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이여 온 땅에 - 조옥동

2005.12.26 15:35

미문이 조회 수:309 추천:46

어지럽게 흩어진 시간들 줄을 서 퇴장한다
빠져나갈 출구는 하나
열기를 주저하는 섣달 그믐 두려움의 문
바래고 구겨진 영광의 깃발 내리고
낡은 허울 던져버린 이 길은 순리로 통하는 길

젊음의 함성 붉게 타오르던 광장에도
풀꽃처럼 짓밟힌 영혼 촛불로 밝힌 거리에도
맨 몸에 불을 붙여 산화하던 분노의 바리케트 위에도
한 해의 끄트머리 핏빛으로 노을은 지는데
세월이 삼켜 버린 그 날들 반납할 수 없기에
회한과 겸손의 두 손 우러러 기도로 닿는 하늘이 있다.

봄여름 겨울까지 바쁘게 연출한 회전무대의 막이 내린다
화려한 대사는 멎고, 이어지는 침묵
슬픔과 눈물 없이 설 수 있던 생명이
전쟁과 죽음 없이 쟁취한 자유와 평화가
희생과 고통 없이 얻어진 사랑이
터진 상처 하나 없이 열매 맺는 나무 있느냐고
처연한 눈빛만 가슴을 뚫는다.

창(窓)밖에 사랑의 서정이 별빛으로 내리는 이 계절
미움과 부정 교만과 거짓의 패자들 고통의 멍에를 풀고
믿음과 진실 화해와 회복의 승(勝)자가 되는
소망이여! 온 땅에 햇살처럼 샘물처럼