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 길이 소동 / 성민희
2012.05.07 06:43
권사님이 벌개진 얼굴로 득달같이 다가오셨다. 우리 합창에 맞춰 율동해주실 집사님 치마 길이가 너무 짧다며 흥분이시다. 예배당에서 여자가 다리를 쩍쩍 벌리고 춤을 출거냐고 벌써 본인한테 호통까지 치셨단다. 긴 치마를 입히든지 바지로 갈아 입히라 하시니 난감하기 그지 없다. 찬송가 잘 부르기 대회가 겨우 한 시간 밖에 안 남았는데…… 옆에서 듣던 사람들이 미니 스커트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나를 거들어 준다. 돌아보니 여리디 여린 집사님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다. 저렇게 소나기 맞은 심정으로 어떻게 춤을 출 수 있을까. 마무리 연습을 하고 본당으로 들어가야하는데 나도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앞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이고 긴장인데, 거기다 부정적인 사람들의 시선을 미리 꽂아주었으니 에지간한 강심장이 아니면 나설 수도 없게 만들어 버렸다.
집사님은 대놓고 내색은 안하지만 얼굴 깊은 곳이 울먹울먹이다. 스커트 밑 두 다리가 부끄러워서 어쩔줄을 모른다. 어쩌라고. 권사님은 도데체 지금 어쩌라고 이렇게 젊은 사람의 마음을 무참히 할켜버리시는지 모르겠다. 머리에 떠 오르는 생각을 여과없이 그대로 뱉어버리는 그 오만방자는 도데체 어디에서 오는걸까. 나이가 들면 나이 만큼의 권위가 생긴다고 여기는걸까. 남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그 이기심이 나이 앞에서는 모두 용납된다고 믿는걸까. 아니면 용납이 되던 말던 상관 없다는 베짱일까.
화가 나서 권사님께 ㅉㅗㅈ아갔다. “권사님. 집사님 좀 보세요. 저 상태로는 무대에 못 나가요. 가서 사과하시고 다독거려주세요. 연세드신 분의 한마디가 얼마나 젊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지 아세요? “
고맙게도 권사님은 풀 죽은 집사님께 다가가 주셨다. 경건한 신앙 생활로 세월을 보내신 분 답게 자신의 말 실수를 인정했다. 오른 손을 뻗어 어깨를 감싸더니 소곤소곤. 둘이 마주 보고 웃기까지 한다. 부끄러워 의자 밑에 꼬여있던 다리에도 화색이 돈다. 도무지 자신 없던 마지막 연습도 잘 하고 공연도 잘 마쳤다.
“치마 길이가 짧다는 말은 괜챦은데…… ‘다리를 쩍쩍 벌리고’ 라는 말이 정말 상처였어. 내가 너무 천한 모습이 된 것 같아서......” 다행히 이야기는 해피엔딩이지만 '다리를 쩍쩍 벌리고'는 우리들 마음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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