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길 - 조만연

2005.02.14 12:08

미문이 조회 수:204 추천:5

보이지 않는 길

- 조만연

연휴를 맞아 여행길에 나설 때마다 잘 닦아놓은 하이웨이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특히 남북한의 18배가 넘는 캘리포니아주는 광대한 면적에 사통팔달로 뚫어놓은 프리웨이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 근대화의 대명사로 불리는 경부고속도로가 이곳의 한갓 지방도로 수준밖에 되지 않아 미국의 경제력을 실감할 수 있는데 실제로 쏘련 연방이 붕괴되기 전 후루시초프수상이 유엔총회에 왔다가 전국에 거미줄처럼 펼쳐져 있는 하이웨이 망을 보고 미국의 잠재력에 놀라 훗날 쿠바사태때 꽁무니를 빼게됐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듯 고속도로는 철도, 전력, 통신, 항만시설등과 더불어 그 나라의 경제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로서 이를 사회간접자본이라 일컫는다.

간사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처음에 경탄과 찬사를 주었던 하이웨이도 얼마 살다보니 이제는 그저 그렇게 느껴지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잊혀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생생히 되살아나는 길들이 있다. 피난시절 10여리씩 걸어 학교에 다니던 만경평야의 둑길. 면학의 웅지를 품고 등하교시 부지런히 오르내리던 계동길. 산자락 따라 꼬불꼬불 한없이 뻗어있던 중부전선 고지에서 내려다 본 망향의 길. 연인과 꽃잎을 세며 함께 노래부르던 서울교외 송추역 부근의 어느 이름 없는 작은 시골길. 지금쯤 그 길들은 바뀌거나 없어졌을지 몰라도 나의 가슴에는 여전히 그때와 똑 같은 모습으로 새겨져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어디 나에게만 이런 길이 있겠는가. 또한 어찌 아름다운 길만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제마다 꿈과 낭만, 열정과 사랑, 회한과 눈물이 배인 길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길은 땅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높이 드리운 하늘과 망망대해 그리고 바닷속 깊은 심해에도 길이 열려있다. 비록 눈에 띄지 않고 표시 나게 그려 있지는 않지만 비행기의 항로와 선박의 뱃길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보이지 않으나 어김없이 보여주는 길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 갈 수없는 인생길이다. 이 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탄탄대로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는 가시밭 길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람이 사는 길은 모두에게 동일한 길이지만 걸어야 할 길은 제각기 따로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길이 힘들고 어렵다고 다른 길로 빠지거나 딴 짓을 하다가는 나중에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는 것 또한 인생길이다. 어쩌면 인간사 모든 희로애락과 성패는 사람이 제 길을 바로 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때그때 처한 위치에서 선택하고 선택치 말아야 할 길들은 수없이 만나지만 한결같이 꼭 지켜야 하는 길이 있다. 아이러닉하게도 사람이 되는 길이다. 아무리 학식과 명예가 높아도, 부와 지위를 쌓았어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훌륭한 문필을 휘날려도, 애국애족을 부르짖고 자선행위를 베풀어도 그 사람이 사람 축에 끼지 못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얻는다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몬·드·보봐르는 그녀의 명저 「제2의 성」첫머리에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여자로 만들어진다'라고 썼지만 나는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사람으로 만들어진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이 출생부터 성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출애굽 하여 가나안 입성까지 오랜 세월을 광야에서 보내게 한 것에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참뜻을 읽을 수있을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는 것이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와 목표는 결국 얼마만큼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느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첨단산업의 눈부신 발달과 무한경쟁으로 잘 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계속 양산되고 있다. 여기에 덧 붙여서 인간이 갖추어야 할 품성과 인격을 상실해 가는 사람들도 날로 늘어가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의 사회는 윤리가 종교나 교육보다 더 강조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앞으로 '사람 같은 사람'과 '사람 아닌 사람'들의 공방전이 벌어질 때 나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