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 있지 못하는 섬-임영록

2007.08.28 06:12

미문이 조회 수:694 추천:3

그날 그가 죽었다. 문화촌을 떠난지 10년 가까운 세월이었다. 초기 서부 개척시대에 땅의 경계를 말뚝으로 표시하고 자기의 땅을 만들었듯이, 홍제동 인왕산 기슭 끝자락에 비가 오면 생기는 작은 개울을 끼고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작은 말뚝을 박고 새끼줄로 자기 땅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는데, 그가 이곳에 이주 한 것은 몇 년이 훨씬 지난 웬만큼 동네 모양이 생기고 난 후였다. 일만원에 구입한 4평 크기의 집은 산허리를 깍아내고 크고 작은 돌로 엉성하게 축대를 쌓아 받쳐진 곳에 흙벽돌로 벽을 만들고 지붕은 여기저기 꿰매어진 남루한 모습의 미군용 천막으로 되어있었다. 먼저 이곳을 개간한 정씨라는 사람은 국유지 2평을 2천5백원에 사서 밤이면 산허리를 몰래 깍아서 20평의 땅으로 만들었다고 자랑하였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지붕을 오픈 식으로 만든 이유는 구청 무허가 철거반에서 들어닥치면 철거반에게 몇푼 집어주고 지붕을 걷어낸 뒤 저녁이면 다시 지붕을 덮기 용이함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의 아내는 지겹던 몇 년간의 문간 셋방살이보다는 훨씬 맘이 편하다고 하였다. 부엌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우 찬장 하나가 천막 밑에 몸을 가리우고 그와 그의 아내가 목욕할 때나 설겆이용으로 쓰는 큰 양동이로 나머지 부엌살림을 가리웠다. 비가 오는 날이면 큰 양동이, 작은 식기 또는 조금 크 양은 그릇에서 제각기 울려대는 딩동 소리가 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소낙비에 내는 소리보다는 가랑비에서 내는 소리가 더 좋았다. 그는 아침마다 집을 나서지만 정작 갈 곳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집에서 버스정거장까지 거리가 산비탈 내리막길이라고 하여도 족히 15분은 넘게 걸리는 거리인데 그는 걷는 동안 그날 갈 곳을 나름대로 정한다. 요즘 그가 자주 가는 곳은 버스를 너뎃정거장 타고 가면 무악재를 넘기 전에 무악재보다 높아 보이는 크고 높은 굴뚝이 있는 곳이다. 검티틱한 빨간 벽돌로 첨성대 같이 쌓아올린 굴뚝은 끝부분이 검게 그을려 하얀 연기가 나오지 않을 때에는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그 굴뚝을 사람 잡아먹는 연통이라고 불렀다. 굴뚝색깔로 나즈막하게 쌓아올린 담은 검은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회색빛과 흰색이 군데군데 보이는 육중한 철대문과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열려진 그 문이 그래도 세상과는 완전히 격리되지 않은 것만 같아 그는 지날 때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오늘을 버스가 두 대밖에 오지 않았다. 머리카락 타는 듯한 약간 역겨운 노란냄새 사이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우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리고 목탁소리에 다시 향냄새로 피어오른다. 목탁소리가 의례적인 행사의 한 부분인 것같은 느낌이 그는 오늘따라 들었다. 분향소에 가서 사진을 보니 오늘도 젊은 사람이다. 부모인 듯한 사람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엎드려 일어나지를 못한다. 어쩌면 여신 케레스에게 그의 아들을 불사신으로 만들어 달라고 빌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진 속의 얼굴이 처연하도록 무표정하다. 이제 저들은 조금 있으면 흰 보자기로 싼 조그만 상자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는 곱게 빻은 은가루를 산이나 강에 뿌릴 것이다. 은가루로 간 사람을 생각하며 긴 세월동안 그들은 문득문득 사슴 아파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간 사람과 함께 존재하던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그대로 정상적으로 움직일 것이고, 은가루가 물에 잠겨도 강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유유히 흘러가듯이 죽은 사람만 단지 없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요즘 이곳을 찾는 이유는 적당하게 차려진 술과 음식을 염치껏 먹을 수 있기도 하지만 그의 아내가 두번째 유산을 하고 나서 부터이다. 그에게 유산이라는 여러 다른 의미의 단어는 정말 진저리 치는 일들 뿐이었다. 빨갱이라고 불리운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은, 어릴 적 들판에서 놀다가 인분을 파묻은 큰 웅덩이 거름통에 빠진 적이 있었느느데 헤어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다리와 팔이 밑으로 쑥쑥 빨려 들어가서 허우적대는 그런 유산 뿐이었다. 1•4 후퇴 때 어머니가 마을 뒷산등성이 시체무덤에서 울며불며 헤매던 기억도 아버지가 준 유산이었고 빨간 딱지로 취직문턱에서 한없이 이어지던 절망도 그 유산의 일부였다. 