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시투구무늬 / 한길수
2012.01.03 05:09
독립 운동하던 자손의 유배된 기록은
허물어진 폐허의 흔적으로 남은 생이다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난 것도 아닌데
몽골 인접 연변 자치주의 어디쯤 살다
끝없는 유랑으로 조상의 제사도 잊고
더러는 홀로 조부(祖父) 땅에 닿아도
적응하지 못하는 이방인으로 서있다
눈 감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고향 숲
상처로 절름거리는 바람이 얼굴 닿는다
구천을 떠도는 영혼보다 모질게 산
객지의 설음이 더 지독한 독초였으리라
일용직으로 받은 돈에 그려진 초상화
살아 꿈틀거리는 조선의 남은 숨결이다
소주잔 들어 시커먼 동굴에 털어 넣자
휴화산 얼음 녹듯 새어나오는 신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성공해서 돌아간다는 마음속 미련은
기약할 수 없어 애간장이 타들어간다
추석 달맞이에 가족 얼굴 그려 넣자
달빛에 반짝거리며 일렁이는 이슬이다
투명한 물빛 하늘에 점들로 떠나는
철새들이 각시투구무늬를 그리며 간다
상가건물 층계가 된 그리움에 오르자
옥상에 고향 같은 저녁하늘이 걸려있다
치매(癡呆)걸린 사냥꾼이 놓은 덫에
불법체류 굵은 올가미 걸어 툭하면
조선의 자손도 일용직으로 내몰렸다
옥탑 방 그림자 데리고 떠나는 어둠
절뚝이는 바람이 서서히 말라갈 쯤
아이들은 참아낸 산통으로 태어나고
사약 먹고 죽은 조상의 혈흔처럼
엉덩이 몽고반점은 옛 조선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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