다는 생각에서 답을 피했! 다. 무심한 대답에 여자만 불쌍하다며 혀를 끌끌찼다. 동병상련 같은 기분에서일까. 박민수의 이야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것은. 산을 넘어 사막의 가운데 오지라는 곳으로 이사를 하며 가져야 했던 자격지심 같은 것에서였을까. 세이지부라쉬가 바람에 구른다. 하이웨이를 가로지르는 돌풍은 먼지까지 동반해 차안으로 들어온다. 창의 손잡이를 돌리며 오늘도 사막의 가운데를 가로질러 가는 나를 본다. 입안에서의 말들을 쏟아낸다. 꿈은 사라지고.....퀘퀘한 곰팡이 냄새가 나는 시골 헛간이 이젠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한여름의 더위는 늘 끈적거렸다. 장발의 머리카락이 목에 들러붙고 안경사이로 끼는 뿌연 김 사이로 거리를 바라보아야 했던 그 시절. 거추장스러운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외의 거대한 목표를 세우고 떠났던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금의환향이니 하는 명제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장발과 좀더 편해 질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당위의 문제였고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을 심어주고 말았다. 유행병같은 것은 겉잡을 수 없이 펴졌다. 더하여 아내와 아이로부터도 조금은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싶었으나 아내의 눈치를 따라 갈 재주가 없었다. 누구처럼 억지로 꿰맞추어 시작했던 것은 아니었다. 한때는 절실했고 한때는 애틋한 감정도 있었다. 그런 감정들에 충실해야 한다고 믿었고 객관적인 조건도 손해 볼 것은 없는 듯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늘 실리적이고 계산이 앞서는 이유들로부터 질려갔다. 어긋난 것은 감정들뿐만이 아니라 생활관습의 차이에서 왔던 거리감까지, 계속 이어졌다. 아내를 어떤 방식대로 고쳐 갈 수 없다는 것은 커다란 무력감이 되어 어깨를 짓누르고 혹처럼 달려있는 아이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로 옥죄어왔다. 살면서, 살갑게 굴었던 아내는 몇 번이나 될까. 시간이 최선의 해결사가 되어 주리라고 믿었던 것은 경험이 없었던 탓이었을까. 그래도 추억이란 가끔 아름다운 구슬처럼 꿰어진다. 젖어있던 베게와 아이의 성장이 조금씩 측은해 진다. 하이넥 셔츠는 사막에 어울리지가 않는다. 어지러운 생각과 실어증에 걸린 미래가 조갈이 나게 한다. 산을 넘어 올 때 청해 마셨던 시원한 청량음료의 뒷맛을 기억해낸다. 얕은 바람이 인다. 세이지부라쉬가 딩구는 사막에도 또 다른 계절은 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