분향소 옆에 위치한 자그마한 식당은 밤색 니스를 칠한 나무탁자가 10여개 있고 몇 사람이 같이 앉을 수 있는 키작고 긴 나무의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슬픔을 나타내기에는 뒷받침이 있는 의자는 어울리지 않을 것같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그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왜 슬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먹어대는 모습이 분향소에서 보았던 부모인 듯한 사람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도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자기자신의 나의를 먹는 것보다 슬프거나 두럽지 않은 세월의 무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약간의 가장된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이 권해주는 술잔을 그는 받아들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에 회색모자를 비스듬히 쓴 관리인인 듯한 사람은 사무실 쪽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소주잔을 훌쩍훌쩍 털어 넣고 있었다. “이제 한달 후면 여기도 문을 닫게 되지요.” “새로 생긴 벽제는 이곳보다 10배는 크다우, 관을 밀어 넣을 필요가 없어 그냥 자동으로 소화장으로 들어간다니까. 그리고 기름으로 연소시키는 최신식 시설이지.” 회색모자는 묻지도 않은 말을 소주잔을 털어 넣을 때만 빼고는 계속 지껄여 대었다. “벽제에서는 한구당 10분이면 충분할걸 아마.” 회색모자의 말에 둘러 앉아있던 사람들이 그를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같았다. 술을 먹어서 그런지 원래 그런지 붉게 충혈된 회색모자의 눈이 왠지 섬뜩하게 느껴졌다. “근데...봉함에 처녀뼈좀 섞지 않으려나.” 회색모자의 말에 모든 사람이 그를 주시하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거...총각귀신은 만들지 않아야 하는 거 아뇨.” 문화촌에 양은그릇 등을 리어카에 가득 싣고 와서 걸쭉한 농으로 동네 아낙들을 손아귀에 넣고 흔들던 젊은 장사꾼이 갑자기 연상이 되었다. 그들 중에 연장자인 듯한 사람이 화난 표정으로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하자 젊은 사람이 얼른 막으며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말하자면...영혼 결혼식 같은 그런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사람들의 눈빛이 증오에서 약간의 호기심과 비굴함으로 바뀌며 그 자신이 그들끼리의 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같은 느낌을 받아 그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는 그러한 느낌에 이미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의 소년시절에 동네 아낙들의 아버지에 대한 수군거림이나 어머니 자신에 관한 가당찮은 여러 소문들을 듣고 온 날의 어머니는 밤에 서럽게 우는 일이 많았다. 동네의 어떤 남정네들은 징글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네 엄마 잘 지켜라”하며 자기들끼리 히히덕 거릴 때면 자치기놀이 하던 죽창으로 그들의 눈을 찔러 버리고 싶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그는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나 어머니가 그 자신에게 억울함을 보이기 위하여 더욱 더 저렇게 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면서도 정작 불쌍한 어머니의 진실을 믿고 있다는 표정을 짐짓 지어 보이곤 하였다. “아버지는 독립투사였었어.” 그의 표정이 왠지 성에 차지 않을 때엔 어머니가 꼭 하는 말이었다. 그러던 어머니가 죽은 것은 그가 결혼한지 꼭 3년째 되는 해였다. 중병에 걸린 어머니는 있던 가재도구나 결혼예물 그리고 방두칸짜리 집을 차례차례 팔아서 병원비로 다 쓰고 난 뒤에 죽었다. 오늘도 아내는 양담배 몇 보루와 양주 몇 병을 배달을 하고 올 것이다. 얼마 전에는 동향의 고등학교 동창 집에 배달을 하고 와서는 하루 밤을 꼬박 울며 앓았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동창의 남편이 아마 아내의 첫사랑이었던 듯했다. 결혼 몇년 후까지도 약간 진한 농담을 하면 얼굴이 붉어져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내가 친구 이모가 경영하는 도깨비가게에 배달원으로 나간 첫 날, 아낸 그에게 빨간 말보루 양담배 한 보루를 갖다주었다. “벌금 물지 않게 조심해서 피워요. 그리고 기죽지 말아요.” 그는 빨간 그 담배를 아끼다가 구청 철거반에게 주었다. 문화촌의 겨울은 산아래 계곡으로 타고 올라오는 바람 때문에 더욱 추웠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가 쓰러지지 않도록 양쪽 벽에 다른 나무로 지탱하도록 더욱 단단히 메고 바깥쪽의 텐트 가장자리를 두꺼운 끈으로 큰 돌에 묶어야만 했다. 밤중에 눈이 오는 날이면 몇 번씩 일어나서 눈으로 쳐진 지붕부분을 들어올려 털어내야 했다. 잠을 자면서도 얼굴이 편안해 보이지 않는 아내의 깜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얼마 전에 그만든 신문사 보급소장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박총무, 그래 가지고 어떻게 보급확장을 하겠어?” “새로 생긴 다른 신문사에서 워낙 큰 선물들을 주면서...그러는 바람에...” “이 사람아, 배운 값을 해야지...