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 최문항

2009.06.22 04:43

미문이 조회 수:277 추천:1

니하우!” “미국인데 영어로 합시다!” “한국말 하슈? 꼭 중국사람 같이 생겼구먼.” “당신이야말로 짱개처럼 생겼으면서 누구보고 그래?” “연변에서 왔수다. 이름은 피아오 지웬.” “난 필라에서…. 이름은 홍동길이요.” “필라가 어디쯤 있는 나라요?” “젠장, 필라델피아도 몰라?” 우린 같은 날 같은 시에 조영감하숙집에 들어왔다. 연변에서 왔다는 박 씨는 뭐 그리 아는 게 많은지 한국으로 유학 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가짜 소셜번호 얻어가지고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까지 준비했는데도 나 같은 놈이 기숙하고 있는 하숙방에 자빠져 있었다. “박씨, 각설이타령 들어봤어?”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제법이네 어디서 들었어? 아리랑 마켓 앞마당에서 품바 잔치한다는데 슬슬 거기나 나갔다옵시다. 탁주도 얻어먹고 이쁜이 각설이도 만나보고… 머나먼 타국 땅에서 같은 방 쓰는 것도 보통 인연은 아니니까 서로 확 터놓고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왔는지 지나온 이야기나 나눠 보자고…” “사실 나야 뭐 할 얘기도 없어! 형씨부터 얘기 시작해보슈.” 미국이 하도 넓다보니까 여기는 동부하고 전혀 다른 기분이 나더라고, 버스타고 흔들흔들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나 가봤지! 벌거벗은 여자들이 비치발래볼 한다고 모래밭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더라고 꼭 싱싱한 물고기들이 모래위에서 펄떡 거리는 것 같았어! 비키니 입고 자전거 타는 아가씨들도 멋있고 말이야!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나 모래사장이야 뭐 해운대나 대천 다 비슷비슷하지만 그 팔등신 미녀들은 정말 한번 안아보고 싶두만! "그래서 눈이 짓무르게 아가씨들만 보다 돌아왔쑤?" "그러니까 짱개하곤 말이 안 통하는 거야! 차원이 다르거든, 내가 거기서 뭘 봤냐? 날개 부러져 나뒹굴고 있는 날 봤다 이거야.” 자전거대여점 옆 공터에 휠체어를 탄 홈레스영감이 새떼들을 향해 빵부스러기를 던져주고 있더라고, 나도 별 할 일 없이 새들의 군무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갈매기들이 다 날아가 버리고나니 비둘기 몇 마리만 남아서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쪼고 있었어, 그런데 그중에 한 놈이 비실비실 휠체어 근처까지 밀려와서 파드득 거리는 거야, 자세히 보니 그놈은 한쪽날개가 축 늘어진 것이 꼭 내 꼬락서닐 닮았더라고… 멀쩡한 비둘기들이 그놈을 쫓아와서 날카로운 부리로 톡톡 쪼아대는데 그것도 축 늘어진 왼쪽 날개 밑 깃털이 다 빠진 상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더라니까, 한 놈이 실컷 괴롭히고 나면 또 다른 놈이 덤벼들어 계속 쪼아대는 거야… 뒤뚱거리며 도망치는 놈을 잡아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비둘기가 양순하고 평화의 상징이라고들 하잖아? 그런데 이놈은 무엇에 쫒기는 듯 잔뜩 긴장된 눈에는 독기가 가득하고 기회만 되면 날카로운 부리로 내 손을 사정없이 쪼아대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목덜미에 잿빛 나는 깃털이 지는 석양 때문인지 찬란한 무지개 색으로 번쩍거리더라고, 다른 새들이 감히 흉내 못 낼 자신만의 고고한 빛을 지니고 있었어! 내가 무지개 색에 취해서 지난 수 년 동안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데 휠체어에 앉은 영감이 또렷한 한국말로 날 나무라는 거야! "젊은 양반! 그 날개 부러진 새는 보이고 이 늙고 병든 놈은 눈에 안보이슈?" "아! 할아버진 한국분이셨군요!" 휠체어 옆에 주렁주렁 매달린 비닐봉지와 태양 볕에 검게 탄 주름진 얼굴, 길게 자란 흰 수염 때문에 그저 흑인 홈레스피풀인줄 알았지 한국사람 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었거든. “미국형 각설일 만났구먼. 