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레지아* / 임혜신
2012.08.27 11:04
말레지안 청년 나탄의 집에 가서 알았네
세상엔 한 자가 넘는 꽃이 있다는 것을
깊은 정글 속에 썩은 고기냄새 피워놓고
그 꽃은 파리를 기다린다는 것을
호수가 보이는 낮은 베란다에 마주 앉아
납작한 빵과 차이 티를 마시면서
나탄은 말해주었지
검은 반점이 점점이 박힌 그 꽃이
바로 제 몸속의 꽃이라고
작고 보드라운 꽃들이 수없이 피고 지는 숲 속에
작고 보드라운 새들이 수없이 지저귀는 숲 속에
흉한 냄새 열어놓고
뚜쟁이 파리들과 교접하는 꽃
향기로운 유혹이나 사랑이나 슬픔의 꽃이 아닌
말레지안 숲 속같이 건장한 청년의 위장에 기생하는 꽃
생태적 특성상
앞으로 몇 년이면 필시 멸종되고 말거라고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나탄을 위로하며 그때 나는 보고 있었지
제 몸 속에 자라나는 커다란 종양을
라플레지아, 꽃이라 부르던 청년
오직 짐승과 신만이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말레지안 열대림 속,
피 비린내조차 고요하던
꽃과 사람의 최후전선을
*라플레지아 열대지방 밀림에 피어나는 꽃. 크기는 한 자가 넘는 것도 있으며 썩은 고기 냄새로 파리를 유혹하여 수분함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46 | 탁상달력-안경라 | 미문이 | 2007.01.19 | 216 |
445 | 소냐를 생각하면서-고대진 | 미문이 | 2007.01.22 | 308 |
444 | 생가 - 강성재 | 미문이 | 2007.01.29 | 254 |
443 | 목타는 도시-전지은 | 미문이 | 2007.02.08 | 255 |
442 | 나이테의 소리가 들리나요-유봉희 | 미문이 | 2007.02.19 | 209 |
441 | 안경- 정문선 | 미문이 | 2007.02.28 | 222 |
440 | 프리지어 간호사-윤금숙 | 미문이 | 2007.03.07 | 374 |
439 | 엄마의 골무-강학희 | 미문이 | 2007.03.19 | 222 |
438 | 걷는 꽃-석정희 | 미문이 | 2007.03.30 | 250 |
437 | 정(情)-정용진 | 미문이 | 2007.04.09 | 146 |
436 | 홍어-한길수 | 미문이 | 2007.04.17 | 255 |
435 | 사랑의 샘 제 10장 - 전상미 | 미문이 | 2007.04.24 | 281 |
434 | 존재의 숨박꼭질-홍인숙 | 미문이 | 2007.05.13 | 204 |
433 | 사랑의 바이러스-박경숙 | 미문이 | 2007.06.07 | 266 |
432 | 클릭-윤석훈 | 미문이 | 2007.06.29 | 199 |
431 | 표고목-이기윤 | 미문이 | 2007.07.10 | 197 |
430 | 내사랑 진희-이상옥 | 미문이 | 2007.07.20 | 356 |
429 | 당당한 새-이성열 | 미문이 | 2007.07.31 | 202 |
428 | 꽃밭에서-이윤홍 | 미문이 | 2007.08.20 | 158 |
427 | 떠 있지 못하는 섬-임영록 | 미문이 | 2007.08.28 | 6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