정말 대학 나온 것 맞아?” 방바닥은 뜨겁지만 이불 위로 나온 얼굴이 시리다. 아내가 숨을 내쉴 때마다 굴뚝에서 나오던 하얀 연기를 내뿜었다. 아내는 아기를 태우고 연기를 내뿜고 있는지도 몰랐다. 가끔은 긴 한숨에 섞인 듯한 긴 내쉼에 연기는 더욱 길게 피어올랐다. 내 하나의 생존자로 태어나서 여기 누워 있나니 한 칸 무덤 그 너머는 무한한 기류의 파동도 있어 바다 깊은 그 곳 어느 고요한 바위 아래 내 고달픈 고기와도 같다. 맑은 정 아름다운 꿈은 잠들다. 그리운 세계의 단편은 아즐다. 오랜 세기의 지층만이 나를 이끌고 있다. 신경도 없는 밤 시계야 기이타. 너마저 자려무나. 김광섭의 ‘고독’에서 그래도 그는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 좋았다. 우선 철거반의 활동이 멈추고 산 아래로 보이는 집들이 눈으로 덮이면 아내와 결혼 전에 가주 가던 우이동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고 정지 또는 제약된 사람들의 활동이 어쩌면 무능한 자신에게 위안 따위를 주는 지도 몰랐다. 평화라는 것도 그에게는 제한적 단절로 가능하게끔 받아들여졌다. 인왕산 끝자락에도 봄은 시작되고 있었다. 희끗희끗 돌 바위 사이로 핏빛 철쭉꽃과 진달래가 피고 동네 산비탈 길이 질척거렸다. 버스 종점 근처에 있는 수돗물 판매소에서 두초롱의 물을 사서 물지게를 지고 올라오던 비탈길 중간쯤에서 아내는 무슨 큰 일이 난 듯이 그를 부르며 급히 내려오고 있었다. “여보 누가 찾아 왔었어요.” 아내는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한 손으로 닦으며 종이조각을 그에게 내밀었다. S당 A지구당 조직부장 최XX “그 사람이 꼭 좀 연락을 해 달래요.” 아내는 연신 그의 표정을 살피며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난 듯이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편지도 배달이 잘 안되는 곳에 갑자기 주민들이 대잡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당신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왠지 빨간 담배를 주던 아내의 표정이 생각났다. 며칠 후에 조직부장 소개로 만난 부위원장 김은 50대 초반의 굵은 검은테의 도수 높은 안경을 낀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을 갖고 있어 보이는 서글서글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그에 대한 신상에 관하여 어느 정도 파악을 하고 있는 것같았다. “물론 야당이라는 것이 자금 면이나 여러 면에서 힘든 것은 사실이요. 박형 같은 지식인이 주체가 되어서 변화를 시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서 말입니다. 이게 지금 올바로 가고 있는 세상입니까? 민주주의를 총칼로 무너뜨리고는 저 잘났다고들 떠들고 있지 않습니까.” 김은 그가 한동안 잊었던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했을 것같은, 마치 준비된 원고를 읽고 있다는 느낌을 그는 지울 수가 없었다. 김은 말 중간마다 두 주먹을 불끈 지어 보이며 야당투사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야당생활을 하기 전부터 저러했을까 아니면 그런 신념으로 살다보니 자연적으로 몸에 배게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민심은 우리편인데 온갖 방해공작으로 투표 참관인조차 구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오. 자, 박형 우리 같이 갑시다”하며 김은 그의 손을 힘차게 잡는 것이었다. 김은 그를 현실 비판적이고 열렬한 야당지지자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는 것같았다. 무허가 흙담집에 직업도 없이 가장으로서 책임도 제대로 못하는 자기무력증에 빠진 환자가 당신들이 얘기하는 민주주의라는 빛나는 세단차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그렇게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달 후면 벽제로 옮겨간다던 회색모자의 말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높은 굴뚝이 있는 곳 앞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굴뚝에는 연기는 나지 않았지만 허공을 찌르고 그대로 지키고 서있었다. 빨간 벽돌로 칭칭 감기어진 그 공간은 낙서만 무성한 육중한 철대문으로 세상과 단절되어 성큼 그 앞에 서있었고 철대문 사이로 보이는 건물입구는 나무판자 등으로 이중삼중 막아져 있어 뼈를 태우던 불기둥이 존재하였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황량한 주차장은 더욱 초라하고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뭇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들의 슬픔 앞에서 작은 희망 따위를 생각해보던 곳이 영원히 사라진 셈이었다. 그곳이 세상에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 그 안에서 쫓겨난 생각이 들었다. 여당후보가 공약한 문화촌의 재개발 및 양성화 방안에 모두들 들떠있었고 이집저집 재건축 붐이 일고 있었다. 하지만 선거판세는 문화촌을 제외하고는 야당후보가 앞서는 듯했다. 봄비가 내리던 저녁에 밥상에 마주앉은 아내가 통장이 그를 좀 만나고 싶어한다고 했다. 