그래!” 그러고 보니 긴 피어에서 장사하는 사람도 모두 한국 사람이고! 내가 동부에서 어영부영 시간 보내고 있을 때 서쪽에서는 그 유명한 산타모니카 해변을 한국 사람들이 몽땅 점령 해 버렸더라고. 주머닐 뒤져보니 잔돈까지 다해서 삼 십 불이 채 안되더구먼. "영감님 제가 가진 게 요거 다네요, 어디 가서 요기라도 하세요." 꾸겨진 지폐를 영감 손에 쥐어주고 돌아섰는데 고맙다는 소린 안하고 그 날개 부러진 비둘긴 자기가 잘 걷어 먹이겠노라고 걱정 말라고 중얼거리더라고… “필라에서 돈 좀 갖고 왔나부지?” 난 여태껏 돈 같은 건 걱정 해본 적이 없어! 빈손이래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니까 일 할 데는 쌓였더구먼, 페인트, 목수보조, 청소, 봉재공장 여기 싫으면 저기가고 내 맘대로 였어! 내가 뭐 돈을 많이 달라고 해? 보험, 오버타임? 그런 게 뭔데? 그냥 일거리 많고 술집 좋고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니까 영어 한마디 안 해도 되고 어떤 땐 미국 놈들이 한국말 척척 알아듣고 도대체 막히는 게 있어야지! “참 좋겠시다 걱정 없어서…” “그런데 말이야 요즘 와서 갑자기 국토 방위국인가 뭐 홈랜드 씨큐리티라나 하는 놈들이 여기저기 들쑤셔 대니까 불평 한마디 없이 꾸덕꾸덕 일만하는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시골구석까지 밀려 내려 왔잖아 이거…” “아무 걱정 없다고 방금 전에 말해 놓고선 금방 불평이야?” 아니 불평이라기보다는 좀 귀찮다는 거지 뭐, 지금 일하는데 빠똥 얘길 해야지… 요즘에 새벽 6시는 캄캄하고 해 뜨려면 아직 반시간은 더 기다려야 되는데 우리를 꼭두새벽부터 작업 시작하라고 불러놓은 그놈은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도 한참 있어야 기신기신 나타난다고, 잠도 덜 깬 부스스한 얼굴로 곧장 길 건너 멕시칸 식당으로 가서 젖이 남산만한 마리아하고 시시덕거리다가 8시가 한참 지나서야 제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바빠진 것처럼 인상을 북북 긁어대면서 일을 재촉하기 시작하지. 허긴 타임카드라는 게 사람을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들더라고, 일분만 늦게 찍어도 빠똥이 제 사무실로 불러들여 가지고선‘일 할 맘이 있냐? 없냐? 다른 사람 부른다만다.’아우성을 쳐대니 어떻게 피해갈 방법이 있어야지! “아니 그 빠똥인가 하는 놈도 한국 사람인데 그래?” 내 말 좀 더 들어 보라고, 내가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 빠똥이 나보고 다짜고짜 비행기나 기차 같은 거 타 본적 있냐고 묻는 거야. 미국 들어 올 때 대한항공 타고 왔습니다. 하고 퉁명스레 대답했지, 사실은 배타고 들어왔는데! ‘비행기속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야?’그래서‘엔진’이라고 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그런 거야 조종사가 걱정할 일이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뭐야? 이사람 급한 일 한 번도 안 당해 봤구먼! 제일 중요한 게 똥간이야’하더라고… ‘우리가 바로 비행기 기차 버스에 들어가는 고성능 변기 만드는 회사야!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물건을 만드는 거라고~’ 하면서 첫날부터 구린내를 풍기더라고! “그거 말 돼는 농담이구만.” 그러면 왜 거룩하신 매니저님을 빠똥이라고 부르느냐? 순전히 본인의견을 존중해서 그렇게 부르게 됐는데 멕작이 대부분인 회사에서 자기를 빠뚜롱(보스)으로 부르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는 바람에 애들이‘빠뚜롱 빠뚜롱’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 한국 사람들끼리는 빠똥으로 줄여서 부르기로 했어. “빠똥이란 사람이 한국 사람이니 얼마나 좋아! 우리 염색공장 매니저는 인도 놈인데 걔네도 사람차별 말도 못하게 해대두만.” “그래서 박 씨는 짱개라고 했어? 한국 사람이라고 했어?” “형씨, 짱개가 뭔지나 알고 짱개 짱개하는거요? 