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벌레의 여행 / 정해정
2009.06.01 06:39
개똥벌레는 등잔불 하나를 손에들고 잠 못 이 루는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왁자지껄한 어느 집 창문에 등잔불을 들이대었습니다.
어느 부부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싸우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민 온 걸 후회하고 다시 돌아가자고 트렁크를 내놓고 짐을 싸고,
남편은 기왕에 온거 참아보자고 소릴 지릅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조금만 견뎌 보세요. 폭풍우가 지나간 바위는 더 깨끗하고 튼튼하답니다
<힘듬>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을 들고 날아갑니다.
어느집 거실에서 청년이 목을 메어달아 자살을 하려고 하고 있네요.
사랑하는 애인이 헤어지자고 했답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아서요, 아서요. 살다보면 내뜻대로 이연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 하세요.
더 좋은 인연이 무지개 처럼 기다리고 있을 꺼예요.<아닌인연>을 이리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을 들고 날아 갑니다.
어느집 안방을 들여다 봅니다.
앗차! 어느여인이 막 한줌의 약을 입속에 털어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이 새 여자가 생겨 집에 안들어 온답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스톱! 용서하세요, 용서하세요. 가슴아래 찌꺼기를 두지 마세요.
남아있는 앙금이 종기가 된답니다.
어서 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용서못함>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과, <용서못함>을 들고 날아갑니다.
개똥벌레는 등잔불에 심지를 돋우고 다시 밤길을 날아 갑니다.
어쩐지 슬픈 '쟈카란다'가 연한 보랏빛으로 밤을 에워싼 공원 벤치에
곤드레만드레가 된 아저씨가 술병과 함께 널부러져 있습니다.
이민와서 죽을만큼 열심히 일을해서 모은돈을 사촌형 한 입에 털어 넣었다고 길길이 뜁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잊으세요, 잊으세요. 돈은 다시 벌 수도 있습니다.
절망이 아무리 깊은들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은 아니랍니다.
잊지 못하면 미움이 당신의 가슴을 난도질 칠껍니다. <못잊음>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과, <용서못함>과, <못잊음>을 들고 다시 날아 갑니다.
깜깜 한데도 십자가가 환한 어느교회 철야기도 중 입니다.
걱정만으로 범벅이 된 사람들만 모여 기도 하고 있습니다.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 지붕뚜껑을 열면 모두가 걱정 투성이랍니다.
걱정이 아무리 크다해도 해결못하는 걱정은 하나도 없어요.
물 한 방울이 강을 흐르게 한답니다.
오늘의 수고는 이것으로 끝이예요. 나머지는 그 분께 맡기세요.
그리고 <걱정>을 이리 주세요."
개똥벌레는 말합니다.
"모두 내려놓으세요.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으세요.
이젠 새털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들면,
분명히 찬란하고 기쁜 내일 아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껍니다."
개똥벌레는
<힘듬>과, <아닌인연>과, <용서못함>과,<못잊음>과,그리고 <걱정>을 모두 들고
싼타모니카 바다 한 가운데로 날아갑니다.
개똥벌레는 거기서 몽땅 빠뜨리고 두 손을 탈탈 털었습니다.
모든 잠못이루는 사람들은 하얀 구름 위에서 깊은 잠에 푸욱 빠져 들었습니다.
개똥벌레는 할일을 다 했다는 듯이 '후유~~' 숨을 내쉬자 등잔불도 사르르 꺼졌습니다.
어느새 분홍빛 새벽은 달콤한 산들바람을 타고 웃으면서 오고 있었습니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26 | 프리지아 멜랑콜리아 / 전희진 | 미주 | 2024.04.30 | 81 |
425 | 시즌 / 안경라 | 관리자_미문이 | 2012.05.29 | 82 |
424 | 서연우-손톱 | 미주문협 | 2018.03.01 | 82 |
423 | 이용언-틈 | 미주문협 | 2017.04.26 | 83 |
422 | 이일초-식탁에 샘이 있다 | 미주문협 | 2019.02.19 | 83 |
421 | 연잎-지희선 | 미주문협 | 2019.12.07 | 83 |
420 | 이송희-낚시 | 미주문협 | 2022.05.14 | 83 |
419 | 정종환-호흡 [1] | 미주문협 | 2022.03.16 | 83 |
418 | 정해정-아네모네 사랑 | 미주문협 | 2022.06.16 | 84 |
417 | 김원각-글 쓸 때가 더 기쁘다 | 미주문협 | 2020.07.15 | 84 |
416 | 수박 (동시) / 이희숙 | 미주 | 2023.08.01 | 84 |
415 | 겨울의 어느 하루 / 권태성 | 미문이 | 2008.07.29 | 85 |
414 | 김모수-그만치에 있어 좋은 사람 | 미주문협 | 2018.05.29 | 85 |
413 | 이성렬-종달새 | 미주문협 | 2020.11.02 | 86 |
412 | 봄 편지-정해정 | 미주문협 | 2022.03.30 | 87 |
411 | 자목련-현은숙 | 미주문협 | 2022.04.30 | 88 |
410 | 악수 / 윤석훈 | 미문이 | 2009.02.16 | 89 |
409 | 손용상-그리운 길손 | 미주문협 | 2017.06.29 | 89 |
408 | 안규복-주름 | 미주문협 | 2018.04.02 | 89 |
407 | 새소리 / 정용진 | 미문이 | 2007.10.06 | 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