통장이 나를 만날 일이 뭐있냐고 물었을 때 그의 아내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전번 야당 조직국장이 그를 찾아와서 만난 적이 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선거철이라고는 하지만 야당 지구당에 가서 부위원장을 만나고 하는 따위의 일을 자랑하고 싶은 만큼 아내에게는 그를 남에게 자랑할 것이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아내의 걱정스러운 표정이 그날따라 더욱 초라해 보였다. 다방에서 만나기로 한 통장은 조금 늦게 한 사람을 데리고 같이 나타났다. 통장의 굽실거리는 모양으로 봐서 구청이나 여당지구당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의 예감대로 그는 여당지구당 선거책임자였다. 통장은 마치 중매쟁이같이 책임자와 그에게 연신 기분좋은 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잠시 후에 중매쟁이는 눈치를 살피다가 그에게 잘하라는 의미의 눈짓을 슬쩍하고는 자리를 피했다. 날카로운 눈빛의 책임자는 작은 입에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인상이었다. “박선생 우릴 좀 도와주시오.” 중매쟁이가 자리를 뜨자마자 책임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마치 채권자인 듯한 책임자의 눈빛은 당연하다는 듯이 더욱 날카롭게 빛나고 무표정한 얼굴에 나지막이 얘기하는 조그만 입은 그에게 더욱 간교한 느낌이 들었다. “선거운동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히 도와와지요.” 그는 느낌과는 다르게 약간의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당원으로 입당해 주시오.” 아버지도 완장을 차고 거리를 활보하며 주눅든 민초 앞에서 헛기침을 해대었을까. 그는 책임자의 눈을 마주 볼 수가 없어 눈을 어디에다가 두어야 할지 몰랐다. “아 물론입니다. 그러나 저같은 사람을 그렇게...”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고 야당당원으로 입당하라는 말씀입니다.” 잠시 그는 회색모자의 충혈된 눈을 생각했다. 회색모자의 눈이 원래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못된 짓을 할 때마다 눈이 조금씩 충혈되어 서로 구분이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좀 더 좋은 세상을 구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눈빛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게될까. 아니다 그 충혈된 눈을 감출 수 있는 약이 금방 개발될 것이다 라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그럼 저보고 빨갱이 노릇을 해달라는 말씀입니까?” “다 나라 잘되자고 하는 일입니다. 대안도 없이 반대만 해대는 야당을 좀 보십시요. 한일회담 반대만 해도 안그렇습니까? 박선생, 나라를 위해서 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책임자가 억지로 친근감을 나타내기 위해서인지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을 신경이 쓰여서 그런지 상체를 탁자 앞으로 바짝 내밀면서 얘기를 계속했다. “박선생도 알다시피 문화촌의 생활상이 말이 아닙니다. 수돗물만 해도 그래요. 물지게로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길어다 먹지 않습니까?” 이름을 왜 문화촌이라고 지었을까, 전혀 동떨어진 정반대의 이름을...몇몇 집은 펌프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면서 물을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고, 물을 길어다 먹는 양철로 만들어진 물초롱은 밑부분과 윗부분에 양철의 연결이 용이하도록 3줄씩 선이 동그랗게 있고 초롱 안쪽의 윗부분에 대각선으로 지게의 갈고리로 걸 수 있도록 안쪽에 홈을 판 나무로 만들어 지게에 지더라도 물초롱이 흔들리지 않도록 되어 있었느느데 그래도 종점 수돗물 판매소에서 길어다 집에 까지 다다를 때면 중간에서 흔들리면서 물이 쏟아져 겨우 삼분의 이 정도만 남기 일쑤였다. “며칠후면 공사가 시작될 것이요. 박선생 집아래 까지 파이프를 올려서 수돗물 판매소를 만들 겁니다.” 갑자기 그의 목이 말랐다.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책임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물론 박선생이 그것을 맡아주시오.” 책임자는 이 정도면 당연히 자기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표정이 더욱 거만해져 갔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려다가 애써 참으며 갑자기 종정옆 수돗물 판매소의 거만한 주인여자가 생각이 났다. 집아래 새로 만든 수돗물 판매소의 활짝 웃는 아내의 얼굴도 생각이 났다. 그는 어쩌면 책임자가 자기를 시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생각해...”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얘기해주시오. 사실 그렇게 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책임자는 말을 막으며 제법 단호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었고 그렇게 할 사람이 많다는 얘기는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는 갈증을 참을 수 없어 빈 커피잔을 다시 들었다 놓았다. 