여기에서 우리가 남미사람을 멕작이라고 부르듯이 연변에서는 조선족들이 밑바닥 일하는 한족을 업수이 여겨서 부르는 말인데 그들은 돈 돼는 일이면 체면이고 뭐고 없이 달려들어 생계를 꾸려가는 밑바닥인생을 말하는 거외다… 내가 머리를 빡빡 밀고 다녀서 그런지 중국 놈 같다고 하면서 날보고 커다란 염색 보이라 통에 들어가라는 거야, 그 안에 들어갔다가 죽을 뻔 한사람이 한 둘이 아닌데 말이야…” “그래서 보일러 통에 들어갔어?” “그럼 어떻게 안 들어가? 매니저 눈 밖에 나면 그것보다 더 위험한일도 시키는데!” “어떻게 사람을 보일러 통 안에 들어가래?” 물론 증기 다 빼낸 다음 통안 구석에 끼어서 찢어진 원단조각을 잡아당겨 빼내는 간단한 일이지만 조금 전까지 화씨 백도가 넘던 열기는 그대로 남아있고 독한 약품 냄새 때문에 질식해서 넘어지기 일쑨데도 어떻게 해, 사람 손으로 긁어내지 않으면 다른 색 원단을 집어넣을 수가 없는 걸… “우리 같은 사람은 몸뚱이 하나로 먹고 사는데 정말 조심하라고! 우리 회사에 자리하나 마련해 줄까?” “정말? 그 빠똥한테 부탁 좀 잘 해 봐!” “아니 저 영감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누군데?” “산타모니카해변에서 만났던 홈래스영감 말이야!” “나도 한번 만나 볼까? 우리가 건너갑시다.” 오렌지카운티까지 어떻게 내려왔을까? 버스타면 못 갈 데도 없지, 집 없는 천사라! 저 영감이야 말로 새같이 마음대로 창공을 날아오를 수 있는 진짜 자유인이 아닐까? “영감님 절 기억하시겠어요? 전에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날개 부러진 비둘기요?” “비둘기? 응 그 멍청한 놈, 기억나지!” “이렇게 먼 곳까지 어떻게 내려오셨어요?” “이 근처에서 품바잔치 한다기에 쉬엄쉬엄 내려왔지, 다 떨어진 벙거지 쓰고 얼굴에 숯검정 칠하고 맨발에 양철냄비 두드리면서 작년에 왔던 각설이 얼어 죽지 않고 또 왔네…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아주 잘하시네요! 여기까진 어떻게 내려왔어요?” “자네같이 멍청한 놈이 밴에 태워줬어, 그런데 저놈은 또 누구야? 짱개처럼 생겼네!” “영감님 저 짱개 아니에요, 연변 조선족입니다.” “그놈이 그놈이지 연병이면 어떻고 지랄이면 어때? 저리 비켜 갈 길이 바쁜 사람이야!” 어디까지 이야기하다 말았지? 응 똥통회사, 빠똥까지 했지… 여기 온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는데 어느 한 놈 내 신분증 보잔 놈 없으니 살만하더라고, L.A에서 일 할 때는 사흘이 멀다 하고 홈랜드, 이민국 놈들이 들이닥쳐서 이리 뛰고 저리 도망하느라고 진땀을 빼곤 했었는데 여기는 시골이라 별로 신경 쓸 일도 없어! 주변이 몽땅 멕작들 뿐이고 나 같이 품위 있는 한국 사람은 별로 보기 쉽지 않은 것이 꽤 맘에 들고 이민국 사람이 쳐들어온다 해도 멕작들 잡아가느라고 정신없을 때 슬쩍 화장실 가는척하면서 없어져 버리면 지들이 눈치나 챌 수 있겠어? 이제 리얼 아이디(전자 신분증)를 49개 주에서 쓰게 된다니 나나 멕작들이 전처럼 비벼 댈 언덕도 슬슬 없어져가고 있지만 수백만이 넘는 불법체류자들을 지들이 어쩌겠어?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나 같은 사람은 멕작, 아니 남미분들에게 절이라도 할 만큼 고마운 일이지만… 나도 불법으로 미국에 머물고 있지만 금싸라기 같은 내 고향땅을 사랑하는 내 민족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냥 양보해주고 이렇게 밖으로 떠돌고 있으니 이 또한 애국하는 길 아닌가 말이야! “미국엔 언제, 어디로 들어왔는데?” “박씨! 당신 꼭 이민국 놈처럼 묻는다, 뭐 다른 질문은 더 없습니까?” 친구 놈이 호화유람선 쿡 뽑는다고 해서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생긴 태국 년이 영어로만 씨부렁대더라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들어? 그래 입을 헤 벌리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는데 내 다음 번호 가진 놈이 날 밀쳐내고는 그년하고 희희해해 대더니 그놈은 그 호화유람선 쿡 보조로 뽑혀가고 나하고 친구 놈은 그 옆 사무실에 잘못 들어갔다가 대구 잡이 원양어선을 탔지 뭐야! 몇 달을 죽도록 고생했는데 그 미친놈들이 달러를 뭉텅이로 내 손에 쥐어주면서 12시간동안 실컷 놀다가 해지기 전까지만 돌아오면 된다면서 우릴 발티모아라는 항구에 내려주지 않겠어? 내가 미쳤어? 그 지옥 같은 배에 다시올라타게? 