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가 사는 법 / 성민희

2009.11.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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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중에 아주 멋쟁이가 있다. 유머도 많고, 심성이 착해 싫은 소리를 들어도 혼자서 푹푹 삭혀내고는 다시 웃는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던 친구인데 언제부터인가 왕따가 되어버렸다. 이유는 단 한가지. 골프 매너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티 박스에서건 페어웨이에서 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친다. 다른 사람이 티샷을 준비하고 있는데도 옆에서 휙휙 소리를 내며 연습을 하니, 시간이 갈수록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들은 슬슬 그녀를 피하게 되었다. 몰래 다닌 지 한 달쯤 되었을까? 팔순 잔칫집에 다녀오다가 불행히도 그 부부랑 한 차를 타게 되었다. 조수석에 앉아 낄낄거리며 수다를 떨던 그녀의 남편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아무 소리 말고 골프 칠 때 라빈 엄마 치마 꼬리만 잡고 다녀." 에구머니나! 얼마나 놀랐던지. 여기서 골프 이야기가 왜 나오나. 도둑놈 제 발 저리다고 내 얼굴이 빨개졌다. 눈치 빠른 그녀, 자기가 왕따라고 남편한테 어지간히 징징거린 모양이었다. 그 남편은 지난 토요일에도 그 전 토요일에도 와이프하고 쳐야 한다며 남자들 팀에 나오지 않았다더니, 아내가 가여워서였구나. 우리 남편과 비교해보곤 그저 푹푹 한숨이 나왔다. 우리 남편? 와이프가 골프를 치는지, 어떤 사람들이랑 치는지 모른다. 어느 토요일 새벽. 골프를 치고 클럽하우스에서 친구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남편이 사촌 누나랑 같이 들어왔었다. 골프를 마치고 가는 길에 누나를 만났다는데, 공교롭게도 서로 등을 뒤로 하고 앉게 되었다. 나는 친구랑, 남편은 누님이랑 각자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지나가던 후배가 깜짝 놀라 달려왔다. "아이고, 형님. 형수님 그림이 참 이상하네요. 두 분이 왜 이러십니까?" 부부가 등을 지고 앉아서, 그것도 남편은 다른 여자하고 단 둘이서 아침을 먹고 있으니 풍경이 참으로 묘하기도 했다. 후배는 나에게 신신당부하면서 갔다. "형수님. 형님이 조금이라도 수상하다 싶으면 즉각 나한테 연락 하세요." 팔순 잔치 다녀온 후로 친구들 사이에 숙제가 하나 생겼다. 남편이 그러는 비결이 뭘까. 예뻐서? 노오! 그 보다 더 예쁜 친구도 구박 받고 산다고 아우성이다. 착해서? 노오! 자기들도 충분히 착한 아내란다. 똑똑해서? 노오! 50대엔 지식의 평준화가 이루어진 지 이미 오래다. 몸이 여려서? 노오! 그녀도 갸느린 어깨에 떡 벌어진 허리다. 50살 넘은 아줌마에게 여리다는 단어가 가당키나 한가. 그럼 뭐냔 말이다. 무엇이 남편으로 하여금 그토록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게 하느냔 말이다. 우리들은 궁금해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녀의 남편만 나타나면 모두 시커먼 선글래스를 꺼내어 끼고 눈동자를 바쁘게 돌리기 시작했다. 스파이 작전이 시작된 지 얼마 안가 우리는 드디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공휴일이 낀 주말. 4쌍의 부부들이 골프 여행을 갔다. 저녁 식사 후 와인을 한잔씩 하는데, 그녀가 갑자기 어지럽다며 남편의 어깨에 폭 기대었다. 우리는 너무나 놀랐다. 평소에는 씩씩하게 남에게도 부어주고 자기도 한 잔 더 하고. 끝까지 수다의 맥을 놓지 않는 사람인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서로를 쳐다보며 멍~ 하며 입을 벌렸다. "허허~ 이 사람, 와인 한 잔만 먹으면 이렇게 맥을 못 춰요. 어이구 어쩌지?" 안절부절못하는 남편 - 바로 그것이었다. 끄덕끄덕 잘 들어올리던 골프백도 남편 앞에서는 쌕쌕거리고, 뚜벅뚜벅 걸을 수 있으면서도 어지럽다며 비틀대고. 우리에게 골프 폼을 강의 하면서도 남편이 오면 가르쳐달라고 매달리고. 한없이 연약하고 모자라는 여자로 보이는 것. 끝없이 요구하고 징징거리는 것. – 바로 그것이었다. (그걸 내 남편은 애교라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친구들이 자기를 따돌려서 외롭다며 훌쩍훌쩍 울면서(이건 나의 비약적인 상상에 근거했음) 하소연했을 것이다. 남편은 그녀가 얼마나 안쓰러웠을까?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하며 기사도 정신을 가다듬었을까? 그녀는 그렇게 남편의 남성(男性)을 발전시켜 가면서 살았다.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을 흔들며 남편의 기(氣)와 맞서서 용감히 싸우고 있을 때. 그런 여자와 살면 남편이 피곤할거야, 난 죽어도 그런 연극은 못해. 자신은 또 얼마나 피곤하겠어, 뭐가 답답해서? 유치하다. 치사하다 등등---- 친구들은 의견도, 뜻도 분분하다.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부러워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한때는 수도 꼭지가 깡깡 언 겨울 밤, 살금살금 일어나 연탄 불을 갈아놓고 들어오던 남자. 아기 기저귀 똥을 물에 훌훌 저으면서 씻어주던 남자, 벌벌 떨면서도 웃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던 그 근사하던 남자(男子)는 모두 어디로 가고. 머리를 바글바글 볶고 들어와도, 무거운 쓰레기통을 끙끙대며 들고 나가도 몸도 마음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 무심한 남편(男便)들만 옆에 남아있는가. 나를 돌아보고 또 그 친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남편들의 남성(男性)을 바래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세월의 때가 그렇게 만든 것이지 절대로 우리 탓은 아니라며, 본래 타고난 성품이라며 우기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말이다. 날이 갈수록 내게 이상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남편을 이겨 보겠다고 눈을 부릅뜨는 여자들이 점점 어리석어 보이고, 내숭 떨고 여우 짓 하는 여자가 오히려 현명해 보인다. ‘사랑하므로 행복하노라’가 아니라 ‘사랑 받으므로 행복하노라’가 훨씬 더 진리인 것만 같다. 이제는 아들이 착한 며느리 앞에서 빵빵 큰소리 치며 살아주기를 바라는 시어머니의 마음이 되어버릴 만큼 나이 먹은 탓일까?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여자임을 중년 고개도 훨씬 넘긴 이제야 깨달은 걸까? 내 딸에게, 자고로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해가며 약간의 순종(順從)을 동반한 내숭학(學) 내지는 애교학(愛嬌學)을 강의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귀에 들린다. “Ew~~~ disgusting!”(이그~ 징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