사람에게는 인생이 세 번쯤은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온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중의 한 번이 지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알겠습니다. 근데...약속...을?...” “내 명예를 걸고 합니다. 이보다 큰 약속이 어디 있소...” 책임자는 통장을통해서 모든 일을 지시할 것이라며 통장과 자주 만날 것을 얘기하며 악수를 하곤 황급히 일어섰다. 그는 머리가 약간 혼잡스럽고 걱정도 되었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이런 기회를 마다할 문화촌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책임자의 말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아버지는 빨갱이가 되어서 어떠한 보상을 약속받았을까. 안락한 생활과 민중의 지도자로 지위를 보장받았을까 아니면 타오르는 불기둥처럼 가난하고 불쌍한 민족을 구제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빨갱이가 된 것일까. 아버지같이 빨간 완장은 차지 않았지만 이제 가슴에 빨간 멍에를 하나 더 감추고 살아야 될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을 못먹고 사는 한이 있더라도 그건 안돼요.” 잠자리에서 그의 얘기를 대강 들은 아내가 단호하게 얘기하였다. 단지 당원명단같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정보만 몇 건 주면 수돗물 판매소가 우리 것이 될 수 있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있냐고 말을 다시 하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난 당신의 무능을 한번도 욕한 적이 없어요. 만일 그렇게 하면 우리는 수돗물 판매소를 갖게 될지는 몰라도 당신의 인격을 팔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아내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인격. 4평짜리 이 움막집에서 사는 나에게도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과연 그런 것이 나에게 남아있다는 말인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철거반이 올 것인가에 신경이 곧추서고, 나무 널빤지 몇 개로 얼기설기 가리어진 하늘이 보이는 똥통에서 똥을 누고는 신문지 조각을 비벼서 닦고. 물을 솥가득히 붓고 국수에 범벅을 해서 먹던 일이 한두번 이었던가. 비자공장에서 사온 비지에 김치를 털어넣고 끓여서 밥대신 먹은 일도 한두번 이었던가. 양조장에서 술을 만들고 남은 멀건 술찌거기를 사다 끓여먹고 얼굴이 벌게진 아내를 바라보며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무능의 가책을 받았던 것이 한두번 이었던가. 아내여 나는 통곡한다. 주어지는 이 다위의 세상살이에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는 이 거미줄 같은 목숨 하나, 그것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구나, 무슨 개같은 놈의 인격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말인가. 살아가면서 인격을 유지할 수 있는 아니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수 있다는 것도 적어도 인간적인 생활의 토대 위에서나 가능하다고까지 그는 생각했다. 천막지붕을 두르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둔탁하게 들렸다. 통장 집에서 만난 통장은 그의 어두운 표정에 오히려 호들갑을 떨며 쇳소리를 내었다. 문화촌 사람들 전부가 탈법을 저리르고 있는 사람들이고, 단지 선거일날 야당참관인으로 참관하여 여당다원 며 사람이 뭉텅이 투표를 할 때에 잠시 밖에 나가 있기만 하면 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책임지나 통장 그 자신 밖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런 일들이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한 일이며 사실인지는 몰라도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통장 조카를 시켜 자전거에 밀가루 세포대를 실려 보내주며 다 그런 세상이라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가 아내 몰래 야당지구당 사무실에 출근해서 딱히 무슨 일을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날은 선전부장과 함께 연설문의 초안을 만들거나 홍보물을 다듬고 어떤 날은 여당의 부정선거운동 현장들을 감시 또는 정탐하는 일까지 해야했다. 부위원장 김은 그의 어려운 가정형편을 잘 알고 있어 가끔은 돈봉투를 건네며 어깨를 두들겨 주곤 하였는데, 그럴 때면 그는 차라리 문화촌을 떠나버릴까 하는 생각이나 선거나 하루 빨리 끝나기를 고대할 뿐이었다. 지구당에서 일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젊은 사람들이었다. 어떤 날은 그중 한 사람이 상대방후보 연설회에 가서 공약 및 연설내용을 모니터하는 일을 맡았었는데 불량배를가장한 그쪽 당원인 듯한 청년들에게 피투성이가 되어 온 적도 있었다. 또한 야당연설회에는 험상궂은 청년들이 앞자리에 차고 앉아 야유 아니 야유를 해대기 일쑤였다. 