그래 슬쩍 주저앉은 게 이 찬란한 미국 생활의 시작이 된 거지 뭐! “돈도 한 뭉텅이 있겠다, 신났겠구먼,” “조용히 내말 들어봐 이제부턴 질문사절! 알았지!” 뉴욕으로 잠입한 게 천구백 구십 몇 년 이었으니까 벌써 집 떠난 지도 십 수 년이 지난 셈이네, 그땐 젊었으니까 무서울 게 뭐 있었겠어? 군대에서 미국놈들 유격훈련 받았지, 북괴군전술에 특공훈련까지 두루 익힌 몸이니 그냥 그대로 살인무기가 미국 땅에 불법 상륙한 셈인데 나만 모르고 휘젓고 다녔지, 미국놈들 진짜 겁 많이 먹었을 거라고! 그런 나를 한눈에 알아본 부르크린 새카만 동네 구멍가게 아저씨가 권총 한 자루를 내 놓으면서 좀도둑 잡으라고 첫 번째 짭을 주는 거야, 나는 독일산 세퍼트처럼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대면서 진짜 쪼고만 구멍가게를 잘 지켜줬어… 야간 택시도 몰아보고 간혹 색시들 태워다주고 흰둥이한테 이십 딸라를 팁으로 받아 본적도 있었어! 근데 내가 너무 겁 없이 일을 잘하니까 나중엔 마약 심부름을 시키더라고, 냉철한 판단으로 한마디‘NO’하고 택시 모는 거 그만뒀지, 수입은 꽤 짭짤했었는데… 그 다음은 털보목수 보조… 그는 미팔군 노무자 출신인데 일찍이 전기톱, 전기드릴 같은 파우어툴을 부대에서 써 본 경험하나로 목수업을 시작했는데 리쿼스토아나 야채가게 진열대 짜는 게 전문이라더군. 아침에 집 근처 맥도날 햄버거식당에서 팬케이크와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막 식사를 개시하려는데 수염이 덥수룩한 영감이 내 앞자리에 와서 털썩 앉았어. “젊은이 할 일 없으면 나 좀 도와주구려. 내가 영얼 한마디도 못해서 그래! 아주 간단한 일인데 그저 삼십분이나 길어야 한 시간이면 돼.” “얼마 줄 건데요?” “사람 급하기는, 무슨 일인데요 부터 물어봐야지, 돈이 궁한 모양이군?!” “한 시간짜리 일하고 몇 푼이나 받겠어요? 괜히 다른 일도 못 잡으면 하루 공치잖아요!” “하루 품 다 쳐 줄 테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나?” “물론이죠!” 나는 다 찌그러진 그 영감 토요다 픽업트럭에 올라탔어. 왜 이 이야길 길게 늘어 놓느냐하면 미국 와서 처음 콩밥(미국은 샌드위칠 주더구먼)먹고 이름도 새로 생긴 기막힌 사연을 소개하려고 그러는 거야… 그 털보 영감이 날 어느 목재상으로 데리고 가더니 진열 돼있는 나무를 영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로 가격표에 있는 규격과 나무 이름을 수첩에 나란히 적었는데 영감이 내게 백 불짜리 한 장과 내가 적어준 종이를 쭉 찢어주면서 계산대에 가서 전표를 받아오라고 하더라고! 나는 계산을 끝내고 전표와 잔돈을 받아서 영감에게 돌려주었어. 3 ea -- 1x2x8 White Wood, 4 ea -- 2x6x20 Red Wood 2 ea -- 1x3x8 Furring Strip. 2 ea -- 3/4x3.5 x96 Hard Board Trim 1 ea -- 1/8x4x8 Honey Oak 1 ea -- 1/8x4x8 Spartan Oak 털보영감은 전표를 받아들고 밖으로 나가더니 뚱뚱한 흑인 녀석과 무슨 귓속말을 주고받으면서 20불짜리 지폐 한 장을 은밀히 그의 손에 건네주는 거야, 그 뚱뚱한 녀석이 내가 주문한 수량보다 두 배가 넘는 나무를 마구 트럭에 실어주는데 영감은 눈만 껌벅거리고 서 있더라고! 나무를 다 받아 싣고 목재상 정문을 막 나서려는데 누런 작업복 입은 사내들이 트럭 앞을 가로막고 영감에게 전표를 보여 달라고 하는 거야! 영감이 그 녀석을 올려다보면서 뭐라고 유창한 영어로 대답했는데 갑자기 차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우리를 끌어 내리더라고, 뭔가 크게 잘못된 걸 알았지만 어쩔 방법이 없었어. 조금 있으니 경찰차가 도착하고 영감과 나는 경찰차 뒷자리에 머리가 쳐 박혀서 경찰서로 끌려갔는데 영감이 여러 번 같은 수법으로 나무 도둑질을 하다가 오늘 꼬리를 밟혔는데 나는 재수 없게 한패로 몰려 잡혀온 꼴이 된 거지 뭐야! 경찰 조서에 하숙집주소 전화번호를 적고 미국 와서 처음 이름을 적으라고 하는데 내 성씨가 홍이라고 하니까 그 영감이 이름을 길동이라고 둘러댔어, 그런데 첫 이름을 KILL-DONG이라고 했더니 경찰이 자꾸 묻고 또 묻는 통에 경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즉석에서 DONG-KILL로 바꿔 버렸어, 어차피 급조한 이름인데 길동이면 어떻고 동길이면 어때? 