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발가락 / 정해정

2007.10.20 10:52

미문이 조회 수:327 추천:3

미국에서 보는 모든 것들은 내가 살아온 한국 것들과는 모양새가 조금씩은 다르다. 특히 조류가 그래서 약간은 낯이 설다. 그러나 비둘기만큼은 낯설지가 않다. 비둘기 본산지는 원래 서양이라고 하지만 한국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어쩔 땐 나처럼 ‘이민자’ 라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은 까마득한 고향에서의 어린시절 이야기다. 아버지가 동네서 비둘기 한 쌍을 얻어 오셨다. 바로 사람을 시켜 지붕 위에다 큼직한 집을 지어 비둘기들의 살림을 차려 주었다. 한데 며칠 지나자 큰일이 났다. 비둘기가 알을 품었는데 어른 팔뚝보다 더 두꺼운 구렁이가 기둥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비둘기의 신혼집을 더듬어 알을 먹어버렸다. 그런 난리가 있었는데도 비둘기들은 어찌나 번식을 잘 하던지 식구가 금방 늘어 툇마루며 마당이 깨끗할 날이 없었다. 살림을 돌보던 바지런한 ‘끈님이 성’이 빗자루를 들고 비둘기들을 쫒는다. “훠이! 훠이! 이 똥 좀 봐. 참말 드러워서 못살겄네” “내비둬라. 저 머리통 이쁜 것 좀 봐라. 목을 움직일 때마다 양색이 나는 것이 꼭 비단 목도리를 두른 것 같구나. 비둘기는 전쟁 때 편지도 잘 전해주는 우체부란다.” 대청마루에서 저고리 동정을 달고 계시던 엄마가 대꾸하신다. “근디~ 어찌나 부부금실이 좋은지라우. 작은각시는 절대로 안 본답디다.” “그래서 금실 좋은 부부를 보고 비둘기 한쌍이라고 하지 않디?” 나도 한마디 끼어들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 저 빠알간 발가락 좀 봐, 발 시리지 안으까?” 나는 이민 초기에 LA 다운타운 한쪽 귀퉁이에서 노점상을 한 적이 있다. 우연히 고향친구를 만나 등을 떠 밀리다시피해서 얼떨결에 시작한 생활 수단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듯이, 나는 장사를 해본 경험도 없을 뿐 아니라,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처지라 지금 생각하면 이만저만 통 큰 짓이 아니었다. 조그만 좌판에다 핸드백을 놓고 파는 장사였다. 한국사람 도매상에서 사다가 가방 속에 헌 종이를 넣고 모양을 잡아 좌판 위에 늘어 놓는다. 그리고 손님과 도둑을 가리는 눈도 없이 하루종일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다. 황폐한 LA 다운타운은 비둘기들이 새벽을 연다. 하루종일 사람들 속에서 푸더덕거리며 종종 걸음으로 부지런히 먹을 것을 잘도 찾아 먹는다. 어느새 비둘기들이 보이지 않으면 좌판 보따리를 쌀 시간이다. 왁자지껄하던 사람들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장사도, 손님도 비둘기도 다시 오지 않고, 어둠속에서 스멀스멀 노숙자들만 움직이니 다운타운은 어둠과 함께 유령의 도시로 변하고 만다. 나는 장사를 할 줄도 모르고, 또 장사도 시원찮고 해서 내 앞에서 종종거리는 비둘기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어?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이곳의 비둘기들은 그 연하고 빨간 발가락들이 모두 뭉그러지고, 떨어져 나가고 성한놈이 거의 없다. 어떤 녀석은 발가락이 하나도 없어 마치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 같다. 나는 빠알갛고 연한 녀석들의 발가락을 보면서 어쩌다 이렇게 됬을까? 나는 가슴이 저려오면서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다운타운에서 바느질공장을 오래했다는 후배가 들렸길래 물어봤다. “그거요? 비둘기 발가락이요? 다운타운에 바느질공장이 얼마나 많아요? 공장에서 날아다니는 실이 눈에 보이는 것, 안 보이는 미세한 것까지… 그 실에 발가락이 걸려서 결국은 끊어져요.”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후배는 지나가는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넘치도록 풍요로운 미국. 이 나라. 이 풍요로움 속에 살면서 발가락이 뭉그러진 것이 어찌 너희들뿐이랴! 날마다 알게, 모르게 뭉그러져가는 이민살이의 발가락들… 오늘도 LA 다운타운에는 비둘기들이 발가락이 뭉그러진 채 절뚝거리며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겠지. 오랜 옛날. 빗자루를 들고 '훠이!훠이!' 하던 끈님이 성의 째진 음성과, '내비둬라' 하시던 엄마의 목소리가 몹시 그리워진다. 갑자기 코허리가 찡해온다. 눈물이 흐를 것 같아 고개를 젖혔다. 앞집 지붕 위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푸드듯 날아오른다. 나는 가만히 중얼거린다. 발가락이 뭉그러진 것이 어찌 너희들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