이처럼 여당지구당에서는 야당의 모든 선거운동 행위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모든 당원명부나 다음날 또는 앞으로의 선거계획을 통장을 통해서 책임자에게 낱낱이 보고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아버지. 당신의 가난한 가족과 민족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공산주의였다는 말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난 당신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시도가 성공하였던 아니던 간에 당신은 그 신념으로 살다가 갔고 나는 짧은 이 생애에도 굴절로 점철되어 살아갑니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또 생이란 무엇입니까. 나에게 주어진 손바닥만한 양심이 가슴을 칩니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어둠의 당을 뚫고 쳐올라오는 생명의 물줄기를, 아닌 나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안식의 물줄기를 수도꼬지 잠그듯 돌려 버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버스종점 수돗물 판매소부터 문화촌 산비탈에 수도관을 묻기 위하여 땅을 파내고 있었다. 인부 서너명이 일 미터 쯤의 깊이로 며칠을 파내고 있었지만 그는 산비탈을 오르내릴 때마다 공사가 너무 더디다고 생각했다. 수돗물 공사얘기만 나오면 아내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쳐버린 아쉬움 같은 것이 얼굴에 배어나오는 듯했다. 감추어진 수도관을 통하여 폭포처럼 쏟아질 물처럼 숨겨진 그의 빨갱이 짓으로 판매소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이제 수도관을 묻는 땅 속에 빨갱이의 터울도 묻어버리면 그만이고 아내는 이제 도깨비장사 배달원으로 더 이상 나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물초롱으로 줄을 몇시간전부터 설 것이고 겨울이면 판매소 방안에 앉아 난로를 옆에 두고 아내는 두툼한 털쉐터에 약간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물을 팔 것이다. 긴 물호스를 준비하여 그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 큰 독이나 양동이에 직접 물을 가득 채울 것이다. 허드렛물로 쓰던 빗물을 이젠 더 이상 받을 필요도 없거니와 구청 철거반이나 통장도 그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공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통장은 마치 자신의 일인양 인부들에게 더 깊아 파라, 고나이 삐뚤어졌다는 등등의 지시를 하는 모습이 왠지 남의 가게에 들어와 주인행세를 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다. 통장이 그에게 다가와서 공사가 한달 후면 끝나고 이제 문화촌 사람들은 산비탈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어다 먹지 않아도 되며 수돗물 판매소 매상이 엄청날 것이라며 쇳소리를 해대었다. 한달 후면 공사가 마무리된다는데 수돗물 판매소는 누구의 돈으로 지으며 구청과 무슨 계약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지, 나는 언제부터 주인이 되는 것인지 등등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물어보는 것 자체가 통장에게 아직 확정되니 않은 사실로 인식되는 것같은 생각을 줄 것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확고하게 정해진 사실이며 당연이 그 자신은 수돗물 판매소의 주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다시 인식시켜 놓을까 생각하다 선거책임자를 돋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하였다. 통장은 그의 의도를 짐작했음인지 이내 사무적인 표정으로 바뀌며 책임자는 일주일도 안 남은 선거운동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며 할 이야기가 있으면 자신이 전해주겠으니 무엇이든지 얘기하라고 하고는 선거참관인 얘기만 반복해서 얘기하고 있었다. 며칠만에 가까스로 전화통화가 된 선거책임자는 맨 처음엔 그의 이름조차도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거운동 중이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왠지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선거에 꼭 이기기를 빌며 건강 조심하시라는 인사만 하고는 끊고 말았다. 괜히 바쁜 사람에게 얘기를 꺼내 신경질적인 반응을 나타내면 일이 그르칠 것같은 느낌을 받아서였다. 만약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가 생각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정선거 내용에 대한 양심선언이라든가 하는 지극히 단말적인 일들 뿐이었다. 