열 손가락 지문찍고 번호표를 목까지 올려 잡고 사진을 앞으로 한번 옆으로 한번 찍고 집을 사는 것도 아닌데 홍동길 싸인을 열장도 넘는 서류에 긁어줬어. 어떻게 해서 풀려 나왔는지 확실치는 않은데 털보영감이 의리 지킨다고 날 만하탄에 있는 조그만 기념품상에 배달꾼으로 취직시켜 주더라고… 작달막한 대머리 쟁이 야마모토상이 영주권도 내주고 딸도 준다고 해서 뭐빠지게 일해 줬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사기였어! 믿을 놈 하나 없는 미국 땅! 그까짓 영주권이 뭔데 쪽발이 밑이나 닦아주고 세월 보낼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야, 그래서 그동안 배달 할 때 몰고 다니던 60만 킬로미터나 뛴 고물 트럭이라도 내놓으라고 했더니 수전노 같은 영감태기가 거금 300딸라나 받고 팔겠다는 거야! 그냥 내 주면 소유권 이전하는데 말썽이 생긴다나? 그래서 싸나이답게 풀 어마운트 캐시 딱 주고 사 버렸어. 매일 엔진오일 한통씩 먹는 고물 트럭이지만 내 이름으로 바꿔서 운수 사업을 시작한 셈이지. 새벽 4시전에 부롱스 도매시장에 들어서면 만하탄 야채가게 주인들이 줄을 서서 날 기다리다가는 어느 도매상에 무슨 야채 과일 몇 상자를 사 놨으니 그걸 어디로 실어오라고 하면서 돈 다 지불한 전표를 건네주면 제일 멀리 있는 가게 물건부터 차례차례 받아 싣고는 동트기 전까지 배달해 주곤 했지, 그땐 수입도 꽤 짭짤했었는데… 좌우지간에 착실한 내 서비스에 대 만족해서 손님숫자는 날로 늘어나 열 댓 군데 야채가게 주인들이 날 못 봐서 안달복달 했으니깐… 그런데 마피아가 관련돼 있는 쓰레기 청소차가 총파업을 하면서 거리마다 쓰레기가 넘쳐나고 특히 야채가게들은 인도까지 산을 이룬 쓰레기더미와 악취 때문에 장사를 못 할 지경이 됐는데 청과상 협회 회장하시는 고사장이 날 부르더니 겁도 없이 쓰레기를 롱 아일랜드에 있는 자기 집 뒷마당으로 빼내자는 거여, 과일이 들어있는 것처럼 쓰레기를 여러 박스에 차곡차곡 채워서 내 트럭과 자기 밴에 가득 싣고 윌리엄스 버그 브리지를 잘 건너갔는데 다리가 끝나는 저쪽에 대여섯 명 쯤 돼 보이는 건장한 청년들이 우리 트럭을 기다리고 있지 않겠어? 그놈들은 쇠파이프와 권총으로 무장하고 우리차를 세우더구먼. “너 설마 쓰레기 싣고 나가는 건 아니겠지? 걸리면 작살 날줄 알라고, 카고 문 좀 열어봐!” 누런 털이 북실거리는 굵은 팔뚝을 꿈틀거리면서 웅얼거리는 것이 꼭 고리라가 으르렁 거리는 것 같아 보였어, 내가 막 내려서서 뒤쪽으로 가려는데 그 놈들이 바로 내 뒤에 세운 밴에서 고사장을 끌어내려 내동댕일 치더니만 쇠몽둥이로 사정없이 밴 앞 유리창을 박살내며 날뛰는 거야, ‘이크! 안 되겠다!’ 나는 잽싸게 다시 트럭에 올라타고 줄행랑을 쳐버렸어! 내 꼬리하고 고 씨는 쪼금 있다 다시 와서 찾아가기로 했지 뭐! 겨우 내 아파트에 들어와서 고사장 부인에게 전화로 '당신남편 윌리엄스 버그 다리 밑에 가서 찾아가슈'하고 알려줬지! 아무 생각 없이 아침에 아파트 앞길에 주차해 놓은 내차를 찾아봤는데 밤새 어떤 놈들이 타이어 네 개를 몽땅 칼로 쑤셔놓고 앞 옆 유리도 모두 박살 내 논 것이 꼭 해골 보는 것처럼 섬뜩하더라고, 그길로 전철타고 불루베리 청과상으로 나가보니 고사장은 머리가 터져서 일곱 바늘이나 꿰맸는데도 장사하러 나와 있더라고, 글쎄 나만 독한 게 아니라 그 아저씬 월남전 때 해병대, 청룡이었다니까 나 같은 놈이 당해 낼 수 있겠어? 그래도 슬슬 수작은 붙여봤지! “아저씨 죄송해요, 공연히 저까지 잡혀놓으면 일만 커지잖아요, 그래서 도망쳤죠, 의리 없는 놈이라고 욕하셨죠?” “젊은 사람이 다르더구먼. 어떻게나 빠르던지!” “그런데요 그놈들이 내 아파트 앞에 세워 논 내 트럭을 밤사이에 박살을 내버렸지 뭐예요?” “야~ 정말 무서운 놈들이네, 마피아는 정말 마피얀 모양이군 그래! 자네 찬줄 어떻게 알았을까?” “차가 완전히 주저앉아서 처음엔 내차 아닌 줄 알았다니까요!” 나는 혹시 고 씨가 일자리라도 하나 마련해 줄까 해서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아무 말이 없는 거야… “사장님! 제차는요?” “차? 무슨 차?” “트럭, 어제 쓰레기…” “이 친구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여? 뭐여? 남 대가리 깨진 거 안보여?” 고 사장이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고. “사장님이 괜찮다고 하면서 쓰레기 실으라고 해놓고선…” 나도 지지 않고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졌어. "그동안 내가 자네한테 준 돈이 얼만 줄 알기나해? 