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한길수
2007.04.17 07:21
주낙으로 잡았다던 흑산도 홍어 앞에 푯말을 본다
비린내 베인 쇠꼬챙이 찍었다 내려 놀 때 바다를 헤엄치며
들이켜 마신 들숨은 끈적거리는 파도를 토하며 뚝뚝 떨어진다
홍어는 홍어만이 어둠이 침전된 바다에 살아남는 법을 배우고
사람은 사람들대로 피멍든 세상에 살아가는 법을 배울 테지
이장될 곳 찾아 파헤쳐진 헌 무덤 같은 수산시장 나무 좌판
잠시 시장 복판에 서서 홍어 동공에 비친 세상을 본다
몇 번이나 더 꼬리 흔들며 축 처진 주검을 깨달을지
흔적 남아 있듯 입안에 오돌 거리는 연골을 기억한다
비 개인 질척한 종산(宗山)에 올라 햇살무리 고요를 들으며
한 평 남짓 누워 계신 아버지와 뼈대만 남은 마을을 내려본다
비틀거리던 세상이라고 술독에 빠진 사위를 양지로 건져내신
외할머니의 움푹 패인 이마에 냇물이 금방이라도 얼듯하다
무릎 관절 신경들을 빼다 자식들 뽀얀 살 만들었던 남도 댁
어머니 저고리에 콧물 말라비틀어진 일부종사(一夫從事)
푹 썩은 홍어 같은 삶 버리고 다 늙어 새 혼례를 치르셨다지
새어머니 배불러 걷는 여름철 흔들리는 버들가지 걸음
홍어 한 마리 짚 깔아둔 항아리에 들어가 첫날밤 지새우고
바다로 떠날 줄 알았던 아버지는 깨진 항아리 뒤집어쓰고
소식 없는 배다른 딸만 남기고 오래도록 몸 삭히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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