그것도 선거가 끝나기 전에야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선거에 미치는 타격도 타격이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의 일로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선거전날 다시 통장 집을 찾았을 때는 통장은 선거운동으로 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더 기다릴까 하다가 통장 아내의 얼굴표정이 왠지 그를 달갑게 보지 않는 것같아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산비탈의 공사장 구덩이 양쪽으로 파낸 흙이 두 개의 뱀껍질처럼 길게 늘어져 있었다. 통장을 저 구덩이에 묻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여당의 승리로 끝난 선거가 그에게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당선 사례장에서 만난 책임자는 반갑게 그를 맞았다. 그에게 반갑다기보다는 당선의 흥분에 아직 도취되어 오는 사람 전부에게 친절하고 반갑게 맞는 것같았다. 통장에게 얘기를 다 해놓았으니 통장과 의논해서 판매소 운영을 잘하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통장은 여러 사람들과 얘기하며 그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있었다. 하긴 그가 이곳에 올 자격은 없었다. 책임자를 만날 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생각없이 온 것이었다. 야당당원으로서 여당의원 당선 사례장에 왔다는 사실조차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 그 자리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뒤통수에 대고 조소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기보다도 더한 빨갱이들이 자기에게 빨갱이라고 욕한다는 것이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야당의 지구당에서는 지금 어떤 표정들을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견딜 수가 없어 소주 한 병을 사서 들고 인왕산에 올랐다. 아버지. 야당은 무엇이고 여당은 무엇입니까. 그들도 아버지처럼 민족의 앞날을 위해서 고심하고 있다고들 말을 합니다. 혹은 그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은 거의가 나와 같은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의 신념은 그럴듯하게 포장된 그들 무리들만의 욕심이고, 그들의 걱정은 실상 입신출세나 또는 자기 가족들 뿐입니다. 정치는 그것을 위한 도구이며 직위는 욕심을 나타내는 저울과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처럼 나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를 나는 했으며 그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그런 식입니다. 나는 절대로 문화적이지 않은 문화촌에 이제 수돗물 판매소를 갖고 나 나름대로 주민들 위에 군림할 것입니다. 통장이나 구청 철거반이 내 위에 존재하고 거대한 무리가 그들 위에 존재하듯이 말입니다. 통장집 앞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린 후에야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로 올라오는 통장을 그는 만날 수가 있었다 .그가 얘기를 꺼내려고 하자 너무 술이 취했다고 다음에 얘기를 하자고 하며 손을 내저었다. 자꾸 피하는 것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는 하는 수 없이 돌아섰다. 줄 것을 다준 마당에 이제는 그것을 주기 전보다 더 인내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또 바꾸어 생각하면 뾰족히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는지도 몰랐다. 선거용이었는지 선거가 끝난 다음 며칠동안 공사는 시작되고 있지 않았다. 며칠후에 그의 집 바로 아래에 몇 사람의 인부가 벽돌과 나무 등을 옮겨놓고 있었다. 수돗물 판매소를 지으려는 재료인 것같았다. 통장은 보이지 않았지만 인부들 얘기로는 통장이 철물점에서 사다준 재료라고 하였다. 인부들중 한 사람은 안면이 있는 듯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그는 그 인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배달 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우산과 도시락을 내려놓으면서도 아무말이 없었다. 그가 아내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아내의 표정이 두렵도록 어두었다. 도시락을 만지작거리면서 그의 눈치만 살피는 아내의 눈이 오늘따라 더욱 쑥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저 통장 만나고 오는 길이에요.” 아내의 입술이 목소리보다도 더 떨렸다. 아내가 무슨 말을 듣고 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을 것같았다. 이제 사람들이 자기에 관한 사실들을 알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지낸 시간들이 아내를 통해서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었다. 아내는 손가락이 오그라지는지 다른 한 손으로는 연신 다른 한 손을 주무르고 있었고 눈은 그의 가슴에 감추어진 피멍을 부벼 파고 있었다. 그는 통장이 판매소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소문을 내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빨갱이라 그도 그렇다는 동네사람들의 말을 아내가 전하며 문화촌을 떠나자고 흐느끼며 얘기했을 때 그는 집을 나섰다. 