그 돈이면 고물차 세대는 샀겠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 있잖아! 그걸로 이번엔 더 큰놈 하나 마련해봐!” “저한테 그런 돈이 어디 있어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놈이?” “그래서 날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지금?” “그래도 조금은 도와 주셔야죠, 아저씨 쓰레기 때문에…” “너나 나나 재수 없어서 당한 걸 어쩌냐? 그놈들이 누군 줄 알기나 해? 마피아야 마피야!”누가 듣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는 듯이 속삭였다. “그럼 여기 막일이라도 좀 시켜줘요, 뭐든지 열심히 할게요.” “자넨 영어가 안 되잖아? 세금도 못 내고 말이야! 다른데 가서 알아봐!” “당신 고따위 맘보로 살다간 어느 놈이 물어갈지 모를 줄 알라고! 어째든 당신 쓰레기 싣고 가다가 그랬으니까 내 트럭 변상해 내라고요~” “뭐여? 면허도 없는 놈이 여태껏 장사해 쳐 먹었으면 고마운 줄 알아야지, 인마! 너 불법체류 하는 거 알면서도 불쌍해서 일 줬던 거여, 골치 아프게 놀지 말어~ 너 정말 이민국 애들 불러줘? 썩 꺼져 인마… 너 땜에 마피아 꼬일라!” 고 사장은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면서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비수로 마구 쑤셔댔다. “글쎄 있는 놈들이 더 지독하다니까 천호동에서 설렁탕 배달 다닐 때 밥값 못 받아왔다고 내 월급에서 까고 주더라니까! 그래서, 그런 새낄 그냥 놔뒀어?” 박 씨가 자기도 한국에 처음 들어 왔을 때 당한 억울한 일이 생각나는지 괜히 흥분해서 내말을 막고 나섰다. “정말 고 씬가 고간가를 롱 아일랜드 집에 찾아가서 콱 쑤셔 버릴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 번 씩 났지만 어떻게 해볼 방법이 있어야지? 그래서 침을 퉤 뱉어 주고 물러섰지 뭐.” 그 다음엔 남들처럼 생선가게 과일가게 식당 접시딱기 피자집 밤 청소 그런 일을 두루두루 해 봤는데 영주권 없는 놈이라고 거기서도 푸대접은 마찬가지더라고! “한국에서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나 탈북자 연변동포 같은 사람들을 차별대우하는 사람이 어디 하나 둘 인줄 알아? 오죽했으면 말 잘 통하는 한국 버리고 여기까지 흘러왔겠어!” “그래서 박 씬 여기가 더 좋다 이거야?” “체류신분만 확실해지면 여기가 더 났지! 형씨 말대로 같은 말 쓰는 한국 놈들이 더 못되게 놀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자기하기 나름이니까!” “당해봤다면서 그런 소릴 해?” “내가 계속할까? 아니면 박 씨가 혼자 떠들어댈래?” “알았어! 계속하시오.” 그렇게 떠돌다가 부두 근처를 어슬렁거리는데 정말 나보다 더 한심한 한국 사람을 만난거야! 글쎄 내가 좀 배운 놈처럼 보였는지 두 놈이 다가와서 담배를 내밀면서 다짜고짜 하는 말이 벌써 두 주째 일해 줬는데 돈을 한 푼도 못 받았다는 거야, 이런 씨부랄 일이 있어? 갑자기 고 씬가 하는 놈이 눈앞에 얼찐거리는 거 있지… ‘어느 놈이 일을 시키고 돈을 안줘 씨팔’하고 목청을 높였더니 그들은 내가 뭐 대단한 놈인 줄 알고 사정 애길 하는데 글쎄 일이 다 끝나면 매일 무슨 종이쪽질 하나씩 나눠 주더라는 거야, 그래서 어디 좀 보여 달라고 했지, 두 사람은 주머니 가득 갖고 있던 꾸겨진 종일 꺼내 보여주면서 버릴까하다가 그냥 쑤셔 넣어 뒀다나? 그러면서 가건물 안에 앉아있는 원숭이같이 생긴 년이 다른 놈들은 돈을 척척 꺼내주면서 자기들에게는 매일 쪽지만 주더라는 거야. “무슨 쪽진데?” “글쎄 내 얘길 끝까지 들어보라고!” 내가 용감하게 문을 확 열어젖히고 유창한 영어로‘I NEED MONEY’했지! 그랬더니 그 원숭이가 생긋이 웃으면서 뭐라고 하고는 빈손을 쏘~옥 앞으로 내미는 거야 그래서 우물쭈물 하다말고 나도 손을 쑥 내밀었지 마치 악수 하자는 것처럼 말이야, 그때 원숭이가 책상 서랍을 살짝 열고 쪽지하나를 꺼내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면서 다시 빈손을 내밀기에 그 두 사람이 준 쪽지를 한 움큼 건네 줬어 그랬더니 또 뭐라고 한참 떠들면서 쪽지를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추려서 세어보고는 달러 한 뭉텅이를 두 번 세어보더니 나한테 건네주더라고, 얼른 받아들고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나와서 두 놈한테 휙 던져줬어! 