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레지아* / 임혜신
2012.08.27 11:04
말레지안 청년 나탄의 집에 가서 알았네
세상엔 한 자가 넘는 꽃이 있다는 것을
깊은 정글 속에 썩은 고기냄새 피워놓고
그 꽃은 파리를 기다린다는 것을
호수가 보이는 낮은 베란다에 마주 앉아
납작한 빵과 차이 티를 마시면서
나탄은 말해주었지
검은 반점이 점점이 박힌 그 꽃이
바로 제 몸속의 꽃이라고
작고 보드라운 꽃들이 수없이 피고 지는 숲 속에
작고 보드라운 새들이 수없이 지저귀는 숲 속에
흉한 냄새 열어놓고
뚜쟁이 파리들과 교접하는 꽃
향기로운 유혹이나 사랑이나 슬픔의 꽃이 아닌
말레지안 숲 속같이 건장한 청년의 위장에 기생하는 꽃
생태적 특성상
앞으로 몇 년이면 필시 멸종되고 말거라고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나탄을 위로하며 그때 나는 보고 있었지
제 몸 속에 자라나는 커다란 종양을
라플레지아, 꽃이라 부르던 청년
오직 짐승과 신만이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말레지안 열대림 속,
피 비린내조차 고요하던
꽃과 사람의 최후전선을
*라플레지아 열대지방 밀림에 피어나는 꽃. 크기는 한 자가 넘는 것도 있으며 썩은 고기 냄새로 파리를 유혹하여 수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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