문화촌아! 엉거주춤한 내 인생의 이름표가 너무나 한스러워 인왕산에 올라 한없이 울었던 기억들을, 잡스런 노동일이라도 성큼 뛰어들지도 못하는 허약한 이 몰골과 썩어빠진 정신을, 그래도 넌 흙에 대고 나를 뉘어 주었고, 계절의 희망으로 날 채워주었지. 손으로 잡아주었던 너의 가슴 따스한 내음을 놔두고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구나. 그가 통장 집에 갔을 때 통장 아내는 통장은 버스종점 식당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했다. 밖에서 그들의 모임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가게에서 산 소주를 한 모금씩 들이키고 있었다. 어두워진 한참 만에야 일행과 헤어진 통장을 그는 잠자코 뒤따랐다. 사람의 뒷모습은 왜 앞모습과 저렇게 차이가 날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뒷모습은 무엇이던지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과 다가올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화가 있는데 앞모습은 뒷모습이 갖고 있는 만큼 채워져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통장은 때로는 뱀껍질을 발로 툭툭 차보며 흥얼거리며 걷고 있었다. 수돗물을 팔고 있는 자기의 아내를 생각하며 흥얼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돗물 공사 얘기만 나오면 아쉬움에 젖어드는 그의 아내가 통장아내에게 몇 원을 주고 물초롱에 물이 차는 모습을 바라보는 생각이 미치자 그는 달빛이 너무 시리도록 밝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덩이 속에 박힌 수도 파이프 하나가 달빛에 삐죽 보였다. 그는 그것을 삐어들고 어깨춤에 감추었다. 골목길에 접어든 통장을 불러세우자 그를 알아본 통장은 흠칫 놀라는 것같았다. 당신이 소문을 내었나, 그래서 판매소를 가로채고 싶었어? 그래 내 아버지는 빨갱이였고 그래서 나도 아버지를 따라 빨갱이가 되었어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는 가슴이 두근거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나지막이 “판매소 어떻게 되는거야”하고 말을 더듬으며 겨우 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왜이래? 당신 깡패야?...” 통장의 목소리는 자동차 브레이크에서 나는 쇳소리 만큼이나 골목길을 찢었고 그는 “판매소 어떻게 되는거야?” 다시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할 뿐이었다. 그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통장은 외면하고 돌아서며 말하는 것이었다. “물파는 사람은 너같이 더러운 놈은 안돼!” 육중한 철대문이 닫히는 모습과 그 문이 닫히는 쇳소리가 들렸다. 어깨춤의 파이프를 꺼내어 닫히는 철대문을 향해 내리 갈겼다. 문이 닫히면 자기 혼자 남을 것이고 영원히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쓰러진 통장의 머리통을 향해 그는 은색 파이프를 계속 내리치고 있었다. 보랏빛 피가 솟구쳐 그의 얼굴에 범벅이 되고 동네사람들이 뛰쳐 나왔을 때야 그는 멈추었다. 겁에 질려 도망치다 사람들 중에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한 아내를 보았다. 시체무덤을 헤메이던 어머니를...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밤을 지샌 그는 멀리 무악재에 매연을 뿜어대며 고물버스에서 질러대는 소음도 쇳소리같이 느껴졌다. 치마바위에서 뛰어 내리려고 하였으나 바람이 너무 세다. 이 푸르르 시든 목숨아! 무악재에 있던 높은 굴둑은 아직도 회색빛의 음흉한 웃음을 띄우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의 피를 태우고 뼈를 부숴내며 긴 연기로 표효하던 악마는 긴 그림자를 지우고 거침없이 서있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높아만지는 악마의 굴뚝- 닫혀있던 육중한 철대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버스들이 세워져있던 거무죽죽한 단단한 연옥의 바닥에는 그 동안의 잃어버린 피만큼의 색갈로 칠했을 법한 무수한 빨간 벽돌들이 가지런히 줄을 맞혀 서있었다. 몇명의 인부는 계속 벌겋게 익은 싱싱한 벽돌들을 가마 속에서 꺼내 바닥에 가지런히 정렬하고 있었다. 그가 그날 죽었다. 가슴앓이 병이라고 했다. 악마의 굴뚝자리에 그 높이 만큼 세워진 아파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대문 형무소였다. 그날 거리에는 환영인파가 물결을 이루고 무악재를 가로지르는 홍제동 도로는 일반차량도 통제가 되어 한껏 넓어보였다. 맑고 높은 하늘 아래 육교와 가로수에 긴 현수막이 바람에 춤을 추듯 흔들며 여기저기 걸려 있었다. -환영- 남북 접식자 회담 북한대표단 일행 몇개월 전부터 빨갱이 대표단이 지나가는 도로와 도로변에 위치한 거축물들을 정비하였는데 문화촌도 그 중의 하나였다. 빨갱이들의 선전물로 이용될지 모른다 하여 산 위쪽부터 버스 종점부근까지의 집들이 남김없이 철거되어 보기 좋은 통일공원으로 조성이 되어 있었다. 물을 품다가 그대로 땅속에 묻혀버린 수도관처럼 문화촌의 집들도 같이 영원히 묻히게 된 것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