그날 32가에 있는 한식집에 가서 오래간만에 목구멍 때 좀 벗겼어 소주에 삼겹살, 야 참 끝내주더라고… “아주 멋지게 해결해 줬군!” “다음날부터 나도 부두에서 일했는데 나처럼 무턱대고 주저앉은 외항선 선원들이 대부분이었어, 그래도 내가 몇 년 먼저 미국 물 먹었다고 나를 늘 앞세우고 다녔는데 남미에서 올라온 뽀씨들하고 늘 마찰이 일어나곤 했어” “뽀씨는 또 뭐야?” 동부에는 뿌에또리코 출신이 워낙 많으니까 남미계 사람을 무조건 뽀씨라고 불러, 요즈음 홈디포 앞에 줄서있는 일일 노동자와 꼭 같은 모습이었지, 발 빠른 녀석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느린 친구는 늘 뒤로 쳐지기 마련이잖아, 그러다보니 부두사무실 앞쪽 자리를 먼저 차지하기위해 서로 밀고 당기다가 시비가 붙었는데 그만 패거리 싸움이 돼버렸어… 몇몇 한국 사람이 잘 할 줄도 모르는 태권도 폼을 잡으면서 싸움이 거칠어졌는데 뽀씨 하나가 울타리에서 뽑아낸 쇠 파이프를 휘두르는 바람에 피를 보게 됐고, 경찰차가 여섯 대 출동하고 이쪽저쪽 다 머리에 손 얹고 길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조사받고, 그런 일이 일어난 다음부터 부두 사무실에서는 우리 같은 놈들은 처다 보지도 않더라고! 하는 수 없이 뿔뿔이 흩어져버렸어. “그래서 다음엔 어디로 갔는데?” “좀 남쪽으로 내려가 봤지, 필라델피아 세탁소에서는 같은 홍 씨라고 꽤 오래 붙어 있었는데 늙은 영감하고 사는 아주 착한 아줌마가 너무 딱해보여서 한두 번 적선해 주는 셈 치고 다림질대 위에서 떡을 쳐 주다가 홍 영감한테 걸리는 바람에 짐도 제대로 못 챙겨들고 단숨에 여기 L.A까지 도망쳐 왔어.” “그게 무슨 적선이야? 남 가정 파탄시켜놓고선… 그래서 그 아줌만 어떻게 됐어?” “그야 모르지, 아마 잘 살고 있을 거야! 그렇게 믿어야 내 맘도 편하니까!” “그럼 도대체 몇 군데나 돌아다닌 거야?” “글쎄 안 세어봐서 잘 모르겠는데, 열군데도 넘을 걸?” “어떻게 열 군데나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내가 아무리 좋아해도 머무를 수 없었던 때가 더 많았지! 나 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주변이 시끄러워지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았으니까… 처음에는 한두 번 망설이면서 피해 나갈 구멍을 찾아봤는데 결국은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어, 사람들이 약점을 노리고 이용만하지 어떤 도움도 베풀어 주지 않더라고… 바느질 공장일도 이력이 날만하니까 옆에 놈이 고자질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오렌지카운티까지 밀려오긴 했지만 뭐 크게 불평도 없어, 오히려 더 좋은 일터를 찾았으니 말이야. “똥통 만드는 공장?” “여하튼 오렌지카운티는 나 같은 귀한 사람이 일하기는 딱 알 맞는 곳이지, 빠똥도 나 믿고 늦게 출근하니까 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 아니야? 그런데 드디어 운명의 아침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던 거야!” “왜?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아침에 공장 문을 열고 멕작들이 타임카드를 다 찍은걸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카드를 '땡' 찍고 났는데 갑자기 키가 크고 홀쭉한 놈 하나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 들어오더니 공장 뒤쪽 문에 가서 붙어 섰어,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건물 앞쪽에도 한 놈이 양복 윗저고리에 손을 푹 찔러 넣고 이쪽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라니까, 나는 직감적으로 저놈들이 날 잡으러 왔구나 하는 것을 알아챘지! “필라 세탁소 영감이 보낸 놈들이었나?” “그게 아니고 이번엔 진짜 위험이 코앞까지 바짝 다가 온 거였어!” 