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어 간호사-윤금숙

2007.03.07 08:17

미문이 조회 수:374 추천:14

(수필) 제목: 프리지어 간호사 자그마하고 가늘가늘한 몸매에 미소를 잃지 않는 그녀는 프리지어 꽃을 연상케 한다. 이지적인 눈매가 언뜻 차가운 첫인상이 들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녀는 넓고 큰 마음을 가진 한국인 간호사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병원에서 근무할 때, 그녀가 담당한 첫 환자는 점잖은 중년 부인이었다 한다. 유난히도 하얀 피부에 상냥하고 친절하게 환자를 돌보는 그녀한테 그 중년부인은 마음이 끌렸다. 한달 동안을 입원하고 있는 사이에 정이 흠뻑 들어 며느리감으로 점을 찍어 놓았었다. 퇴원을 한 후 그 여인은 아들의 이름으로 보라색 프리지어 꽃을 때마다 정성스럽게 보내곤 했었다. 그후로 그녀에게는 프리지어 간호사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그 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결혼 후 바로 이곳 LA에 와 첫 직장을 갖게 된 곳이 종합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이었다. 처음에는 영어를 제대로 못해 너무나 지루하고 답답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더구나 한국인 동료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해가 더 길기만 했다. 낯선 미국땅에 와서 맨 먼저 부딪히는 난관은 누구에게나 언어문제인 것이다. 영어만 잘 할 수 있다면 무엇이나 자신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말문이 막혀 한마디 변명도 할 수가 없어 잠못 자는 밤이 많았었다. 전화로 아기의 상황을 설명해야 될 때는 등에 식은땀이 흘러 본인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는 영어를 늘어놓고 나면, 절망적인 마음에 아픈 아기도 안중에 없이 병실을 뛰쳐나오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간호 실력은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지만 영어 구사가 맘같이 시원하지 않으니 자연히 아기들에게 더 정성을 쏟게 되었다. 신생아들의 팔에 보일듯 말듯한 혈관을 찾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작고 섬세한 손으로 몇 번 아기의 팔을 만져보고는 정확하게 혈관을 찾아 낸다. 그래서 가끔씩은 동료들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언어의 장벽을 넘기까지는 실력과 노력, 성실함이 뒷받침을 해주었다. 십삼 년동안을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열심히 일한 보람이 있어 지금은 모두가 인정해주는 실력있는 간호사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리 보채고 우는 아기도 금세 달래는 특별한 재주를 가져 나는 신기해서 그 비밀을 그녀에게 물었다.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에 꼭 품으면 심장 뛰는 소리가 서로에게 전해지지요.” 하고 그녀는 살짝 웃는다. 그래서 덜렁대고 산만한 간호사가 돌보는 아기가 이유없이 종일 울고 보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 못하는 아기도 느낌으로 아는 것 같다. 요즘 그녀가 돌보는 아기는 조로 증상을 가지고 태어난 미숙아이다. 아기는 그 작은 얼굴이 몽땅 늙어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처음엔 겁이 나서 보질 못하고 눈길을 피하기만 했었다. 그녀는 억지로 나를 끌고 가서 아기의 쪼글쪼글한 얼굴에 뽀뽀를 하더니 자기 얼굴에 대고 “귀엽죠?” 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나는 전혀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 모습이 너무나 애처로워 가슴이 저며왔다. 아기는 힘이 없어 젖꼭지조차 빨지를 못하기 때문에 튜브를 통해 우유를 먹고 있었다. 이 아기는 얼마 못 살고 죽을 거라며 눈물을 글썽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뜨거운 사랑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는 그녀의 극진한 간호도 외면한 채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기를 살리기 위해 한 시간여 동안 온갖 의술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하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나는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녀는 죽은 아기를 가슴에 꼭 껴안고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않는다. 모두들 잠시 숙연해졌다. 한 간호사가 흘끔 쳐다보더니 “잘 죽었지! 그 애가 살아봤자 병신밖에 더 되겠어?” 하고 건조한 금속성의 소리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자리에 아기엄마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주요섭씨의 “미운 간호부” 라는 수필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린 딸이 숨을 거두는 순간 엄마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딸은 이미 시체실로 옮겨진 후였다. 엄마는 시체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시체실은 쇠를 채워 잠가 놓았으니 가볼 필요 없다며 간호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아니 애를 혼자 두고 방에 쇠를 채워요?” 하며 깜작 놀라는 엄마에게 간호사는 톡 쏘며 얼음같이 차갑게 말했다. “죽은 애 혼자 두면 어때요?” 미운 간호사의 말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했었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생과 사를 너무나 많이 보아왔기 때문에 감정이 메말라버린 것일까? 자기 자식이라도 그렇게 말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따뜻한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리고 각박한 현실이 메마른 감정을 낳고 있다는 사실을. 심신이 지쳐 있는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는 어떤 약보다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남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눈시울을 적시는 프리지어 간호사! 그녀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봄이 오기 전에 햇볕 잘드는 뒷뜰에 프리지어를 심어 봄과 함께 꽃을 피우게 하리라. 이 향기를 그리워하는 사람은 분명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