얼른 빠똥 방으로 들어가서 있는 대로 폼을 잡고 앉아있었어, 조금 있으니 아니나 다를까 검은 안경 낀 한 놈이 사무실로 들어오더니 나한테 뭐라고 한참 씨부렁대더라고, 그놈은 내가 사장인줄 알고 떠드는 것 같았는데 나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도 태연한 자세로 미스 리를 불러 들였지, 깜찍한 미스 리도 마치 사장 대하듯이 내 말을 고분고분 듣는 체하더라고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졌어! “정말 홈랜드 애들이 쳐들어 온 거였어?” “홈랜든지 이민국 놈인지 알아볼 겨를도 없이 그놈들을 미스 리한테 묶어놓고 나는 슬쩍 옆문으로 빠져 나왔으니까, 나는 허겁지겁 길 건너 멕시칸 식당으로 빠똥을 찾아 갔어.” “홍형! 무슨 일 생겼습니까?” “매니저님! 이민국 수사관들이 쳐들어왔어요, 빨리 건너가보세요!” 하는 수없이 매니저님! 이라고 불러줬어 그래도 꼬박 꼬박 주급 타다 나눠주니 고마운 일 아닌가 말이야, 괜히 김가 놈이 매니저놈 매니저놈 하니까 나도 그렇게 부르지만 나 같은 불법 체류자에게 일자리 주는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김가 놈은 제가 언제부터 영주권 받았다고 하늘같은 매니저를 매니저놈이라고 불러 못된 놈 같으니라고… 그 수사관들은 서류 없는 멕시칸 두 놈을 잡아가면서 내 주소와 인적사항을 적은다음 미스 리에게 자수하지 않으면 모든 경찰순찰차에 현행범으로 체포 명령이 떨어질 테니까 빠른 시간 안에 자수하여 광명 찾으라는 공갈 협박을 남겨놓고 물러갔다고 하면서 조심하라더군. “그럼 또 다른 데로 옮겨 가야겠네?” “그래 또 정처 없는 길을 떠날 때가 된 거지 뭐!” “어디 갈 곳은 있는 거야?” “가긴 어딜 가?” “영감님이 또 나타났네? 각설이구경 잘하셨어요?” “너희들 쯩이 없어서 다른 데로 숨어 보려고 하는 거지! 한번 빠다 냄새 맡은 놈은 그저 여기가 낙원인거야, 그리고 어딜 갔다가도 또 다시 돌아온다니까!” “그래서 영감님은 여기가 낙원처럼 좋으세요?” “낙원이 뭐 별난 건 줄 알아? 마음 편안하고 남부러울 거 없고 내일 걱정 없으면 되는 거야! 내 휠체어 빌려 줄까? 이 위에 앉아 있으면 쯩 보자는 놈도 없고 길목 좋은데 찾아서 조용히 앉아 있으면 돈도 쓸 만큼 생긴다고!” “짱개! 자네 한번 앉아볼래? 돈 생기는 일이라면 체면이고 뭐고 없다고 했지!” “형씨나 휠체어 빌려 달라고 하슈! 난 연변에서 온 조선족 박지원이란 사람이요!” “영감님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길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멍청한 것들! 이것도 엄연한 내 직업이야! 내 꼴이 우습게 보이지? 그럼 더 쫒기면서 고생들 해보라고, 또 만나세!” “형씨 우리 꼴이 정말 거리에 나앉을 만큼 처량해 진거요?” “나는 한 번도 뒤로 물러서 본적이 없어! 내가 걸어 온 험한 들판에 뿌려진 땀과 피눈물을 한데모아서 그림을 그린다면 아마 거제도 동백 숲에서 펄럭이던 팔색조의 날개 빛보다 더 찐하고 화려한 색이 될 꺼야! “ “팔색조? 그런 새도 있어?” “연변까진 못 올라가는 여름 철샌데 그놈이 꼭 날 닮았거든.” “아니 날개 부러진 비둘기도 닮았고 또 뭐 팔색조도 닮았으면 홍 형 조상이 혹시 새였나? 그럼 홍씨보단‘새 조짜’조 씨가 더 어울릴 뻔 했네!” “그 팔색조는 극락조와 함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샌데도 사람 눈을 피해 어둡고 습한 울창한 숲속에 살거든, 여름이 되면 남쪽나라에서 날아오지!” “정말 홍 형 많이 닮았네! 키도 크고 시커먼 눈썹에 잘 생긴 얼굴, 여자들이 줄줄 따르지만 홈랜든가 뭐 이민국 놈들 때문에 어둡고 습한데 만 골라 다니는 처지가 참 비슷하구먼!” “지금 나 놀리는 건 아니겠지?” “놀리기는? 나 같은 놈은 벌써 포기하고 황토바람 몰아치는 연변 모래벌판을 걷고 있었을 텐데!” “내가 누구냐? 홍길동 아니 홍동길이가 멀리 동부 발티모어에서부터 뉴욕, 필라델피아, L.A를 거쳐 오렌지나무만 빼곡 들어찬 이 시골까지 밀려왔는데 이제는 날개 달린 철새처럼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따뜻한 섬나라, 와이키키 해변이나 걸어 봐야겠다. (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